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청동기 문명의 우수성 다뉴세문경

2022. 6. 6. 11:2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선사시대부터 고조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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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세문경은 우수한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유물입니다.

인류가 처음 만들어낸 금속을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청동입니다. 청동은 구리에 비소나 주석, 아연 같은 물질들을 섞어 단단하게 만든 금속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1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부터 청동기시대에 들어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도 이 청동기 문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4대문명인 메소포테미아문명, 이집트문명, 황하문명, 인더스 문명이 바로 청동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갈 때에 농경과 목축의 시작이라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는데 청동기 시대가 도래하면서 문명의 탄생이라는 큰 변화를 겪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달리 노동의 비중이 커졌고 정복전쟁이 잦아졌습니다. 더불어 사유재산이 생겨나면서 그 차이에 따라 지배하는 자와 지배를 받는 자가 생겨났습니다. 즉  계급사회로 진입하게 된 것입니다. 
청동기시대의 유물로는 청동양날칼이나 청동꺽창같은 무기와 더불어 청동거울, 청동방울같은 의기류가 있습니다. 농기구는 없냐구요. 청동으로 농기구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너무 무르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농기구로 여전히 석기를 사용했습니다. 그 대신 청동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었고 더불어 제사장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럼 제사장은 어떤 사람일까요. 제사장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특별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제사장이 청동기 시대의 지배계급입니다. 이 제사장은 나뭇가지 모양의 사슴뿔을 장식으로 머리에 썼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나뭇가지나 사슴이 신을 이어준다고 생각했는데 제사장은 자신이 신의 대리자임을 나타내기 위해 이러한 장식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한 손에는 세형동검이 들려있었을 것입니다. 지배계급의 힘을 나타내는 세형동검은 돌로 만든 칼보다 날카로워 위협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배자의 몸에는 장신구이자 제사용도구가 달려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청동거울과 청동방울로 햇빛에 받아 반짝거리는 청동거울은 자신이 태양과 같은 존재임을 부각시켰을 것이고 청동방울은 신을 부르는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특히 고대제사장은 청동거울을 가슴에 달고 제를 올릴 때 거울에 반사되는 태양빛을 이용하여 자신의 신비함을 강조했을 것입니다. 지금에서는 거울을 보는 용도로 많이 쓰이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거울이 지배자의 권위를 나타내고 의기에 쓰이는 매우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청동거울은 당시 우리나라 청동주조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잘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빼어난 기술로 현대인들을 감탄하게 만든 청동거울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B.C4세기에서 B. C. 1세기에 만들어졌다고 추측되는 다뉴세문경입니다. 논산훈련소 가까이에서 한 군인이 참호를 파다가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다뉴세문경은 국보 14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중국의 조문경이 우리나라의 지역적 특성이 맞추어 발달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뉴세문경은 우리나라 초기철기시대의 청동주조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잘 알려주는 유물입니다. 특히 지름 21.2cm 안에 선이 1만 3300개쯤이 그려져 있으며 그 간격이 0.3mm입니다. 그리고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동심원이 그려져 있으며 그 원들을 나누는 도형들이 그려져 있어 당시 청동주조기술의 얼마나 섬세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점은 청동주조기술이라 했으므로 다뉴세문경은 녹인 쇠붙이를 거푸집에 부어 물건을 만든 것이고 이것을 만들기 위해 거푸집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당대 최고의 청동기 장인의 손에 의해 탄생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다뉴세문경은 중국의 동북지방과 러시아의 연해주, 그리고 한반도 전역과 일본의 구주에서도 발견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바로 우리가 국보경이라 부르는 다뉴세문경이며 이와 비슷한 정도의 초정밀한 다뉴세문경은 한반도의 남부지역에서만 발견된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생각할 수 있는 나라는 바로 고조선일 것입니다. 따라서 최고 수준의 청동주조기술을 가지고 있던 고조선 내에 세력집단이 어떤 이유로든 한반도 남하하였을 가능성도 잇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럼 다뉴세문경이란 단어에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다뉴(多紐 많을다·끈뉴)'는 끈을 꿸 수 있는 고리가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문경은 뒷면에 가는 선으로 무늬를 넣어 장식한 청동거울을 일컫는 말인데요. 끈을 꿸 수 있는 고리가 많은 잔무늬 청동거울이라는 의미를 지닌 다뉴세문경, 실제로는 다뉴세문경은 뒷면에 튀어나온 두 개의 꼭지가 있습니다. 이 구멍 두 개에 줄을 꿰어묶고 그 사이로 손을 넣어 손바닥으로 받치고 얼굴을 봤을 것입니다. 청동거울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본연의 기능을 가지고 있고 현재의 모습과는 달리 만들었을 당시에는 은빛으로 반짝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지배자의 이 청동거울을 보고 신비함을 느끼는 것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청동거울에 새겨진 많은 원은 태양을 상징한다고 보고 있으며 따라서 태양으로 상징되는 생명의 근원이 청동거울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청동거울의 착용한 지배자는 자신이 신의 대리자이며 청동거울은 그것을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장신구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뉴세문경의 구리 대 주석의 성분비율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공예기술서인 <주례(周禮)·고공기(考工記>에 기록된 황금비율인 66.7 대 33.3와 거의 비슷한 65.7 대 34.3으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비율로 제작된 경우는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다뉴세문경의 비율은 다른 청동거울에 비해 주석함유랑이 높은 편이라고 하는데요. 주석함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거울의 반사율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석함유량이 일정비율을 넘어가면 오히려 인장강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쉽게 깨질 수 있다고 합니다. 다뉴세문경은 가장 이상적인 비율로 만들어낸 거울로 당대 사람들은 그 비율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비율로 만들어진 다뉴세문경은 당시에는 은백색으로 가까웠을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청동거울에 많은 사람들이 경외감을 느꼈을 것이며 지배자는 이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울면과 문양면에 생긴 조그만 틈에서 거푸집에 사용한 모래 알갱이를 발견하여 다뉴세문경 제작에 사용된 거푸집이 모래를 굳혀 만들고 위에 각종 문양을 조각해 완성한 사형이라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거푸집의 재질이 모래였던 것입니다. 완성된 거울의 단면에 모래가 밀려 올라간 흔적이 있으므로 아마 모래로 만든 거푸집은 그다지 튼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다뉴세문경을 비밀을 풀 수 있는 거푸집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전문가들은 다뉴세문경에 나타나 있는 원들에 대해서 다치구를 이용해 만들어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치구란 여러 개의 바늘을 꽂아 한꺼번에 여러 개의 원을 그릴 수 있는 컴퍼스의 일종입니다. 그렇게 추정하는 것은 이들 원들의 반지름 분포가 일정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이 다치구를 어떻게 만들었을지 대해서는 아직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뉴세문경에 대해 확실히 알아낸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워낙 정밀한 무늬를 가진 탓에 현대과학으로는 제대로 재현해내지 못하고 있으며 아직도 제작방법이라던가 다뉴세문경에 담긴 의미해석에 있어서도 짐작일 뿐이지, 확실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현대과학으로 다가가기에는 너무 어려운 2400년 전의 초정밀기술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다뉴세문경이란 단어 앞에는 언제나 '미스테리', '비밀'이라는 말이 함께 합니다. 그 정밀함에 누군가는 이 다뉴세문경이 후대에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현대에도 복원이 힘든 이 다뉴세문경이므로 그 후대가 언제가 되었든 엄청난 기술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언제쯤 속 시원하게 궁금증이 풀릴지 그 날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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