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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언제 일본에 문자를 전해주었을까
‘왜국은 백제와 신라의 동남쪽 수륙 3000리나 되는 대해의 가운데에 산으로 된 섬에 의자하여 살고 있었다. … 개항20년에 성이 아매이고 자가 다리사북고이며 호가 아배계미인 왜왕이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어 대궐에 들게 하였다…. (왜국에는) 문자가 없어서 다만 나무막대기에 금을 새기고 끈을 맺어 썼을 뿐이다. 백제로부터 불경을 전해 받아 불법을 경신하고부터 비로소 문자가 있게 되었다.’ 『수서』 ‘왜국전’ 수 문제의 개황 20년은 서기 600년 정도 되는 시기입니다. 당시 일본은 수나라에 사신을 보냈고 수나라에서는 왜국의 풍습을 들으며 그들이 문자를 접한 계기를 위와 같이 설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사실을 기록한 국내의 서적은 전무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일본의 사서에 기록된 ..
2023.10.22 -
신라를 왜 낙랑이라 했을까.
낙랑군은 한나라의 옛 군현으로 기원전 108년 전한의 제7대 세종 무황제 유철이 보낸 한군이 고조선(위만조선)을 상대로 1년간의 치열한 전쟁 끝에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사군 중 하나이다. 위치는 지금의 대동강 일대로 보는 것이 통설로, 특히 평양 일대에서 많은 유물과 고분이 발굴되었습니다. 한편, 한나라가 설치한 한사군을 요서 지방으로 비정하였는데 이는 한사군 요서설이라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낙랑군의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면에서 한국고대사 뿐만 아니라 한국사 역사 통틀어 가장 논란거리 중의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낙랑군은 한군현 중에서 가장 오래 존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낙랑의 위치를 시사하는 사료기사가 많은데요. ‘전한(前漢) 때에 처음으로 낙랑군을 설치하였으니 응소(應邵)註 305..
2023.10.20 -
통일전쟁 시기 대당외교관 김인문
김인문은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둘째아들로 어머니는 문명왕후, 김유신의 누이입니다. 그러니까 외가는 가야의 왕족입니다. 그는 629년에 태어났으며 어렸을 적부터 유가 서적을 읽으며 관심을 키워나갔습니다. 그는 신라대의 외교관으로 알려져 있으나 궁술과 말타기에 능해 당대의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덕여왕 재위기 당시 친당정책에 의해 651년, 23세 때 처음 당나라에 입조하여 653년까지 2년간 당에서 머물렀습니다. 당고종은 그가 멀리서 왕의 명령을 받들어 와있었으므로 충성이 지극하다하여 좌령군위장을 시켰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유일한 친필 글씨가 중국 당나라황제 별장인 구성궁(九成宮)에 남은 당나라 때 비석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수·당 시대 황제의 여름 별장 중 하나인 구성궁 터에 남은 당나라 ..
2023.10.19 -
나당전쟁과 신라-왜의 관계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것은 문무왕 시기로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은 661년 7월이었습니다. 문무왕은 진덕여왕 4년인 650년 아버지 김춘추의 뒤를 이어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며, 654년 아버지 김춘추가 임금으로 즉위하자 파진찬 벼슬에 올랐습니다. 이후 그의 나이 35세 때인 660년 나당연합군의 백제 정벌에 직접 참전했습니다. 당시 태자 법민이었으며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덕물도(德物島)에서 소정방을 맞이하였으며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의 합류하여 사비성공격에 합류하였습니다. ‘법민이 융을 말 앞에 꿇어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꾸짖었다. "예전에 너의 아비가 나의 여동생을 억울하게 죽여 옥중에 묻은 적이 있다. (그 일은) 나로 하여금 20년 동안 마음이 아프고 골치를 앓게 하였는데, 오늘날 너..
2023.10.18 -
골품제 최고등급 성골은 무엇인가
‘8년(654) 봄 3월에 왕이 돌아가셨다. 시호(諡號)를 진덕(眞德)이라 하고 사량부(沙粱部)에 장사를 지냈다. 당(唐)나라의 고종(高宗)이 〔소식을〕 듣고 영광문(永光門)에서 애도를 표하고 태상승(太常丞) 장문수(張文收)를 사신으로 보내서 부절(符節)을 가지고 조문하게 하였으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를 추증하고 비단 300단(段)을 내려 주었다. 나라 사람들[國人]은 시조(始祖) 혁거세(赫居世)부터 진덕왕(眞德王)까지의 28명의 왕을 일컬어 성골(聖骨)이라 하고, 무열왕(武烈王)부터 마지막 왕까지를 진골(眞骨)이라고 하였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의 『신라기(新羅記)』에는 “그 나라의 왕족은 제1골(第一骨)이라 하고, 나머지 귀족은 제2골(第二骨)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진덕여왕의 성골신분..
2023.10.17 -
혼란했던 선덕여왕의 신라
선덕여왕 대에는 그의 영특함을 전하는 몇가지 설화가 전해오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옥문곡 설화입니다.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서 한겨울에 수많은 개구리가 모여 사나흘 동안 울어대는 일이 있습니다. 나라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왕에게 물었는데 왕은 급히 각간 알천(閼川)과 필탄(弼呑) 등에게 정예 병사 2000명을 이끌고 서둘러 서쪽 교외로 가서 여근곡(女根谷)을 물어보면 그곳에 틀림없이 적병이 있을 것이니, 습격하여 죽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두 각간이 명을 받고 각기 1000명씩 군사를 거느리고 서쪽 교외로 가서 물었더니, 부산(富山) 아래 과연 여근곡이 있었습니다. 백제 군사 500명이 그곳에 숨어 있었으므로 그들을 에워싸서 죽였습니다. 백제 장군 우소(亏召)는 남산 고개 바위 위에 숨어 있었..
2023.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