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도깨비의 진실

2023. 6. 26. 17:19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1910~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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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청년이 저녁에 고갯길을 넘어가려는데 장정 모습을 한 도깨비가 나타나 씨름을 하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다고 했다. 이에 청년은 같이 씨름을 하였지만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다. 이에 청년은 꾀를 내어 "어, 날이 새는구나!"라고 말했고, 도깨비가 이에 움찔하자 얼른 쓰러트렸다. 청년은 도깨비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근처에 있는 나무에 줄로 꽁꽁 묶었고, 얼른 고갯길을 지나갔다. 다음 날 해가 뜨자 청년은 궁금하여 도깨비를 만났던 나무 밑으로 갔다. 그러나 나무에는 피 묻은 빗자루만이 묶여 있을 뿐이었다.’
위 이야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도깨비이야기입니다. 보통 물건이 오래되면 도깨비가 된다고 하며 이에 대한 대표적인 물건으로 빗자루가 꼽히고 있습니다. 도깨비는 이러한 이야기를 포함하여 여러 이야기를 통하여 전해지고 있으며 삼국유사에서는 「도화녀비형랑」이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진지왕이 생전에 사량부에 사는 아름다운 도화녀를 보고 함께 있기를 청하자, 도화녀가 남편이 있는 몸이라고 하며 거부하였다. 진지왕이 폐위된 후 죽고 도화녀의 남편도 세상을 떠나자, 죽은 진지왕의 혼령이 도화녀를 찾아와 7일 동안 함께 머물다 떠났다. 그 후 달이 차서 비형이 태어났다. 진평 대왕은 비형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궁중에서 기르고 집사 벼슬을 주었다. 비형이 밤만 되면 서쪽 황천강 언덕 위에서 여러 귀신들을 모아서 놀자, 왕은 비형에게 다리를 놓을 것을 명한다. 비형이 무리를 부려 하룻밤 새 다리를 놓고 그 이름을 ‘귀교(鬼橋)’라고 불렀다. 비형은 그가 부리는 무리 가운데 길달을 조정에 천거하고 왕은 아들이 없는 신하로 하여금 그를 양자로 삼게 하였다. 길달은 흥륜사 남쪽에 성문을 세우고 밤마다 그 문 위에서 잠을 자 사람들이 그 문을 길달문이라 하였다. 어느 날 길달이 여우로 변해 도망가자 비형은 귀신들을 시켜 그를 죽이게 하였다. 이때 사람들이 노래를 짓고 가사를 문에 써 붙여 잡귀를 물리치게 되었다.’ -도화녀비형랑-

소치 허련의 ‘채씨효행도’ 중 귀화전도.

