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건국의 수수께끼 박헉거세 탄생설화

2022. 6. 16. 15:28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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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아이에게는 '알지거서간'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왜냐하면 그가 처음 입을 열었을 때 '알지거서간'이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고대국가를 세운 시조들은 믿기 힘든 탄생설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대 국가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설화는 『삼국유사』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박헉거세의 탄생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은 바로 옛날에 진한 땅이라고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여섯 마을이 있었고 이 중 마을의 지도자들이 알천이라는 둑 위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그를 임금으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그 때 양산 밑에 나정이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이 우물  곁에서 이상스러운 기운이 내려와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어른들은 그 곳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발견한 것은 바로 백마 한 마리가 꿇어 앉아 절하는 시늉을 하고 있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곳을 보니 보라빛 알 한 개가 있었고 그 때 말은 울음소리를 내더니 하늘로 올라갑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알을 깨어보았고 사내아이가 나왔습니다. 어른들은 이 아이를 목욕시킵니다. 그 순간 새와 짐승들은 춤을 추었고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밝게 빛이 납니다. 그러던 그 때 알영우물에서 계룡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왼쪽 겨드랑이로부터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계집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계집아이의 입술은 마치 닭의 부리와 비슷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계집아이를 목욕시켰더니 그 부리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사내아이에게는 '알지거서간'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왜냐하면 그가 처음 입을 열었을 때 '알지거서간'이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집아이에게는 그가 나온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리고 열세 살이 되었을 때 사내아이는 왕위에 올랐고 계집아이는 이 왕과 결혼하여 왕후가 되었습니다. 이 둘은 나라를 세우고 이것이 바로 서라벌입니다. 흔히 건국설화에서 말이 나오면 우리나라에서는 기마민족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박혁거세는 기마민족의 후예로 보고 있으며 혹은 물과 관련된 해상세력일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말의 등장은 하늘에서 내려온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박헉거세를 추대한 6마을의 어른들은 촌장으로 이들도 북쪽의 고조선에서 내려온 이주민으로 보고 있으며 이들이 토착민과 힘을 합쳐 살아가는 도중 박헉거세집단이라는 좀더 선진집단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계집아이에게는 그가 나온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이름을 지어줍니다.


신라뿐만 아니라 우리 고대국가의 건국설화를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단 하늘의 자손이라는 점입니다. 고조선을 세운 단군도 아버지가 하늘의 신인 환인의 아들 환웅이었으며 고구려의 시조 주몽도 하늘의 아들인 해모수와 물의 신인 화백의 딸 유화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박혁거세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농업사회에서 하늘의 기운을 알아차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는데 하늘의 자손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마치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묘사했을 것입니다. 두번째는 동물들의 등장입니다. 고조선에서는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고 고구려 건국설화에서는 다른 형제들에게 쫓기는 주몽을 돕기 위해 자라와 물고기가 등장하였으며 박헉거세 신화에서는 말과 계룡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비범한 인물료 묘사되는 이들에게도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없었으니 세번째는 바로 조력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조선의 건국신화에서는 풍백, 우사, 운사라는 신하들이, 고주몽에게는 그를 따르는 오이, 마리, 협부라는 협력자들이, 박혁거세에게는 여섯 촌락의 촌장이라는 세력이 도움을 준 것입니다.
 박혁거세의 건국설화에서는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우물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수도가 집집마다 있는 시대에서는 우물이 필요 없지만 지금의 수도가 예전의 우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수도가 없으면 상당히 불편하겠지요. 특히 그 옛날 우물은 생활의 필수적인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고려왕조에서 작세건이 아내로 데려온 서해용황의 딸 용녀도 우물을 통해 왕래했다고 했을 만큼 우물은 생활적으로 필수적인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성시되는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물을 다스리는 것은 고대에서는 엄청 중요한 일이었으며 홍수나 가뭄을 조절하지 못하여 그리고 오곡이 제대로 익지 못하면 그 허물은 왕에게 돌아가 왕을 바꾸거나 죽었다는 기록이 『위서』 「동이전」 ‘부여조’에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박혁거세왕 재위 60년인 서기 3년(단기 2336년) 음력 9월 '용 두 마리가 금성의 우물 가운데 나타났는데, 우레가 울고 폭우가 쏟아지며 궁성의 남문에 벼락이 쳤다' <삼국사기>
삼국사기의 기록에서도 우물에서 용이 나타났다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은 이러한 용의 등장을 후에 있을 박씨, 김씨, 석씨 간의 왕위 각축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추측하는 것이긴 하지만 우물과 왕의 등장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물이라는 게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 즉 탄생의 기원으로 보고 설화에 등장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탄생설화를 가진 박헉거세는 나라를 안정적으로 다스렸다고 전하고 있으며 『삼국사기』에서는 낙랑과 왜인이 쳐들어왔으나 박혁거세가 거룩한 덕에 철수하고 변한이 항복했다는 기록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알영부인의 탄생 역시 심상치 않습니다. 목욕을 시켰더니 닭의 부리와 같던 입술이 떨어져 나간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아마 알영은 특별한 의식을 통해서 초대황후가 된 건 아닌가 추측이 가능한데요. 또한 알영은 계룡의 왼쪽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는 기록과 함께 『삼국사기』에서는 오른쪽 옆구리에서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건 마치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한 석가모니를 연상케 합니다. 후에 불교가 신라에서 공인되면서 그것에 맞게 각색된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허황옥과 함께 불교가 들어온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과 같이 일각에서는 서기 전후에 이미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국호를 계림이라 하였다고 전해지는데요. 그 이유는 왕후가 계정에서 탄생하였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초대왕후 알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권력이 센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럼 백마가 박혁거세가 탄생한 나정이라는 곳은 어디일까요. 아직 우물로서는 확인되지 않았는데요. 따라서 나정이 우물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음양설에 비추어 볼 때 양과 음을 대표하는 박혁거세와 알영이 둘 다 우물에서 탄생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박혁거세를 처음 씻긴 곳이 동천이라고 하는 점을 들었습니다. 나정이 우물이라면 동천에 가서 씻길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라의 다른 우물들은 우물 정자 앞에 두 글자가 붙는데 나정만 한글자만 붙는다는 것은 나정이 우물이 아니라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정으로 추정되는 우물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것이 나정이 우물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왕이 하늘로 올라갔다. 이레 뒤 유해가 흩어져 땅에 떨어졌으며 왕후도 또한 죽었다. 나라 사람들이 합장을 하려고 했더니 큰 뱀이 나와 못하도록 막았다.
다섯 덩이의 몸을 다섯 능에 각각 장사했다. 이름을 사릉(蛇陵)이라고 했다.”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았던 박혁거세는 마지막 장면도 그러한데요. 아마도 뿌려지는 씨앗이 다시 새 생명으로 돋아나듯 신라의 농업의 신으로 부활하여 백성을 돌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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