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신라(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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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은 왜 첨성대를 만들었나.
왕의 이미지를 그려보면 근엄하고 수염이 나있는 남성의 당당한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왕조들의 통치자들 중에 남자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바로 고대왕국 신라에서 여자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바로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이 그들입니다. 선덕여왕은 진평왕과 마야부인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진평왕에게는 아들 없이 딸만 둘이 있었고 그들이 천명공주와 덕만공주였습니다. 이전까지 신라도 남자만 왕위에 올랐는데 어찌하여 여자가 왕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신라만이 가지고 있던 폐쇄적인 신분제도가 한몫했습니다. 당시 신라의 왕은 성골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진평왕의 뒤를 이을 성골로는 덕만공주와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 갈문왕의 딸이자 후에 진덕여왕이 되는 승만공주만이 있었습니다. 그..
2022.07.09 -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에 대하여
“그런데 광륭사의 미륵상에는 실로 완성된 인간실존의 최고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상에 있는 모든 시간적인 것, 속박을 초월해서 도달한 인간 존재의 가장 청정한, 가장 원만한, 가장 영원한 모습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까지 몇 십 년 동안의 철학자로서의 생애 중에서 이만큼 인간실존의 진정으로 평화스런 모습을 구현한 예술품을 이제까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불상은 우리들 인간이 지닌 마음의 영원한 평화의 이상을 진실로 남김없이 최고도로 표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은 광륭사에 있는 미륵상을 보고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남긴 글입니다. 그러면 광륭사란 어디에 있는 절인가. 그것은 일본에 있는 절로 이렇게 독일의 철학자가 극찬한 광륭사의 미륵상과 닮은 문화재가 한반도에 ..
2022.07.07 -
신라의 황금보검은 어디서 왔을까
미추왕릉지구의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길이 36cm의 황금장식보검은 이국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모양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에 해외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황금보검은 반타원형의 칼자루에 끝이 넓은 칼집 그리고 금알갱이와 옥으로 상감한 이 보검은 우리나라는 물론 동아시아에서도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합니다. 양식기법이나 나선무늬와 메달무늬 등으로 보이는 전형적인 그리스로마무늬는 이 보검의 출처가 로마나 혹은 그 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곳에서 전달받은 곳으로 추측하게 합니다. 그럼 이러한 보검이 어찌되어 신라에서 발견되었을까. 일본학자 요시미즈 쓰네오는 이 보검의 제작지를 로마문화와 밀접한 곳으로 연결시켜 일찍부터 그리스·로마 문화를 받아들인 다뉴브강 남부 트라키..
2022.07.03 -
서봉총 금관에 담긴 안타까운 이야기
일제 시대 때 일본학자들에 의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경주에 소재한 서봉총도 역시 일본이 발굴했는데요. 하지만 일본의 문화유산이 아니라서 귀하게 여기지 않았는지 발굴된 유물들을 정리하지도 않았고 발굴보고서도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 무덤은 90년의 시간이 흘러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굴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무덤 둘레돌에서 큰 항아리 27점이 발견되고 항아리 안에서는 물고기의 조개류의 유체가 7천 7백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분석한 결과로는 가을에 많이 잡히는 청어와 방어 등 온갖 종류의 생선으로확인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돌고래와 복어, 성게 등 귀한 음식도 있었고 민물 거북의 일종의 남생이 껍질도 나왔습니다. 이로써 이 무덤의 주인인 신라의 지배층은 아주 좋은 식생활을 ..
2022.06.30 -
보물이 된 신라의 미소 얼굴무늬수막새
옛날 사람들은 아시다시피 기와집이나 초가집에서 살았습니다. 기와나 초가집이라 부르는 이유는 지붕을 잇는 재료에 따라 그렇게 나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기와집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요. 삼국시대 초기에 이미 기와를 만들어 지붕을 이었다고 합니다. 이 기와라는 것은 지붕을 잇는데 쓰는 것으로 기와는 빗물을 흘려버려 물기가 스며들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상들은 빗물이 흘려보내서 물기가 스며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양에 대해 궁리를 했습니다. 그리하여 물결모양의 파상형이나 원형, 반할, 3할, 반월형 등을 주로 제작,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와의 종류에는 암기와와 수기와가 있으며 바닥에 까는 넓은 것은 암기와, 위에 덮는 좁은 것은 수기와라고 부릅니다. 암기와를 지붕에 ..
2022.06.26 -
김알지는 흉노족과 관계가 있을까.
1796년 낭산 선덕여왕릉 아래에서 농부가 밭을 갈다가 예사롭지 않은 비석 하단부와 우측 상단부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문무왕비석이었습니다. 이후 사라진 비석은 1961년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2009년에도 일부 발견되었는데 당시에는 가정집의 빨래판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는 다른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우리 신라 선조들의 신령스런 근원은 먼 곳으로부터 계승되어 내려온다. 화관지후 (和關之后)이니 그 바탕을 창성하게 하여 높은 짜임이 바야흐로 융성했다. 밑둥과 가지의 이어짐이 비로소 생겨 영이한 투후(秺侯)는 제천(祭天)할 아들로 태어났다. 7대를 전하니 15대조 성한왕(星漢王)은 하늘에서 바탕을 내렸고 ……. 이 글에서는 성한왕이 등장하고 그의 7대..
2022.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