여기서 도깨비는 하룻밤 만에 다리와 문을 세우는 능력을 보여주는 바, 경주지역 사람들은 도깨비를 마을의 수호신이자 가신으로 숭배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시간이 지난 후인 1447년 『석보상절』에  '돗가비'로서 처음 도깨비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석보상절』이 조선 왕실에서 펴낸 책입니다. 『석보상절』의 돗가비란 '돗'과 '아비'가 합쳐져 만들어진 합성어로 볼 수 있는데요. '돗'이란 '불'이나 '씨앗, 종자'라는 뜻으로, '아비'란 '장성한 성인남자'라는 뜻으로 쓰이며 '돗가비'라는 말은 불이나 씨앗처럼 생산력이나 풍요함 등을 크게 일으킬 수 있는 성인남성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석보상절』에 도깨비 관련 단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도깨비 신앙이 왕실에서 편찬하는 문서에 기록될 만큼 조선 민중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고, 도깨비를 믿는 목적이 주로 무병장수의 복을 얻는 데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조선시대 민중이 본 도깨비는 오늘날 어린이용 전래동화에서 볼 수 있는 장난스럽고 어리숙한 존재가 아니라, 역병 방지와 무병장수에 관련된 경외와 신앙의 대상입니다.
그러면 그 이전에는 도깨비란 단어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는 의미일텐데요. 지난 2021년에는 한편 신라의 제4대 왕 석탈해임을 강조하면서 "석탈해는 대장장이이며 한국 도깨비 설화의 원천이다"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려사』에는 신라의 '동경 두두리'(東京 豆豆里)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신라의 수도 경주를 '동경'이라고 했던 역사적 사실을 기초해 '철을 두드려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대장장이가 두두리, 즉 도깨비의 원조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통설에 수정을 요하는 설입니다.
그리하여 현재 도깨비에 대해 추정되는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900년 전 고려 중기로 올라갑니다. 이 시기는 실제 역사상으로도 도깨비 신앙이 한창 생겨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깨비 신앙이 알타이족 신화, 도교, 유교, 불교 사상, 혹은 일본의 신토(神道) 사상과도 별 관련 없이, 한반도 내에서 자생한 정신적 유산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도깨비 신앙이나 설화에서는 도깨비에 대한 다음의 가지 특징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다고 합니다. 
1. 메밀묵, 팥시루떡, 돼지고기, 술을 좋아한다./2. 성격이 괴팍하고 영악하며 장난을 좋아하는 반면, 간혹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어리숙하고 친절한 모습도 보인다./3. 사람과 친하고 사람의 삶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4. 간혹 크게 될 사람을 만나는 경우 그 사람의 미래를 알려주기도 한다./5. 특히 여자를 좋아하는 호색한이다./6. 불로 변하고 불을 다스릴 수 있다./7. 재물을 불러 모으는 힘이 있다./8. 외딴 산속이나 해안지역, 혹은 바다에 자주 출몰한다./9. 말의 피를 대단히 무서워한다.
그럼 우리에게 도깨비는 어떠한 이미지로 새겨져 있을까요? 커다란 뿔이 달리고 몸에 호피 무늬의 옷을 걸치고 가시 방망이를 들고 있는 모습일 텐데 이는 1915년부터 30년간 국어 교과서에 혹부리영감의 삽화로 사용되면서 퍼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로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은 같은 조상이라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내세웠습니다. 중국의 설화에 기반을 둔 ‘선녀와 나무꾼’, ‘혹부리영감’ 등 일본 교과서에 실린 설화를 한국 교과서에 게재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오니는 한국 ‘도깨비’의 모습으로 정착한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 오니의 모습은 붉은색 혹은 푸른색 피부에 머리에 뿔이 하나 혹은 두 개 나 있고, 날카로운 어금니와 날카로운 손톱을 기른 세 개의 손가락, 허리에는 호랑이 가죽을 두른 9척 장신에 전신에 빳빳한 털이 난 모습으로 금방망이를 들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하니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깨비의 형상과도 비슷합니다. 
어느 순간 잔학무도한 외형으로 바뀐 도깨비는 우리 역사에서는 본래 신앙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깨비가 어느 순간 우리에게는 심술궂은 존재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본래 도깨비는 신이었는데 일본의 오니는 악귀이며 일본의 오니가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그 이미지가 혼동되면서 본래 가지고 있던 의미도 변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일제시대 교과서 '초등국어독본'에 실린 '혹부리영감' 이야기 삽화. 혹부리영감 뒤로 도깨비로 둔갑한 일본 요괴 오니가 보인다.

그러면 어찌되었든 우리가 알고 있는 도깨비의 모습이 사실 일본의 오니라고 하니 진짜 우리 도깨비의 모습은 어떠한가라는 의심을 품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국 기록 속에 등장하는 ‘귀(鬼)’라는 글자를 찾아내어 이를 도깨비로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 고유의 도깨비 얼굴은 ‘귀면와(鬼面瓦)’ 기왓장에 새겨진 귀신 얼굴 모양에 나와 있다고도 했으나 이는 일본에서 ‘귀와(鬼瓦)’를 ‘오니가와라(おにがわら)’라고 읽어 ‘오니’의 얼굴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귀’와 도깨비를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본래 한국 고유의 도깨비는 뿔이 없고 덩치가 크며 온몸에 털이 많고 누렁이 냄새가 나며 바지 저고리를 입고 패랭이를 쓰고 다니며 손에는 나무 방망이를 쥐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깨비는 사람을 좋아해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를 원하는 존재로 그 모습을 특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도깨비를 전하는 그림은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조선 후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수제자로 유명한 화가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9~1892)이 그린 도깨비 그림을 살필 수 있는데요. 그 그림은 1869년 허련의 나이 62세 되던 해에 채씨 집안의 부탁으로, 효자로 유명한 채홍념(蔡弘念)의 효행을 그린‘채씨효행도’ 중 한 장면으로  마지막 장 ‘귀화전도’에 도깨비가 나오는데, 깜깜한 밤에 제사 지내러 가는 아들의 길을 안내하는 ‘불을 든 도깨비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림 속 도깨비는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며, 인간이 헤쳐나가기 어려운 길을 안내할 정도로 초월적인 능력을 가졌습니다. 또한 잡된 귀신이나, 저승사자처럼 인간에게 무서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곤경에 처할 때 나타나 도움을, 주는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신뢰감 있는 우호적 존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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