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려(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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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는 정말 선죽교에서 죽었을까.
우리나라 역사에 많은 충신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나라의 멸망의 앞두고도 충절을 지킨 신하들은 깊은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도 나라에 대한 곧은 마음을 지킨 고려시대의 신하가 있었으니 그것은 아직도 회자되는 정몽주입니다. 정몽주는 고려 말기에 새로운 이념 체계로 도입된 주자학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오부학당과 향교를 세워 널리 보급하는 데 공헌했습니다. 또한 예(禮)를 대중에 전파하기 위해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가묘(家廟)를 세우고 신주(神主)를 처음 세웠습니다. 고려에 성리학의 기초를 세우고 그 명분을 지키며 죽었기 때문에, 후에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로 추앙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후대에 알려지게 한 것은 고려에 대한 충절입니다. 바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
2022.10.08 -
고려의 운명을 결정지은 위화도 회군
원나라가 쇠퇴하고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고려말기도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휘말려 들어갔습니다. 특히 명나라가 요동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그 이북지역은 본래 원나라 영토였기 때문에 요동지역을 귀속한다는 조치는 고려로서는 반발을 살만한 조치였습니다. 고려는 이에 대해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것은 철령 이북의 지역은 본래 고려의 영토로 원나라 때 잠시 빼앗기기는 했으나 공민왕 때에 다시 수복하여 수령을 파견하여 통치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명나라는 이 사실을 부정하고 철령위 설치를 고려에 알렸습니다. 이에 대해 1388년, 고려의 우왕과 최영장군은 반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세운 계획은 바로 요동정벌이었습니다. 당시 고려 조정은 14년 동안 왕보다 더한 권세를 누리던 이인임을 몰..
2022.10.07 -
고려를 지킨 마지막 불꽃 최영장군
최영장군은 고려말의 장수로 특히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말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최영의 본관은 철원, 아호는 철성으로 최영은 아버지가 남긴 유언 견금어석을 가죽 띠에 써서 허리띠에 차고 다녔습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사치스러운 모습을 경계하며 살았습니다. 당시에는 고위관리들이 돌아가며 집으로 초대하여 성대한 잔치를 벌이곤 했는데 최영의 집에서 잔치를 할 때 초대받은 사람들은 어떤 음식이 나올까 궁금해 했다고 합니다. 근데 막상 가니 음식상이 한참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손님들 입장에서는 잔치상이 왜 나오지 않느냐고 불평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게 해가 저물 즈음에 상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상은 밥과 나무물침이 전부였습니다. 모두 실망할 마음이 가득할 때즈음 사람들이 이 음식을 먹기..
2022.10.06 -
화약을 만들어 고려를 지킨 최무선
화약은 중국의 4대 발명품 중 하나로 송나라 시기 때 발명되었습니다. ‘초석, 유황, 목찬’을 혼합해 만든 흑색화약은 이미 당나라 때 사용되고 있었는데 송나라 때 화약을 이용한 다양한 무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진종 때 998년에서 1022년 사이의 일이었습니다. 12세기 이후에는 모든 분야에서 사용되었고 이슬람을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당시 유럽은 중세봉건시대 후기였습니다. 기사들이 중장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화약의 전래로 대포와 총이 개발되었고 이것은 기사계급의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언제 전해졌을까요. 당시 고려시대 후기 왜구에 의해 골머리를 앓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몽골의 침략을 겪은 일본은 중앙정부의 힘이 약해지고 지방영주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 ..
2022.10.05 -
염흥방 토지 점탈사건으로 고려말 보기
고려시대에는 소위 특권계층들이 농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부의 원천은 농장만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유지하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결국 이 땅을 개간할 사람이 있어야 했습니다. 다르게 이야기한다면 대농장을 소유한다는 것은 결국 토지와 함께 그것을 운영할 노동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고려시대의 관료들을 자신들의 봉급을 수조권으로 받았습니다. 즉, 해당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닌 그 토지에 대한 세금을 거둘 권리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국가에 대한 봉사의 명목으로 국가가 농토의 수확물 가운데 10분의 1을 거두는 토지세를 수조권에게 주는 것으로 수조권을 행사하는 사람을 전주(田主), 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전객(佃客)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조권의 획득은 향후 토지를 가질 수 있..
2022.10.04 -
문익점과 목화이야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초등학교 때 이미 배우는 단어 중에 의식주란 것이 있습니다. 그만큼 입고 먹고 사는 집이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 중에서도 의가 가장 앞에 있습니다. 셋 다 중요하지만 옷을 입어야 어디에 밥을 빌어먹을 수 있고 집도 지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옷도 안 입고 생산 활동에 종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 조상들은 부유층들은 비단을, 서민들은 삼베를 입었습니다. 지금은 여름에 입는 모시나 삼베를 옛날에는 겨울에도 입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우리 땅에 살던 조상들도 겨울에 비교적 따뜻하게 입고 지낼 계기가 생겼는데요. 바로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문익점은 1331년에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서 태어나 1360년에 과거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서장관 자격으로 원나라를 ..
2022.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