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의 왕위 찬탈

2023. 2. 7. 18:21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전기

728x90

 1453년 조선 궁궐에서는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이른바 계유정난. 수양대군의 쿠데타는 지금에 이르러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조선후기에도 그러했으니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아 전해지는 책이 바로 『금계필담』이라는 야사입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의령현감을 지낸 서유영이 저술한 책으로 130여 편의 설화를 담고 있으며 1873년에 만들어진 책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발하여 궁에서 쫓겨난 그의 딸과 멸문지화를 당한 김종서의 손자가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부부와 관련하여 속리산 한 자락에는 그들이 살았다고 하는 굴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금계필담 속에서 세조는 자신을 닮은 아이를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꾸며낸 이야기이겠지만 어쩌면 백성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미처 풀지 못한 감정적인 숙제를 해결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정사가 승리자의 기록이라면 이러한 이야기는 역사에서 주인공이 차마 되지 못한 사람들의 일종의 또다른 정신승리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한쪽에서는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동안에 조선왕조실록의 단종의 뒤를 이은 주인공은 바로 수양대군, 후에 세조라고 불리는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조선 왕조 최초로 왕세자를 거치지 않은 왕으로 옥새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옥새를 받든 것은 단종의 충신인 성삼문이었습니다. 당시 성삼문은 통곡하며 옥새를 건냈다고 합니다. 
계유정난 이전 어린 단종을 대신하여 권력이 김종서, 황보인에게 집중된다고 생각한 성삼문은 수양대군의 편에 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권력견제의 차원이었지, 왕위 교체를 염두에 둔 줄서기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던 날, 성삼문은 이 사태를 하나의 반란으로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당시 그들의 비통한 심정은 박팽년과 함께 경회루 연못에 빠져죽겠노라는 말이 오고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생각을 바꿉니다. 복수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들은 연못에 빠져죽는 것보다 세조를 제거하고 다시 단종을 세우는 것만이 진정한 의미의 저항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진행된 것이 바로 단종복위운동이었습니다. 성삼문을 중심으로 하여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사건인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사육신들이 심문당하는 장면.

원, 그리고 무사인 유응부도 합류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세조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세조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명나라 사신이 태평관에 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조의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있었습니다. 세조는 왕위를 찬탈했기 때문에 명나라의 지지가 절대적으로필요했고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계획한 것이 바로 축하연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상왕인 단종과 세자도 참석했고 경호를 위하여 성삼문의 아버지이자 무장 성승과 유응부, 그리고 박쟁이 별운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계획은 연회장에서 세조의 목을 베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한명회의 촉이 좋았는지도 모릅니다. 한명회가 연회장이 좁다는 이유로 별운검을 세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 낸 것이 받아들여 진 것입니다. 이에 유응부는 거사를 미룰 수 없다며 세조의 제거를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성삼문은 하늘이 뜻이  아닌 것 같다며 거사를 미루게 됩니다. 하지만 일을 미루게 되면 밀고자가 생기게 되는 법, 사태의 심각성에 잔뜩 겁을 먹은 김질이 세조에게 일러바친 것입니다. 그렇게 사건의 주동자들은 체포되었습니다. 당시 세조의 분노가 얼마나 심했던지 이들을 직접 국문합니다. 당시 박팽년은 충청도 관찰사였는데 충청도 관찰사에 임명한 자신에게 어찌하여 이런 일을 꾸밀 수 있느냐고 묻자 받팽년은 충청도 관찰사 시절에도 나리를 왕으로 부른 적이 없고 박팽년은 문서를 올리면서 신하 신(臣)자 대신 클 거(巨)를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삼문 또한 나리가 준 녹봉은 하나도 먹지 않고 쌓아두었다고 하니 그의 집에는 그간의 녹봉이 그대로 쌓여 있었습니다. 성삼문은 누가 자기 임금을 사랑하지 않으며 이를 모반이라 할 수 있는가 하며 당당함을 지키다 처형당했고 박팽년은 옥중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옥중에서 ‘나는 난신이라 하지 말라’는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금부랑 김명중이 왜 이런 화를 자초하느냐고 물으니 ‘마음이 평안하지 않아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이후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는 사육신으로 추앙받게 되었고 생육신 중 한 명인 남효온은 육신전을 지어 사육신의 충절을 추모했습니다. 
단종복위운동을 실패로 끝이 났고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었습니다. 그리고 열여섯, 강원도 청령포로 유배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1년 뒤에 금부사 왕방연이 단종을 찾아옵니다. 바로 세조가 사약을 내린 것입니다. 그리고 야사에서는 세조가 이를 거부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실록에서 전하고 있지만  자살로 종결하는 것이 가장 말끔해 보이니 이 역시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세조가 평소에 단종을 모시던 공생이라는 자가 공을 세우기 위해 활시위로 올가미로 만들어 단종의 목을 졸랐다고 합니다. 이것은 『숙종실록』의 내용으로 단종을 죽인 공생은 아홉구멍으로 피를 토하며 죽었다고 합니다. 

