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려(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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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과 노국공주
고려시대 왕 중에 태조 왕건만큼이나 잘 알려진 왕을 꼽는다면 공민왕일 것입니다. 그는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멸망으로 가는 고려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개혁 군주로 그려지는 사람입니다. 공민왕은 충숙왕의 둘째 아들이며, 충혜왕의 동복 아우입니다. 공민왕의 어머니는 덕비 홍씨로 원나라 공주가 아닌 고려 여성이었습니다. 1330년에 태어난 공민왕이 전례에 따라 볼모로 원의 연경에 간 것은 12살 때였습니다. 이후 조카인 충정왕이 폐위되어 1351년 12월에 귀국할 때까지, 약 10년을 연경에서 살았습니다. 그 사이 두 차례의 왕위계승에서 실패하는 아픔을 겪다가, 21세 때 원 위왕(魏王)의 딸 보타시리[寶塔實理, 노국대장공주]와 혼인하면서 왕위계승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왕이 왕위에 올라 정..
2024.04.16 -
여몽전쟁 영웅 김윤후
고려시대 최씨 무인정권이 통치하던 13세기 초, 몽골은 원수 살리타이(撒禮塔)를 앞세워 고려를 1차(1231.8. ~ 1232. 1.)에 이어 1232년 8월부터 2차 침공했습니다. 고려가 1232년(고종 19년) 음력 6월에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기고 몽골과의 장기 항전 태세에 돌입하자 이에 분노한 몽골은 살리타이를 다시 내세워 침략한 것입니다. 몽골군은 3개월 만인 11월에 남경(한양)을 함락시키고 한강을 건너 광주를 거쳐 남부지방으로 진출하려 했으나 광주산성(지금의 남한산성)에서 강한 저항으을 받았습니다. 남한산성을 광주 부사 이세화와 광주부민이 지켜낸 것입니다. 함락시키지 못한 몽골군은 용인 방향으로 향했으며 이곳에 처인성이 있었습니다. 고려시대 처인은 수주(水州:오늘날 수원과 화성 일대)의..
2024.02.16 -
우왕은 공민왕의 아들이 맞을까.
아마도 다른 나라의 왕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우리나라 역대 왕조들의 왕들에게 중요한 일 중하나는 바로 아들을 낳아 자신의 왕위를 이어받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어느 한 시점의 왕이 선대 왕의 아들 혹은 정당한 후계자 자격으로 왕위로 올랐는지 의심받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하고 간혹 이러한 의문이 더욱 커지게 되면 왕권이 위태로워질 수 있고 급기야는 왕조도 바뀔 수 있는 문제로 커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의구심을 갖게 한 왕이 있습니다. 바로 우왕입니다. 우왕은 고려의 제 32대 국왕으로 공민왕의 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갖는 물음표는 바로 ‘우왕이 진짜 공민왕의 아들이 맞는가?’하는 것으로 이를 달리 말하면 ‘우왕이 신돈의 아들이 아닌가..
2023.04.06 -
제주도에 있던 삼별초는 정말 오키나와로 갔을까.
삼별초는 원래 무신 최씨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군대로, 처음 야별초에서 시작되었으며 야별초는 밤에 개경의 도둑을 잡고 백성의 난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야별초가 좌별초, 우별초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에 몽골에 원한이 깊은 자들이 스스로 입대해서 만들어진 신의군이 더해져 삼별초가 완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삼별초가 최씨 사병부대로 출발하였지만 몽골의 침입 때는 그들에 대항하여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고려정부가 원나라와 강화하자 고려는 삼별초의 철수를 요구했고 이에 응할 수 없었던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진도, 그리고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며 저항합니다. 하지만 1273년, 여몽연합군을 공격을 받고 삼별초의 3여 년의 항쟁은 끝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 김통정은 자결하고 휘하 ..
2023.04.05 -
바다에서 발견된 고려청자 운반선
지난 2003년의 일입니다. 군산시 옥도면 십이동파도 근해에서 청자운반선이 침몰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선체는 잔존 길이가 7m, 폭이 2.5m 정도이며 주재료는 소나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2004년에는 청자유병 등 도자기 2184점과 닻을 고정하는 닻줄과 닻돌로 보이는 닻 부속구도 인양되어 지금까지 군산 십이동파도에서 인양된 유물은 최초 신고 622점, 긴급 탐사시 인양 667점, 1차 발굴인양 5266점, 2차 발굴인양 2184점 등 총 8739점의 도자기와 선체 14편이 인양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에는 이 선박에 대해 11세기말경 선박으로 추정하였습니다. 또한 2007년에는 충남 태안군 근흥면 대섬 앞바다에서 청자완 등 고려청자를 다량 실은 운반선이 발견돼 54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되었..
2022.12.22 -
고려인 이슬람교도 라마단
세계 3대 종교인 이슬람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현대의 대한민국사회에서도 이슬람교인들은 낯선 존재인데 교회나 절, 성당과 달리 이슬람사원은 극히 적고 신도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온 이슬람교 국가사람들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 이보다 앞선 시대에는 이 땅에 이슬람의 흔적은 적다고 생각하지만 생각 외로 그 발자취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남북국시대의 신라에서는 처용이 아랍인, 경주 괘릉에는 서역인의 얼굴상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들이 이슬람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초에는 이슬람은 회교(回敎), 또는 회회교(回回敎)라 했는데 고려초 팔관회에 회회교도가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신라 말기에 회교신자가 이 땅에 들어왔을 거라 짐작합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 이슬람에 대한 구체적인 ..
2022.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