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시대의 대표 토기 빗살무늬토기
2022. 6. 3. 02:20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선사시대부터 고조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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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대 이전의 시기를 선사시대라고 하며 선사시대는 인류가 사용한 도구에 따라 시대를 구분합니다. 그 중에서 돌을 주요 도구로 사용한 시대를 석기시대라 하며 석기시대도 세분화하였을 때 최종단계를 바로 신석기 기대라고 부릅니다. 특히 신석기 시대는 수렵채집경제의 구석기시대보다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신석기시대에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었고 이는 정착생활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의 뗀석기에서 더 나아가 간석기를 사용하고 직물기술을 개발하기도 하였으며 토기를 제작하여 저장하는 생활을 보였습니다.
이 토기는 인류생활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났고 이즈음 몸집이 작은 동물이 등장하고 다양한 식물이 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불을 이용하여 음식물을 조리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식재료의 다변화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용기가 필요했는데요. 당시의 인류는 흙과 물을 섞은 뒤 불에 구워 단단한 그릇, 즉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달리 말하면 당시 한반도는 농경이 실시되지는 않았지만 토기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식생활의 개선으로 이어졌고 40세이던 평균수명도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럼 한반도를 대표하는 토기는 바로 무엇일까요. 바로 빗살무늬 토기입니다. 한반도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 빗살무늬토기는 교과서에서도 한 번쯤은 보았을 법한데요, 1925년 서울 한강에 큰 홍수가 나면서 암사동 지역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토기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 빗살무늬 토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빗살무늬토기는 아랫부분이 뾰족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첨저형 토기라고도 하는데 사실 빗살무늬토기에는 바닥이 평평한 토기도 있다고 하네요. 그러면 우리가 알고 있는 빗살무늬토기는 왜 아래가 뾰족할까요. 많이 알려진 것으로는 모래나 땅속에 쉽게 파묻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은 이 토기들이 발견된 곳들이 바로 강가가 바닷가라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요. 한 쪽에서는 한 사람이 많은 그릇을 옮길 수 있도록 고안된 모양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양이 한꺼번에 쌓기에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빗살무늬토기의 문양을 살펴볼까요. 맨 위에는 같은 문양이 연속적으로 나 있는데 이것을 '압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점을 찍어 마름모 모양의 무늬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자돌’이라고 하며 그 아래에 선으로 쭉쭉 그어져 있는 무늬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빗살무늬토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문양은 ‘침선’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무늬를 왜 넣었을까요. 빗살무늬토기를 만든 신석기인들은 농사를 지었으니 햇빛이나 빗줄기를 토기에 무늬로 새겨넣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편 흙을 빚어 만든 토기가 자꾸 깨지다 보니 이를 줄이기 위해 문양을 넣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청동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가 나타나기 때문에 아마도 이러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빗살무늬토기 하단에 구멍 세 개가 있습니다. 아마 빗살무늬토기 아래 부분에 구멍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도 있었을 것이고 알아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일부러 뚫은 듯한 구멍에 대해선 토기에 대한 재활용의 흔적이라고 보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토기가 사용하다 보면 깨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토기가 자기가 아끼는 토기라면 아까우니까 우리가 옷이 해지면 꿰매서 입듯, 토기도 구멍을 뚫어 이어서 사용했을 것이라는 겁니다. 깨지면 다시 만들면 되지, 다시 이렇게 이런 식으로 이어 붙여서 사용할까 싶기도 하지만 아마도 당시에는 이런 토기의 제작이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에 드는 토기를 얻는다면 당시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구멍을 뚫어서 다시 사용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닙니다.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뿐만 아니라 요동지방, 발해만 연안, 내몽고, 알타이지역, 남부러시아, 핀란드, 발틱연안, 독일 등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약 1만 년 전에 일어난 인류의 대이동과 관련하여 빗살무늬토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요. 위 지역을 따라 가다보면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초원길을 이을 수 있는데 그러한 경로를 통해 인류의 교류가 있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빗살무늬토기가 진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 예로 2011년에는 부산 가덕도에서 40여구에 달하는 신석기인의 유골들을 그 경로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발견된 것은 유럽형 유전자였습니다. 그럼 과거 이 지역사람들은 유럽계 사람들이었을까 라는 의문점이 드는데요. 이들은 처음부터 여기에 머무른 사람들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 한반도로 유입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죠. 그러면서 빗살무늬토기도 자연스레 유입된 것은 아닐까요. 학계에서는 우리 민족의 시작은 신석기인으로 보고 있는데 어쩌면 그 시작부터 우리는 단일민족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된 장소로 암사동유적지를 들 수 있습니다. 바로 한강을 끼고 있는 곳인데요. 우리나라 신석기문화를 대표하는 이 곳은 우리나라 중서부해안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지이기도 합니다. 이 곳의 가치를 전세계에 알린 사람은 세라 밀리지 넬슨이라는 미국인 학자로 1973년 '한강 유역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연구'를 발표, 암사동 유적과 빗살무늬 토기 등 우리나라 선사 유적의 가치를 널리 알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강원오산리 유적을 세계 고고학사전의 표제어로 등재했고 1999년에는 오산리 유적을 소재로 한 소설 『영혼의 새(Spirit Bird Journey)』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 입양한 한국 출신의 여성 고고학도 클라라가 한국 유학 도중 오산리 유적발굴에 참가하면서 자신의 뿌리와 인류 문화의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그만큼 사라 넬슨은 우리나라 고고학에 관심이 상당했던 학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암사동 유적지를 가리켜 이 곳이 한반도 문화의 중심지가 틀림없었을 것이라며 생전에는 강동구가 추진 중인 암사동 유적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힘을 보태겠다고도 했습니다.
빗살무늬토기는 한국의 신석기 문화를 이야기하는 가장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그에 따라 이러한 유물이 발견된 서울암사동유적지의 가치도 재조명받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위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빗살무늬토기의 기원에 대해서도 새로운 이야기가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시베리아 기원설이 우세했는데요. 최근 연구에서는 중국동북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일대를 그 기원으로 보고 있는 시각이 등장했습니다. 이 지역의 토기들이 모양과 모양에 나타난 문양의 다양성이 특출하고 시기적으로 앞서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암사동을 포함한 한반도 중서부 지역에서 정교하고 완성도가 높은 빗살무늬토기가 나왔기 때문에 이 지역을 빗살무늬토기의 원조로 보려는 시도가 생긴 것인데요. 빗살무늬토기의 기원을 본래 시베리아를 보던 시선에서 동아시아로 옮겨진 데에는 탄소 동위원소 측정법이라는 간단하고 정확한 유물 연대 측정방법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판단한 가장 오래된 빗살무늬토기는 제주도를 비롯한 한국의 남서해안에서 발견된 토기이며 그 다음은 규슈 지방과 요하 순서로 밝혀졌습니다. 이런 토기들은 바이칼호 인근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도 발견되지만 이것들은 대개 한반도에서 출토된 것보다 대개 7000년 이상 지난 시점에의 유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토기란 것이 결국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며 처음 만들어진 유물이잖아요. 이를 근거로 빗살무늬 토기 그리고 토기의 원조는 한반도라는 생각은 좀 섣부르고 지나친 국수주의에 의존한 생각인 것은 버릴 수 없지만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숱하게 봐왔던 그 토기가 얼마나 위대한 유물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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