세조에게는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또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금성대군 이유였습니다. 그는 세조의 동생이자 세종의 6남으로 그의 28세 때에 둘째 형인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면서 평소 단종을 아끼던 금성대군과 수양대군의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그리고 세조는 금성대군을 제거하기 위해 실마리를 찾았고 계양군이 나섰습니다. 계양군은 계유정난이 일어나기 전에도 안평대군을 잡기 위해 무고상소를 올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종 3년 2월에는 금성대군이 사저에서 화의군(세종의 제 1서자)등을 모아 활쏘기대회를 가졌는데 이를 빌미로 관련자들을 하옥시키고 금성대군의 대군직위가 박탈당했습니다. 하지만 활쏘기 대회는 어디까지나 취미활동이었고 수양대군 역시 활쏘기 대회를 즐겼던 터라 이러한 이유로 벌을 주기에는 명분이 약했습니다. 그러다가 금성대군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는데 그것은 수양대군이 세종의 후궁이자 단종인 유모와 결탁하고 화의군이 비밀리에 양씨와 금성대군집에 출입하며 금대나 계집종을 주고받고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한 것을 문제삼아 역모로 몰아갔습니다. 사실 이러한 정황에는 어떠한 군사적 행동도 포착할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금성대군을 삭녕으로 영양위 정종을 영월로, 혜빈 양씨를 청풍으로 귀양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날 단종은 왕위를 세조에게 양위를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강제적인  왕위양도였습니다. 
금성대군이 삭녕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 때 사육신을 중심으로 하여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세조는 금성대군의 유배지를 경상도 순흥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가시울타리를 치게 하고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순흥의 부사는 이보흠이란 사람으로 세종과 문종의 총애를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반면 세조는 그를 탐탁치 않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단종이 영월에 유폐되었다고 하자 금성대군은 이보흠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계획하였으나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지도 목하고 실패로 끝났습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엄청 고문이 동반되어 그로 인해 희생된 피가 죽계천을 물들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금성대군은 사사되었으니 그의 나이 32세였습니다. 
세조는 그렇게 친동생 둘을 죽이고 단종을 목을 매달게 하였으며 사육신 등 아버지 세종의 충신들을 제거하였습니다. 이러한 권력의 욕망에 찌든 세조의 모습은 스크린 속에서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는 명대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역대 왕위찬탈한 권력자는 일부 있습니다. 그런 인물 중에서 유독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 바로 세조입니다. 그가 왕위를 얻는 과정에서 폭력과 희생을 동반했기 때문에 일부 대중들로부터 가혹한 평가를 받고 있는데 사실 태조 이성계도  태종 이방원, 큰아버지 광해를 쫓아낸 인조도 왕위를 찬탈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세조가 더욱 주목받는 것은 그가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왕위를 찬탈한 그의 명분이 다른 이들에 비해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728x90

'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 > 조선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이 장군  (0) 2023.02.09
세조와 공신정치  (0) 2023.02.08
준비된 왕이었던 문종  (0) 2023.02.06
세종은 왜 국민투표를 실시했을까.  (0) 2023.02.05
세종대왕과 집현전  (0) 2023.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