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전반기 어진 임금 미추왕
2023. 9. 29. 07:53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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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어떤 글에서는 미조(味照)라 하였다. 성은 김씨(金氏)이다. …김씨 시조 김알지(金閼智)는 계림(鷄林)에서 태어났는데, 탈해왕(脫解王)이 거두어 궁중에서 기르다가, 나중에 대보(大輔)에 임명하였다. 알지는 세한(勢漢)을 낳고, 세한은 아도(阿道)를 낳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는 욱보(郁甫)를 낳고, 욱보는 구도(仇道)를 낳았는데, 구도가 바로 미추의 아버지이다. 〔전왕〕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에게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나라 사람들이 미추를 왕으로 세웠다. 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갖게 된 시초이다.’ 『삼국사기』
미추왕은 김씨로서 처음으로 신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첨해 이사금에게 아들이 없었으므로 미추왕을 내세웠다고 하지만 이는 곧 일반적인 왕위 계승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첨해왕에게 아들이 없었다면 그의 사위가 이어도 되지만 조분왕의 둘째 사위인 미추가 왕위를 이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석연찮은 것입니다. 이것은 이전 왕인 첨해 이사금의 통치와 관련 지을 수 있는데요. 그는 재위 시절 우로를 왜왕을 모독한 것을 핑계 삼아 사지로 내몰았으며 이로 인해 반발도 있었을 것입니다.
‘대궐 동쪽 연못에서 용이 나타나고, 금성 남쪽에 쓰러졌던 버드나무가 저절로 일어났다.’는 기록은 당시 정권을 둘러싼 갈등을 표현한 것을 보고 있습니다.
‘첨해왕 15년(261) 겨울 12월 28일에 왕이 갑자기 병이 나 돌아가셨다.’ 『삼국사기』
첨해왕에 대해서 갑자기 죽은 것으로 기술한 것은 아마 살해당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렇게 첨해 이사금의 뒤를 이은 것은 미추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즉위가 순조로울 수 없었습니다. 바로 첨해 이사금의 추종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년에는 ‘봄 3월에 용이 궁궐 동쪽 연못에 나타났다’거나 ‘가을 7월에 금성(金城) 서문에 불이 났는데, 불길이 번져 민가 3백여 채가 불탔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이것은 미추왕의 즉위를 반대한 세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2년(263) 2월에 왕이 직접 국조묘(國祖廟)에서 제사를 주관하고 크게 사면하였다고 하니 정적을 제거하고 비로소 왕권을 안정을 찾은 것을 보입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에야 미추왕이 되었는데 그는 신라 왕조 역사상 첫 김씨이기도 이지만 백성들을 위해 선정을 펼친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성들을 돕기 위한 정책들을 펼쳤으며 늙고 가난한 사람들을 진휼하고, 신하들이 궁전을 고치자고 했으나 백성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이유로 거절하였습니다. 또한 백성들이 생계의 근본인 농사를 짓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농사에 방해가 되는 다른 일들을 일체 없애버렸으며 지방 영토를 순방하며 백성들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266년에는 백제가 신라의 봉산성을 공격했습니다. 당시 성주 직선(直宣)이 힘센 군사 200명을 거느리고 나와 격퇴했다고 합니다. 2백명이라는 병력을 본다면 전면전이라고 보기 어려운데요. 아마 백제 입장에서 신라의 전력을 알아보기 위해 군대를 동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7년(268) 봄과 여름에 비가 오지 않자, 왕이 여러 신하들을 남당(南堂)에 모이게 하여, 친히 정치와 형벌집행의 잘잘못을 아뢰도록 하였다. 또 사신 5명을 파견하여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어려움과 근심을 알아오도록 하였다.’ 『삼국사기』
