소파 방정환과 잡지 어린이

2023. 6. 16. 16:51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1910~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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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방정환은 어린이운동의 창시자, 선구자로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방정환은 ‘어린이’란 말을 생각해낸 방정환은 1920년 「어린이 노래」(『개벽』3, 1920)를 번역하여 소개하면서 어린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즉 방정환은 ‘어린이’라는 용어를 ‘늙은이’, ‘젊은이’라는 용어와 대등한 의미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어린이를 비하하거나 낮추어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여 부르자는 의미일 것입니다.
방정환은 1899년 11월 9일 한성 야주개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미곡상을 경영하여 유복한 환경이었으나 그가 아홉 살이 되던 무렵 가세가 기울게 되었고 이집 저집으로 쌀을 꾸러 다녀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던 열아홉 살의 나이에 그는 손병희의 셋째딸 손용화와 결혼하였고 이미 천도교에 몸담았던 방정환은 손병희의 사위가 되면서 더욱 천도교 활동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천도교의 인간관이 방정환의 어린이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1920년 일본유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방정환은 도요 대학 철학과에 특별 청강생으로 다니며 아동 문학과 아동 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아동문학가 방정환은 1920년 일본 유학 중 현지에서 풍성한 어린이 문화를 접한 뒤, 홀대받고 배움 없이 일터로 내몰리는 조선의 어린이들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방정환은 일본에 유입된 서구 동화를 번안해 조선으로 보냈고, 1922년 개벽사에서 번안동화집 '사랑의 선물'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동화집은 그가 쓴 서문이 있습니다. 
"학대받고, 짓밟히고, 차고 어두운 속에서, 우리처럼 또 자라는 불쌍한 어린 영혼들을 위하여, 그윽히(그윽이) 동정하고 아끼는 사랑의 첫 선물로, 나는 이 책을 짰습니다.“
이렇게 발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동화책에는 <산드룡의 유리 구두(신데렐라)>와 같은 서양의 유명 동화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1923년 5월 1일 찍은 색동회 창립 기념 사진

방정환은 1921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를 만들고 창립 1주년을 기념해 이듬해 5월 1일을 어린이날(소년일)로 선포했습니다. 이것이 현재 5월 5일 어린이날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첫 행사는 색동회 주도로 1923년 5월 1일 서울 천도교 교당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세계의 첫 어린이 인권 선언문으로 불리는‘어린이날 선언문’이 낭독되었으며 해방 다음해인 1946년에는 어린이날을 지낸 첫 일요일이 5일이었던 것을 계기로 지금의 5월 5일로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1923년에는 방정환(方定煥)이 중심이 되어 1923년 3월 16일 발족하여 5월 1일 일본 동경에서 색동회가 창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단체의 회원의 글들이 잡지 『어린이』을 글을로 실리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잡지에는 어린이의 목소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그저 어머님 아버님께 우리 어린 목숨을 좀더 뜻있게 귀엽게 사랑해 달라는 말입니다. 저는 금년 얼마 안되는 나이를 먹은 어린이입니다마는 오늘날까지 자라오는 그 짧은 동안에 저는 어른들의 무수한 비난과 권리에 눌리어 자라났습니다. 그 일례를 들어보면 이런 일이 있습니다. ‘어머님 돈 십 전만 주세요’ ‘돈은 해 또 무엇하니?’ ‘저 잡지 책을 사보겠어요’ ‘아이고 학생이 잡지책이 무어냐 할 공부나 하지 않고’” (1928년 <어린이> 제6권 제3호, ‘윽박지르지만 말고 좀더 자유롭게’ 이정구 어린이)
이렇듯 당시 잡지 『어린이』는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던 그들을 대변하는 목소리 역할을 하였습니다. 웅변과 토론대회는 <어린이>의 인기 코너 중 하나였으며 이는 어린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제5권 제7호에선 ‘사업을 성취하는 데는 ‘지혜’가 중요한가 ‘성실, 근면’이 중요한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김명준 어린이는 “이 세상 만물 중에 사람이 제일 귀하다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오직 ‘지혜’란 것이 있는 까닭입니다. 오늘날 문명이 하나라도 지혜의 덕이 아닌 것이 있습니까”라고 지혜 편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성실, 근면 편의 고영직 어린이는 “지혜는 결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요, 부지런히 배우고 정성으로 연구하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성실과 근면함은 지혜의 어머니입니다”라고 반박했는데요. 다음 호에서는 독자들의 투표결과도 나왔습니다. . “성실, 근면 편이 말을 잘했다는 편 2,844표, 지혜 편이 말을 잘했다는 편 2,843표. 이리하여 참말 이상하게도 신기하게 1표가 많게 나온 것입니다. 

