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1910~19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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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핀 조선여성 엘리트 최영숙
구한말이었습니다. 당시 선교사 스크랜턴이 창설한 사립 여자교육기관이 설립한 이화학당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다니던 최영숙이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1906년에 태어난 최영숙은 이화학당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1923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난징 명덕(明德) 여학교와 회문여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이 덕에 중국어도 능숙하게 구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26년 그가 향한 곳은 스웨덴이었습니다, 그가 이곳으로 향한 이유는 스웨덴에서 만나고 싶은 인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스웨덴 출신 여성운동가이자 교육운동가인 엘렌 케이였습니다. 엘렌케이는 서양사람이었지만 당시 구한말 우리나라 지식인들 사이에서 꽤나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1925년 조선일보에서는 ‘21세 청춘 8개월된 임부,..
2023.06.22 -
서대문 새문 그리고 돈의문
조선은 1392년 개국되어 이후 한양도성을 1396년에 축조하였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보수와 개축을 거쳤으나 그 원형을 조선 말기까지 유지하였습니다. 하지만 19세기말 개화의 물결과 함께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면서 서울의 성곽은 수난을 겪었습니다. 1899년 전차가 다니면서 돈의문(서대문), 흥인지문(동대문) 주변의 도성 일부를 헐어냈으며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제는 1907년 성벽처리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서울성곽 철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선인(鮮人) 동화를 위해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한두 가지 예를 들면 산성(山城)이란 것이 조선 도처에 있고 고명찰(古名刹), 가람(伽藍) 등은 거의 배일(排日)이란 역사적 재료를 가지고 있다. 몇 년에 왜적을 격퇴했다든지 하는 등..
2023.06.19 -
우장춘 박사가 한국으로 온이유
1950년 1월, 일본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수용소에 한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일본에서 형사처벌을 받은 외국인들, 불법 체류자와 밀입국자를 강제 송환시키는 곳으로 이곳에 들어가면 기본적으로 1,2년은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 발로 찾아온 사람의 이름은 스나가 나가하루라는 일본에서 꽤나 이름있는 과학자였습니다. 그가 이곳에 와서 강제로 한국으로 송환을 요청하니 수용소는 절대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단교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 남자에게 한국으로 가는 방법은 수용소를 통한 강제추방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오히려 한국에서 일본으로 밀항하는 상황에서 일본에서 촉망받는 과학자가 반대의 길을 요청한 것입니다. 수용소 측에서 강제송환을 거부하자 그가 꺼내..
2023.06.18 -
소파 방정환과 잡지 어린이
소파 방정환은 어린이운동의 창시자, 선구자로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방정환은 ‘어린이’란 말을 생각해낸 방정환은 1920년 「어린이 노래」(『개벽』3, 1920)를 번역하여 소개하면서 어린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즉 방정환은 ‘어린이’라는 용어를 ‘늙은이’, ‘젊은이’라는 용어와 대등한 의미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어린이를 비하하거나 낮추어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여 부르자는 의미일 것입니다. 방정환은 1899년 11월 9일 한성 야주개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미곡상을 경영하여 유복한 환경이었으나 그가 아홉 살이 되던 무렵 가세가 기울게 되었고 이집 저집으로 쌀을 꾸러 다녀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던 열아홉 살의 나이에 그는 손병희의 셋째딸 손용화..
2023.06.16 -
조선인 강제 징용 현장 군함도 하시마섬
전쟁이 일어나면 그 나라의 국민들이 고통 받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일제강점기 전시상황에서 우리 선조들이 겪었을 고통은 더 했을 것입니다. 일본은 중일전쟁(1937년)을 벌이면서 많은 전시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식민지 조선인들을 강제로 전선이나 탄광으로 내몰기 위한 악법을 만들었습니다. 국가총동원법(1938년 4월)으로 전시 총동원 체제를 다져 나갔고 이어 국민징용령(1939년 7월)이 나오고 그해 10월부터 식민지인 조선과 타이완에서 이 법이 적용되었고 근로보국대, 여자근로정신대 등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끌려갔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강제적 군 입대는 육군특별지원병제(1938년 4월), 해군특별지원병제(1943년 7월), 학도지원병제(1943년 10월), 징병제(1944년 4월) 등으로 이뤄졌습니다. 이..
2023.06.06 -
독립운동가 조지 쇼우
이 땅이 일제강점기에 의해 힘들어할 무렵 많은 독립투사들이 활약했었고 그 중에는 외국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5년 4월 한 외국인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조지 쇼였습니다. 1880년 1월 25일 중국 복건성(福建省) 복주(福州)의 파고다 아일랜드(Pagoda Island)에서 아버지인 영국 아일랜드계 사무엘 루이스 쇼와 어머니 일본인 엘렌 오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00년경 한국의 금광에서 회계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게된 쇼 선생은 1907년 중국 안동현(현재 단동시) 영국 조계에 위치한 단동시(丹東市) 원보구(元寶區) 흥륭가(興隆街) 25호에 무역회사 겸 선박대리점인 이륭양행(怡隆洋行)을 설립합니다. 그리고 이 이륭양행은 3.1 운동 이후 임시정부의 거..
2023.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