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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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을 그린 조선 후기 화가 윤두서
윤두서는 조선후기의 선비 화가입니다. 김홍도나 신윤복에 비해 윤두서란 우리에게 낯설게 들릴 수 있는데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그의 작품으로는 자화상이 있습니다. 종이를 뚫고 나올 듯 강렬한 눈빛, 넘치는 기개와 결연한 의지, 그 강직한 얼굴에 고독과 우수까지 엿보이는 풍모를 보이는 이 그림에는 그의 얼굴이 집중적으로 부각되어 있으며 특히 살아 움직이는 듯한 수염이 인상적인 그림입니다. 사실 이 그림은 얼굴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실제로는 가슴 부분의 옷깃과 옷주름까지 선명하게 표현된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종이에 달라붙은 점착력이 약해져 지워져 버렸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그가 죽기 5년 전에 그린 그림으로 자화상으로는 드물게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만큼 조선 후기의 회화의 한 면을 잘 표현하였다..
2023.04.12 -
조선통신사
일본막부시기에 조선에서 파견한 외교사절단을 조선통신사라고 하며 이 때 ‘통신(通信)’이란 ‘신의를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이러한 통신사 이전에 조선과 일본 사이에는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이 있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인해 난리는 끝이 났지만 조선은 이미 황폐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임진왜란 이후에 양국은 사이가 안좋게 지낼 줄 알았지만 이웃나라인 만큼 아에 교류를 안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으로 출병하지 않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는 사명대사 유정과의 교섭을 통해 조선과의 국교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이 조선의 사절단을 초청한 이유는 일본 바쿠후에 대한 좋지 않았던 민심을 돌리기 위함에 목적이 있었고 그리고 조선에서 온 사절단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바쿠후에 예를 갖..
2023.04.11 -
소설 심청전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까.
우리나라의 고전소설 중에는 『심청전』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요. 그러면 심청은 소설 속의 허구인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심청이가 실존인물이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라도 곡성이 심청이 나온 배경이라는 이야기인데요. 그런데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졌으므로 그는 해안가 마을에 살았다고 생각할 것인데 의외로 곡성이란 곳은 내륙지방이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나온 데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던 것일까요. 전남 곡성군 오곡면 송정리가 바로 심청마을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그러면서 이 곳 사람들은 심청이가 자신의 동네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을 안에는 심청이가 마을 아낙네들한테 젖을 얻어먹었다고 하는 심청 우물이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이 우물은 마르지 않으니 심청이의 효심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
2023.04.08 -
철종이 된 강화도령
조선의 25대 왕은 철종입니다. 강화도령으로 불린 그는 어떻게 왕이 될 수 있었을까. 당시 왕위에 오를 수 있던 사람은 철종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남연군의 아들 흥선군 이하응 당시 30세의 나이였고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종손인 이하전으로 당시 8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은언군의 손자 이경응이 나이는 22살, 은언군의 손자 이원범이 나이 19세였습니다. 이 외에도 이하응의 형제들이 왕위에 오를 자격이 있었습니다. 왕위를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은 왕실에 있었고 그에 따라 이하전이 유력해 보였습니다. 그에 따라 이하전이 거의 내정되었다시피 되었는데 중간에 강화 도령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하전은 매우 영특하고 기개도 넘쳤기 때문에 차기왕으로 적합했을지 모르나 당시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에게 필요한 것..
2023.03.15 -
효명세자와 신정왕후
‘오늘의 경사는 곧 국조에서 100년 이래 처음 있는 경사이므로 직접 전궁께 하전을 올렸고 대정에서 축숭을 받았다. 천일이 맑고 화창하여 신인이 서로 기뻐하고 있으니, 이러 때에 견휼하는 정사가 의당 증외의 백성들에게 미쳐야 한다. 제도의 구환과 증렬미 5분의 1, 각공의 지난 것이 남은 것은 1만석까지, 시민의 요역은 1개월까지, 현방속은 30일까지를 탕감함으로써 기쁨을 기억하고 경사를 함께하는 뜻을 보아라.’ 『순조실록』 효명세자가 태어났을 때 순조가 감격하여 한 말입니다. 당시 효명세자는 오랜만에 세자로 책봉된 정실 왕비 소생원자이기도 했습니다. 3세 때 그는 영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일(日)자에 대(大)자를 붙인 글자입니다. 따라서 함경도 관찰사 김이영(金履永)은 세자의 휘와 같다는 이유에서 이름..
2023.03.13 -
홍경래의 난
‘평서 대원수는 급히 격문을 띄우노라. 무릇 관서 지방은 단군 조선의 터전으로 예부터 문물이 융성한 곳이다. 임진왜란 때는 나라를 지키는 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서쪽 땅을 더러운 흙처럼 버렸다. 심지어 권세 있는 가문의 노비들조차 서쪽 땅 사람들을 보면 반드시 평안도 놈이라 일컫는다. 어찌 억울하고 원통하지 않겠는가? 지금 나이 어린 임금이 위에 있어 권신들의 간악한 짓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김조순의 무리가 국가의 권력을 갖고 노니, 어진 하늘이 재앙을 내려 겨울 번개와 지진이 일어나고 바람과 우박이 없는 해가 없으니, 이 때문에 큰 흉년이 들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셀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 세상을 건질 성인이 나타났으니 그분은 철기 10만의 군대를 거느리셨으며, 부정부패를 척결할..
2023.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