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들이 좋아한 유리는 어디서 왔을까.
2022. 6. 11. 11:11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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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들이 가장 좋아했던 보석류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연히 금과 은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라인들이 금과 은만큼 좋아했던 보석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유리입니다. 현대의 유리는 다양한 용도로 쓰여 우리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데요. 아마 이 글을 보고 있는 동안에도 보이는 곳에 유리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옛날 신라인들에게도 유리는 귀중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유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신라인들은 황금을 사랑했고 황금을 지방세력에게 나눠주기도 했지만 유리는 오로지 왕릉급 무덤에서만 나온다고 합니다. 그만큼 소중한 것이었고 수입품이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유리는 지중해 지역에서 약 4500년 전에서 탄생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거푸집을 이용해 유리를 생산해냈는데 기원전 1세기 대롱불기라는 기법이 사용되면서 로마제국에서 유리제품이 널리 퍼졌습니다. 로만글라스로 불린 당시의 유리제품은 동아시아로 왔을 것이고 그리고 주로 장신구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장신구로 사용되는 유리가 그릇, 잔 같은 용기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다만 유리그릇이나 유리잔은 지금처럼 보편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금으로 만든 컵을 쉽게 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유리로 잔을 만들어 사용한다는 것이 삼국시대에는 꽤나 부유층에서나 해당하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황남대총이나 천마총등에서 발굴된 유리잔은 성분 분석한 결과 이집트와 중앙아시아에서 만들어졌으며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은 흑해 연안에서 표면을 깎는 장식이 추가되어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1500년~1600년 전에 지구 반대편의 물건이 신라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라에서 발견된 유리잔이나 그릇은 4~5세기에는 카자흐스탄 북부의 초원길을 경유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6~7세기에는 중국 남북조 제국과의 교섭과정에서 사막길을 통해 사산조 페르시아 문물이 들어왔을 것이며 8~9세기에는 바닷길을 통해 이슬람문물이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초원길, 바닷길, 사막길 등 다양한 경로로 신라는 다양한 나라와 교역을 했고 신라는 이들 길의 최종 도착지임에도 불구하고 교류가 활발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리는 여인들이 치장하는 구슬로 사랑받았습니다. 중국의 역사서 위지동이전에는 “구슬을 보배로 삼아 장식했고 금은비단은 진귀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백제에서는 다양한 색상의 유리구슬의 꿰어있는 모습이, 신라에서는 푸른 색 계열의 유리구슬들을 꿴 모습으로, 가야에서는 색깔별로 꿰진 목걸이에 수정이 달려있는 모습으로 출토되었는데 백제, 신라, 가야에서 선호한 유리구슬의 조합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그저 개인의 취향으로 여겨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삼한∼삼국시대 무덤에서 발견된 유리구슬만 해도 수십만 점에 이른다고 합니다. 다만 고구려에서는 구슬이 애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리가 삼국시대에 얼마나 귀했으면 경주 구황동 삼층석탑에서도 많은 유리구슬이 출토된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고대국가에서 발견되는 유리들이 100% 수입품이었을까 혹은 자체 생산한 것은 없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아마도 유리가 귀중품으로 쓰였을 만큼 우리가 자체 생산하도록 노력했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경북 월성군 내남면 성부산 기슭은 4~6세기 경 유리가마터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유리파편과 더불어 우리나라 고대청색구슬과 회색구슬, 황색구슬등을 수습하여 한국자원조사연구소에서 성분 분석하였는데 신라시대에 이미 소다유리와 납유리가 함께 존재했다는 결론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서역에서 생산된 고대유리와 구성비율이 달라 관심을 모았습니다. 서역의 유리는 5가지 유형으로 분류되지만 신라유리는 이 분류에 들지 않는 새로운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당시 연구진들은 신라유리파편은 외국에서 수입했다기보다는 자체 생산한 것으로 보았고 중국산 유리와는 성분이 달랐을 뿐만 아니라 일본서 발견되는 고대유리파편과 성분이 비슷한 우리나라 유리제조기술의 영향이 일본에 미쳤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한편 백제에서 발견된 유리파편을 분석한 결과 백제는 납성분이 68%나 들어있는 전형적인 납유리로 보았고 신라유리는 알칼리 재성분이 50%이상이 섞인 알칼리계 유리로 조사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납유리보다는 알칼리유리가 더 고급기술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백제유물에서 발견되는 유리는 중국에서도 발견되어 중국에서 전래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신라에서 이보다 높은 수준의 알칼리 유리 제조기술은 어떻게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삼국시대 때 이미 유리를 자체 생산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방에서 유입되거나 교역으로 들어오더라도 각 유적지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양이 많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신라 백제에서 발견되는 유리 제품 중 일부는 중동이나 서양에 비해 기법이나 색채에서 뒤떨어지고 미숙한 점이 많다고 이야기하며 자체 생산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경북 월성군 내남면 덕천리 성부산 기슭이 후에 한국과학기술원 연구진의 연구로 이곳이 유리가 아닌 쇠를 만들었던 자리로 판명하였습니다. 이 곳은 1981년 5월에 발견된 곳으로 당시에는 “용광로지에서 3백여 평에 걸쳐 응고된 유리덩이가 지하에 대량 묻혀 있으며 출토된 유리는 청록색을 띠고 있어 신라고분에서 출토되는 각종 청록색 유리제품과 동일한 것”이라 발표하였습니다. 다시 이 자리를 연구한 한국과학기술원의 연구진은 출토물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고 과학적 분석 방법을 통해 성분을 조사하였는데 이 곳에서 제철소에서나 나오는 쇠찌꺼기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들은 “출토물이 청록색이고 바탕이 아모르퍼스여서 얼핏 응고된 유리덩어리로 오인된 듯하다.”며 자세히 보면 쇳물방울자국이 보이며 유리덩어리라면 쇳물방울 흔적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축조 연대도 신라 때보다 더 후대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라 때 8백50도에서 쇠를 만든 것으로 보이는 유적지가 있는데 이 곳은 천삼백도씨에서 쇠를 녹인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삼국시대의 유리는 외래에서 유입되었으며 자체 생산된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다만 백제 미륵사지와 고대 일본에서 출토된 유리를 성분분석하고 산지를 추정했는데요.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유리시료를 전자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7~8세기 일본에서 출토된 납유리의 성분조성과 거의 일치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것을 연구한 연구팀은 미륵사지 등에서 제조된 납유리를 원자재로 일본에 들여가 가공해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백제에서 완제품을 수입해 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유리는 수입했을 것이라는 보고 있으며 그에 따라 삼국시대 때 유리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여전히 물음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주 구황동 삼층석탑에서 나온 다량의 유리구슬이 나왔습니다. 이러한 것은 유리가 부처에게 바치는 귀한 보석이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유물이며 이와 비슷한 유물로는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병,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유리잔과 사리병 등이 있습니다. 이후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그 전에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건국의 염원을 담아 금강산에 발원한 사리장엄구의 사리병이 있는데 이것의 재질도 역시 유리로 이것은 일반유리보다 만들기 어렵다는 석영유리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리는 녹는 온도를 낮추기 위해 나트륨, 칼륨, 납을 넣거나 안정제인 산화칼슘을 쓰는데 일반유리의 이산화규소의 비율은 대략 60~70%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온도는 1천도 미만의 열로 제작한다고 하는데요. 석영유리를 만들려면 1500℃의 열이 필요하니 수준높은 유리제조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신라 이후의 유리제조기술이 퇴화되지 않고 발전을 거듭했다는 이야기인데 그 과정은 미스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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