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청동기 시대의 모습, 농경문 청동기

2022. 6. 4. 07:14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선사시대부터 고조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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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문 청동기

197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한 고물상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파랗게 녹슨 청동 조각하나를 내어놓았습니다. 그 상인은 이 청동조각을 대전에서 사들였는데 매우 귀한 것 같아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고물상으로부터 얻은 청동조각이니 출토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고 그 원형 또한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출처가 불분명했지만 박물관은 이것은 2만 8천원에 구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청동 유물을 관찰하던 직원에게 아주 오래 전의 한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그것은 농사짓는 사람이 그려져 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농사와 관련 있는 이 유물에 농경문 청동기라고 이름이 붙여졌고 국립 중앙 박물관 수장고에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44년이 지난 2014년 이 청동유물은 보물 182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너비는 12.8㎝, 길이는 7.3㎝, 두께는 1.5㎜인 청동조각에 실린 정보는 무엇일까. 이 청동기유물은 기원전 4~3세기 철시 시대 초기 유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유물은 기하학적인 모양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사실적인 모습을 담긴 것은 드물기 때문에 보물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유물입니다. 
이 농경문 청동기는 아랫부분이 깨져 있습니다. 아마도 원래 모양은 방패모양이 아니었을까 생각되고 있는데요. 청동기 한 쪽 면에 굵은 실을 꼰듯한 모습으로 둥근 고리가 하나가 달려 있는데 좌우대칭으로 생각한다면 원래는 2개였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위에는 6개의 구멍이 있는데 모든 구멍이 어느 정도 닳아 있었습니다. 특히 양쪽 끝에 2개의 구멍이 유난히 많이 닳아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끈을 매달아 사용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는데요. 이 청동기를 흔들어 고리에서 소리가 나게끔 한 것이거나 솟대에 걸어서 사용한 의기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농경문 청동기에 새겨진 솟대는 마을 어귀에서 볼 수 있는 민간신앙물이다.