1930년 2월호 ‘어린이’ 목차

『어린이』는 인기가 날로 높아져 10만 구독자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구매한 사람들이 아닌 이 잡지를 돌려본 인구를 10만이라 하더라도 당시 서울의 인구가 30만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수치입니다. 그런데 이 잡지가 처음 창간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고 합니다. 어른들이 보는 잡지도 팔리지 않는데 어린애들이 무슨 돈이 있어 잡지를 보겠느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방정환은 안되는 일일수록 자기들이 해야 한다며 창간을 진행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린이』의 창간은 소년회에서 결정해 창간이 가능했고, ‘개벽사’에서 발행합니다. 그리고 소년회 전국 조직 수는 1922년 61개에서 <어린이>를 창간한 1923년 167개, 1925년엔 364개까지 늘었는데 소년회를 중심으로 한 탄탄한 독자 조직은 <어린이>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잡지 『어린이』는 어린이를 학습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놀거리가 부족했던 당시 아이들에게 새로운 흥밋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어린이』 초창기에는 잡지 원고를 쓸 사람이 부족해 방정환이 다양한 필명을 쓰면서 여러 종류의 글을 실어 잡지를 유지했습니다. 방정환은 ‘소파’, ‘잔물’, ‘소파생’, ‘SP생’, ‘몽중인’, ‘깔깔박사’, ‘길동무’, ‘북극성’, ‘ㅈㅎ생’ 등의 필명으로 <어린이>에 글을 썼습니다. 예를 들면 ‘깔깔박사’는 웃긴 이야기를 쓸 때 쓴 필명이고, ‘북극성’은 ‘길 잃은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길 바라며 탐정소설을 쓸 때 사용한 필명으로 더불어 상품을 주는 퀴즈에 방정환이 등장하였으며 ‘방정환 씨 미행기’라는 독자 투고게 실릴 정도로 방정환의 인기도 올라갔습니다. 그러다보니 방정환을 걱정하는 어린이의 글이 실리기도 했는데요. 고흥의 신을식 어린이가 “방 선생님, 담배를 잡수지 말아 주십시오. 11월 호 방 선생님 미행기에 보니 선생님 입에 담배가 떠날 새가 없으시다 하오니 저희들 마음에 대단히 염려됩니다. 학교 선생님께 듣든지 우리 소년 단장에게 듣든지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은 머리에 크게 해롭다고 합니다”라고 글을 올리자, “나도 찬성합니다. 새해부터는 선생님, 담배를 끊어 주십시오”(원산 송희재,  경산 김동광)라는 등의 답글이 줄줄이 실렸습니다. 10만 명 넘는 독자를 확보하며 신문만큼 영향력 있던 100년 전 <어린이> 잡지, 3‧1운동을 겪은 일본은 잡지를 보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일제는 갖은 이유를 들며 『어린이』를 검열하였습니다. 
“방 선생님이 날마다 날마다 총독부에 들어가셔서 교섭하느라고 애를 쓰셨으나 끝끝내 좋은 해결은 얻지 못하고 말았다” 『어린이』 . 제6권 제2호

어린이 대운동회 말판

<어린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일제 검열 방식은 ‘○○’으로 처리하기, 내용 일부 삭제하기, 삭제 원고 목록만 남기는 방식, 목차에 작품 제목만 남기는 방식 등이었으며 『어린이』의 편집 책임자 방정환은 총독부 경무국에 수시로 불려가 경위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삭제 34회, 게재 중지 9회, 압수 2회의 간섭과 함께 통째로 삭제당한 원고의 수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린이』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바로 ‘한글’이었습니다. 당대 출판물과 다르게 기본적으로 국문체(한자 부기 혹은 순한글)을 지향했고 특히 동화나 동시 등 문예물은 순한글을 사용해 사실상 ‘한글잡지’이었습니다. 이렇듯 『어린이』는 어린이에게 우리말로 자신의 생각을 쓰게 함으로써 핍박받는 우리민족의 다음세대들에게 변혁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딸년’, ‘아들놈’, ‘애새끼’로 불린 이들에게 어린이라는 명칭을 붙여준 방정환이 떠나기 전 남긴 말은 ‘어린이를 부탁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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