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신라(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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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평양을 차지했을까.
670년에서 676년까지 이 땅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바로나당 전쟁입니다. 나당전쟁은 한국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학자들은 한민족 공동체가 만들어진다고 보고 있으며 김, 이, 박, 최 등 성씨 이들 모두는 신라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신라는 5세기만 하더라고 경북 지역의 약소국에 불과했습니다. 진흥왕을 중심으로 6세기 팽창하기 시작했고 한강 유역을 장악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곧 위기에 봉착합니다. 600년대 초반부터 백제는 줄기차게 신라를 공격해 대야성을 함락하고 전선을 지리산에서 낙동강 동쪽으로 이동시켰습니다. 고구려 역시 북쪽에서 밀고 내려왔습니다. 급기야 백제-고구려 연합군의 당항 공격으로 신라는 국가의 ..
2024.05.10 -
연오랑과 세오녀설화
신라의 8대 임금 아달라왕 시기에 동해바닷가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연오가 바다에 나가 해초를 따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바위[혹은 물고기라고도 한다.]가 나타나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를 본 사람들은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연오를 왕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세오는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남편이 벗어놓은 신발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위에 올라갔는데 바위가 남편에게 그랬던 것처럼 세오를 태우고 남편이 있는 나라로 태워 보냈습니다. 부부는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신라는 해와 달이 빛을 잃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내려와 있었는데, 지금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2023.10.28 -
신라를 왜 낙랑이라 했을까.
낙랑군은 한나라의 옛 군현으로 기원전 108년 전한의 제7대 세종 무황제 유철이 보낸 한군이 고조선(위만조선)을 상대로 1년간의 치열한 전쟁 끝에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사군 중 하나이다. 위치는 지금의 대동강 일대로 보는 것이 통설로, 특히 평양 일대에서 많은 유물과 고분이 발굴되었습니다. 한편, 한나라가 설치한 한사군을 요서 지방으로 비정하였는데 이는 한사군 요서설이라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낙랑군의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면에서 한국고대사 뿐만 아니라 한국사 역사 통틀어 가장 논란거리 중의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낙랑군은 한군현 중에서 가장 오래 존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낙랑의 위치를 시사하는 사료기사가 많은데요. ‘전한(前漢) 때에 처음으로 낙랑군을 설치하였으니 응소(應邵)註 305..
2023.10.20 -
통일전쟁 시기 대당외교관 김인문
김인문은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둘째아들로 어머니는 문명왕후, 김유신의 누이입니다. 그러니까 외가는 가야의 왕족입니다. 그는 629년에 태어났으며 어렸을 적부터 유가 서적을 읽으며 관심을 키워나갔습니다. 그는 신라대의 외교관으로 알려져 있으나 궁술과 말타기에 능해 당대의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덕여왕 재위기 당시 친당정책에 의해 651년, 23세 때 처음 당나라에 입조하여 653년까지 2년간 당에서 머물렀습니다. 당고종은 그가 멀리서 왕의 명령을 받들어 와있었으므로 충성이 지극하다하여 좌령군위장을 시켰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유일한 친필 글씨가 중국 당나라황제 별장인 구성궁(九成宮)에 남은 당나라 때 비석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수·당 시대 황제의 여름 별장 중 하나인 구성궁 터에 남은 당나라 ..
2023.10.19 -
나당전쟁과 신라-왜의 관계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것은 문무왕 시기로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은 661년 7월이었습니다. 문무왕은 진덕여왕 4년인 650년 아버지 김춘추의 뒤를 이어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며, 654년 아버지 김춘추가 임금으로 즉위하자 파진찬 벼슬에 올랐습니다. 이후 그의 나이 35세 때인 660년 나당연합군의 백제 정벌에 직접 참전했습니다. 당시 태자 법민이었으며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덕물도(德物島)에서 소정방을 맞이하였으며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의 합류하여 사비성공격에 합류하였습니다. ‘법민이 융을 말 앞에 꿇어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꾸짖었다. "예전에 너의 아비가 나의 여동생을 억울하게 죽여 옥중에 묻은 적이 있다. (그 일은) 나로 하여금 20년 동안 마음이 아프고 골치를 앓게 하였는데, 오늘날 너..
2023.10.18 -
골품제 최고등급 성골은 무엇인가
‘8년(654) 봄 3월에 왕이 돌아가셨다. 시호(諡號)를 진덕(眞德)이라 하고 사량부(沙粱部)에 장사를 지냈다. 당(唐)나라의 고종(高宗)이 〔소식을〕 듣고 영광문(永光門)에서 애도를 표하고 태상승(太常丞) 장문수(張文收)를 사신으로 보내서 부절(符節)을 가지고 조문하게 하였으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를 추증하고 비단 300단(段)을 내려 주었다. 나라 사람들[國人]은 시조(始祖) 혁거세(赫居世)부터 진덕왕(眞德王)까지의 28명의 왕을 일컬어 성골(聖骨)이라 하고, 무열왕(武烈王)부터 마지막 왕까지를 진골(眞骨)이라고 하였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의 『신라기(新羅記)』에는 “그 나라의 왕족은 제1골(第一骨)이라 하고, 나머지 귀족은 제2골(第二骨)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진덕여왕의 성골신분..
2023.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