고리가 부착된 면에는 나무 꼭대기 양 끝에 새 두 마리가 앉은 듯한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요. 이러한 모습에서 솟대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솟대는 마을 어귀에 세워 두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민간 신앙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옆에도 좌우가 대칭되는 지점에 새가 그려져 있는데 아마 솟대 위에 새 그림이 바라보게끔 음각되어 있을 것이고 따라서 없어진 부분은 고리가 달려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부분을 뒤집으면 당시 농경사회를 담고 있는 그림이 나옵니다. 세 명의 인물이 음각되어 있는데요. 긴 막대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머리에 길게 그려진 것이 있는데 그것은 깃털로 생각되며 그 사람이 들고 있는 것은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것으로 보아 농기구 ‘따비’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용하는 따비는 풀뿌리를 뽑거나 땅을 가는데 사용하는 농기구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남자인데요. 추정이 아니라 확정할 수 있는 이유는 양다리 사이에 성기가 삼각형으로 과장되어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따비 같은 농기구와 더불어 유물에는 이랑과 고랑이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어 열심히 일한 흔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사람은 농기구를 들고 있는데 아마 괭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아랫부분은 잘려나가 보이지가 않는데요. 몸을 뒤로 젖혔다가 내려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왼쪽에는 한 사람이 두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데요. 앞에는 그물무늬의 입구가 좁은 항아리가 있어 아마 추수한 곡물을 토기 항아리에 담고 있는 모습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농사와 관련한 모습을 표현한 청동기 농경문은 봄에 땅을 파고 밭을 고른 뒤, 가을에 추수하는 모습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미암 유희춘은 자신의 저서 미암선생집에서 발가벗고 농사를 짓는 훔경도의 풍속을 전했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점이 생기는데 바로 밭을 가는 남자, 왜 그의 성기가 표현되었을까. 즉 나체로 새겨졌을까입니다. 대부분은 풍년을 바라는 주술적 의미를 상징화하여 이미지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문신인 미암 유희춘은 자신의 문집 <미암선생집>에서 발가벗고 농사를 하는 풍속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조참판과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미암은 함경도에서 10여 년의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책은 그 지역의 풍습을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체 농경에 대한 논의란 뜻의 글 ‘입춘나경의(立春裸耕議)’에 그 풍속을 전하고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옷을 벗고 밭갈이 하는 것이 가장 해로운 풍습이다. 해마다 입춘이 되면 지역 관리들은 관청 문 앞 길가에서 사람에게 나무로 만든 소를 몰아 맡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모습을 흉내내게 한다. 이런 의례로 한 해의 농사를 점치고 풍작을 기원한다. ……그런데 곡식의 풍요로움을 위해서 밭갈고 씨뿌리는 사람은 반드시 벌거벗어야 한다. 부들부들 추위를 무릅쓰게 하니 이 무슨 해괴한 작태인가.”
 한해의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세시행사인데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사람이 나체라는 것입니다. 유희춘이 이 글을 쓴 이유는 이 풍속이 야만적이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이러한 유희춘의 시선은 지나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가령 현대에 어느 누군가가 풍요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체로 밭을 갈거나 시를 뿌린다면 이를 본 누군가는 민망해하다가 어떤 이는 경찰에 신고할 것입니다. 하지만 고대의 성문화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개방되었는데요. 이것은 문란한 사회생활과는 다른 문제였습니다. 고대인들은 생식으로 자손을 만들어내는 행위이자 또한 쾌락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보았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뜻에서 의무적으로 매년 봄 나일강가에 서서 공개적으로 자위를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미암 유희춘 선생이 자신의 문집에서 묘사한 글이나 농경문 청동기에 그려진 사나이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는데요. 누군가에게는 음란한 행위일지 몰라도 당사자에게는 풍요를 바라는 마음에서 행하는 온당한 의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회입니다. 상식적으로 나체로 밭을 간다고 해서 열매가 많이 열린다던가 농사가 잘 된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으므로 이러한 행위를 대놓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농경문 청동기에 나타난 이미지


 다시 농경문 청동기에 새겨진 모습을 살펴보면 성기를 드러낸 채 밭을 가는 사람은 깃털로 추정되는 물체를 달고 있으므로 그는 부족장 쯤 되는 지위가 높은 사람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생각하면 여성의 신체가 부각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이 다산과 풍요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농경문 청동기의 농사짓는 남성의 성기 표현도 이런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농경문 청동기를 사용하던 그 시대에 꼭 나체로 농사를 지었다가 아니라 남자는 밭을 갈고 여자는 수확을 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기 위해 성기를 그려놓을 수도 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풍요의 염원을 담아 새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실제 그런 풍습이 청동기 시대에 있었는데 이것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농경문 청동기가 농사짓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지만 제사를 지낼 때 쓰인 의례용 기구로 보고 있습니다. 문양이 새겨진 청동기는 대부분 그런 용도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뭇가지에 앉은 새 문양을 보면 더욱 그러한데요. 고대인들에게 새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해주는 매체로 생각되었습니다. 더불어 곡식을 물어다주는 존재이자 하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사람들의 소망을 하늘에 알려주는 생명체로 인식되어 온 거죠. 이러한 모습은 앞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솟대와 그 이미지가 비슷한데요. 농경문 청동기는 지금은 색이 바래져있지만 당시에는 이 조그만 농경문 청동기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중요한 의식이 있을 때마다 지배자가 몸에 걸고 나와 여러 사람들에게 그 위엄을 뽐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솟대나 그와 비슷한 신비한 곳에 걸어두어 영험한 기운을 내게끔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솟대를 그려넣음으로써 솟대가 없는 곳에서도 지도자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며 이 농경문 청동기를 반짝거리며 과시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20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은 그 때의 모습을 전하는 중요한 자료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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