남당(南堂)은 신라의 왕궁인 월성(月城) 안에 설치된 정청(政廳)으로 미추왕은 자신의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지 않고 대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정무를 처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내물왕의 왕비인 보반부인과 실성왕의 왕비인 아류부인이 미추왕의 딸인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의 아버지 미추 이사금 시기와 남편들의 시기가 너무 차이 나는데, 학계에서는 신라 초기 왕계에 기년 조작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조작 이나타났을까. 그것은 바로 미추왕이 가지는 위상 때문인데요. 미추왕은 백성들에게 많은 신뢰를 얻었던 왕으로 미추왕이 얻었던 지지를 후광으로 삼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 제14대 유례왕 때 이서국 사람들이 쳐들어왔습니다. 이 때 이서국은 경북 청도지방에 있던 소국이었습니다. 이곳은 가야 땅이었지만 신라가 유례왕 9년에 영토를 확장하면서 가야 땅도 잠식해 나갔습니다. 이에 반발한 가야가 왜의 힘을 빌렸습니다. 신라에서 군사를 동원해서 막았지만 오랫동안 막아내지 못하고 오래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이상한 군사가 나타나서 신라를 도왔는데, 그들은 모두 댓잎을 귀에 꽂고 있었습니다. 신라 군사는 그들과 힘을 합해서 이서 사람들을 물리쳤습니다.. 이서 사람들이 물러간 뒤에 그 댓잎병정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댓잎만이 미추왕의 무덤 앞에 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제야 댓잎병정들이 죽은 미추왕이 보낸 혼령군이었으며, 그 음덕에 이서 사람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댓잎병정이 나타난 무덤이라고 죽현릉(竹現陵)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혼령군이 있을리 없습니다. 따라서 당시 신라와 화친관계에 있던 백제가 도와준 것을 보는데요. 하지만 당시 백제는 가야와도 친했고 왜와도 친했습니다. 그렇다고 백제가 가만히 있자니 가야의 세력이 커지는 것도 우려되었습니다. 백제는 이 상황에서 대놓고 신라를 도와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댓잎군사가 아니었을까요. 백제군은 철수하면서 자신들을 치장한 댓잎 조각들을 미추왕릉 앞에 쌓아두고 갔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미추왕의 선정과 신라인들의 믿음이 백제에도 알려진 것 같습니다.
제37대 혜공왕 14년(779년)4월,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김유신공의 무덤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속에 한 사람이 준마를 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장군과 같았습니다. 갑주를 입고 무기를 든 40여명의 군사가 그 뒤를 따라서 죽현릉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 후에 능 안에서 우는 통곡을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호소하는 말이 다음과 같습니다.
“신은 평생에 난국을 구제하고 삼국을 통일한 공이 있습니다. 나라를 진호(鎭護)하여 재앙을 없애고 환란을 구제하는 마음은 잠시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난 경술년에 신의 자손이 아무런 죄도 없이 죽음을 당하였으니 다른 곳으로 멀리 가서 다시는 이 나라를 위하여 힘쓰지 않으렵니다. 임금님께서는 허락하여 주십시오.”
미추왕이 대답하기를, “공과 내가 이 나라를 지키지 않는다면 저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된다는 말이오. 아무 말 말고 그전처럼 힘써 주시오.”
김유신이 세 번을 청하였으나 왕은 세 번 다 허락하지 않으니 회오리바람은 이내 돌아갔습니다. 혜공왕이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대신 김경신을 보내어 김공의 능에 가서 사죄하고 공덕보전(功德寶田) 30결을 취선사에 내리어 명복을 빌게 하였습니다. 미추왕의 혼령이 아니었더라면 김유신공의 노여움을 막지 못했을 것인즉, 나라사람들이 그 덕을 기리며 삼산(三山)과 함께 제사를 게을리 하지 않고 서열을 오릉의 위에 두어 대묘(大廟)라 불렀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선 김유신의 노여움을 살만한 일이 벌어진 것인데 혜공왕 6년에 김유신의 자손인 김융이 복주(伏誅)당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삼국사기』 권9 신라본기9 혜공왕 6년(770)조에 따르면 김융은 반혜공왕의 입장에서 난을 일으켰다가 죽임을 당한 바 있습니다.
한편 『삼국사기』에 의하면 제36대 혜공왕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오묘(五廟)를 정하는데 미추왕은 김씨의 시조이므로 태종대왕·문무대왕은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한 큰 공이 있으므로 모두 세세불훼(世世不毁)의 신위로 하고 거기에 친묘 2위를 합해 오묘로 하였습니다. 대묘에는 미추왕을 모셨으며 신라의 가장 큰 국가적 제사인 오묘 중 가장 으뜸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김씨 후손들에 의해서 미추왕이 더 높이 평가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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