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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태비가 된 백제 마지막공주
의자왕의 증손녀인 부여태비 묘지명은 2007년 10월 확인되었습니다. 지난 2004년 중국 산시(陝西)성 고고연구소가 시안 북쪽에 위치한 당 고조(高祖) 이연(李淵·566~635)의 무덤인 헌릉(獻陵) 주변에서 도굴당한 무덤을 조사하다가 부여태비와 남편인 사괵왕(嗣?K王) 이옹(李邕·678~727)) 부부의 합장묘임을 알려주는 덮개돌(개석·蓋石)과 묘지(지석·誌石) 각 한쌍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중 부여태비의 덮개돌(탁본 사진)은 가로 74㎝, 세로 70㎝, 두께 13㎝이며 전서(篆書)로 3행(行) 9자(字)의 ‘당고괵왕비묘부여지명(唐故?K王妃墓扶餘誌銘)’이라는 글자가 음각돼 있었습니다. 지석은 가로 74㎝, 세로 70㎝, 두께 9㎝이며 30행, 1행 31자로 총 831자가 해서(楷書)로 음각돼 있습니다..
2023.11.02 -
노상추의 무관일기
노상추(盧尙樞, 1746년 2월 26일 ~ 1829년)는 조선(朝鮮) 후기의 무관으로 17세 되던 계축년(1762년)부터 순조 29년(1829년)에 84세로 사망하기까지의 68년의 일생을 적은 『노상추일기』가 남아 있습니다. 『노상추일기』는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 보관되어 있으며, 간찰첩과 함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4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노상추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35세 이전까지는 청년기로 고향인 경상도 선산도호부에서 가계를 경영하면서 무과 시험 준비를 하던 시기입니다. 이때는 주로 가족에 대한 내용, 시험에 대한 고뇌, 농사 상황 등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35세부터 60대 후반까지는 장년기로 무과에 합격한 이후 관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양, 삭주, 홍주 등 타향을 전전..
2023.11.01 -
필리핀까지 표류하다 돌아온 문순득
'여송국 표류인을 송환시키라 명하다(命呂宋國漂人 送還本國).' 『조선왕조실록 순조9년(1809년)』 여송국이란 필리핀으로 조선에 표류한 필리핀인들이 돌아가기까지는 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항해 중 풍랑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1801년 제주도에 표류한 5명의 필리핀들을 두고 조선은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대화는 물론 필담도 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막가외(莫可外)"라 일컬으며 멀리 동남쪽을 가리키곤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사람 누구도 ‘막가외’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표류자들은 눈물만 흘렸습니다. 갑갑해진 조선은 이들을 심양으로 이송했으나 중국도 '알아낼 수 없다'며 돌려보냈습니다. 1807년에는 조선을 찾은 유구(琉球ㆍ오키나와) 사신들이 ..
2023.10.31 -
고구려왕자 약광 일본으로 건너가다
약광은 고구려 28대 보장왕의 아들로 고구려 왕족이라 전해지는 인물입니다. 고구려 말기에 야마토 정권 치하 일본에 망명해서 현재의 사이타마현에 정착해 고구려 유민의 마을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그의 후손인 고마(高麗) 씨가 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후손들도 자신들이 고구려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약광이 일본에 도착한 시기는 666년입니다. 고구려는 당시 나당연합군과 전쟁 중이었습니다. 이 시기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이 신라에 투항하고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가 당나라에 투항하여 고구려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에 고구려는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들은 약광은 일본에 정착하기로 하였습니다. 약광왕은 1799명의 고구려인들은 716년에 일본 남..
2023.10.30 -
일본 교토 수호신이 된 신라 명신
794년 일본, 도래계혈통으로 알려진 제 50대 천황 간무는 새로운 왕도로 교토를 택합니다. 그리고 이 곳은 1869년 메이지유신으로 도쿄로 천도되기까지 일본의 수도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곳을 지키는 수호신이 바로 신라명신이라는 것입니다. 7세기초 고대 일본에는 교토 대부호로 하타씨 일족이 있었고 하타 가와가츠는 당시 하타씨 일족의 수장으로 7세기초 일본에 불교를 중흥시킨 쇼토쿠 태자로붜 미륵보살반가상을 하사받아 고류지를 창건했습니다. 하타씨는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집단으로 정치적인 성격은 띠지는 않았지만 고대문명에 기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토에는 제일로 꼽히는 니시진오리는 일본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비단으로 이 비단은 하타씨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5세기 무렵..
2023.10.29 -
연오랑과 세오녀설화
신라의 8대 임금 아달라왕 시기에 동해바닷가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연오가 바다에 나가 해초를 따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바위[혹은 물고기라고도 한다.]가 나타나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를 본 사람들은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연오를 왕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세오는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남편이 벗어놓은 신발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위에 올라갔는데 바위가 남편에게 그랬던 것처럼 세오를 태우고 남편이 있는 나라로 태워 보냈습니다. 부부는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신라는 해와 달이 빛을 잃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내려와 있었는데, 지금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2023.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