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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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의 정복사업
진흥왕11년인 550년 고구려와 백제가 도살성과 금현성을 두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신라였습니다. 도살성과 금현성 전투에서 백제와 고구려가 혼전을 펼치며 두 나라의 군사들의 기력이 쇠해있는 틈을 타서 신라 이사부 장군이 두 성을 빼앗은 것입니다. 백제가 충청북도 한강 중류를 장악하기 위해 우선 고구려의 도살성을 공격해 함락시켰는데 이에 고구려는 백제 사비성과 도살성 중간에 있는 금현성을 공격해 도살성을 고립시키고, 한강 중류 지역을 놓고 고구려와 백제의 대혈투가 벌어집니다. 이에 이사부는 두 나라가 한치의 양보 없이 싸우다 지칠 무렵 군대를 동원해 두 성을 차지하고, 한강 중류를 차지했다. 신라가 드디어 죽령을 넘어 한강 유역에 발을 걸쳐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계에..
2023.10.09 -
진흥왕의 불교사업
‘10년(549) 봄에 양(梁)나라에서 사신과 입학승(入學僧) 각덕(覺德)을 파견하여 부처의 사리(舍利)를 보냈다. 왕이 백관(百官)으로 하여금 흥륜사 앞길[興輪寺前路]에서 받들어 맞이하게 하였다.’ 『삼국사기』 각덕은 신라에서 최초로 중국에 유학한 승려입니다. 일찍이 불법(佛法)을 배우기 위해 남조의 양(梁)나라에 유학하였다가 진흥왕 10년(549) 봄에 양나라 사신과 함께 귀국하였습니다. 그에 대해서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권2 각덕전(覺德傳)에서는 각덕이 총명하고 박식하였으며, 범인인지 성인인지 헤아릴 수가 없었고, 양나라에서 고명한 스승들을 두루 찾아 열심히 섬기면서 가르침을 받아, 덕행이 뛰어났고 인망(人望)이 높아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귀국을 결심하였다고 ..
2023.10.08 -
진흥왕은 어떻게 왕이 되었나
525년(법흥왕 12)에 입종갈문왕은 지소부인(천전리서석에는 只須尸兮妃)과 혼인하였으니 이 지소이 낳은 아들이 삼맥종입니다. 입종갈문왕은 울진봉평비에는 사부지 갈문왕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는 법흥왕의 동생으로 그의 부인 지소부인은 친조카딸이었습니다. 사부지(입종)갈문왕과 어사추어랑왕이 세상을 떠난 뒤 이들을 그리워하며 기리는 마음으로 찾아온 지몰시혜비(지소부인, 只沒尸兮妃), 부걸지비(보도부인), 심맥부지(삼맥종) 일행이 남긴 명문이 천전리 계곡에 있습니다. 지몰시혜비는 사부지갈문왕의 왕비인 지소부인이고, 부걸지비는 법흥왕의 왕비이자 지몰시혜비의 어머니인 보도부인입니다. 왕자 심맥부지(삼맥종)은 사부지갈문왕과 지몰시혜비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이듬해(540년) 7세의 나이에 즉위한 진흥왕입니다. 보도부인이..
2023.10.07 -
법흥왕은 무슨 일을 했나
지증왕 이후에 왕이 된 이는 바로 법흥왕입니다. 사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그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증왕이 64세의 고령의 나이로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연제부인 박씨의 소생으로 이름은 원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증왕이 되었을 때 이미 차기 왕으로 원종이 낙점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서는 키가 7척(尺)이었고, 성품이 너그럽고 후하며 사람들을 사랑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인은 박씨 보도부인이었습니다. 1988년 1월에는 경북 울진 봉평에서 봉평비가 발견되었는데 여기서는 ‘모즉지 매금왕’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매금’은 마립간을 줄여서 쓴 것이고 모즉지는 법흥왕의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라의 왕호는 520년대까지 ‘매금왕’이었..
2023.10.06 -
우산국 정벌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독도는 우리 땅’란 노래에도 나오는 위인은 바로 신라 장군 이사부입니다. 그는 독도를 정벌한 지증왕 시기의 인물로 유명합니다. 지난 2010년이었습니다. 강원 삼척시가 우산국(울릉도)을 정벌한 신라 장군 이사부(異斯夫)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출항기념비를 설립키로 하자 강릉의 이사부선양사업회가 '역사 왜곡'이라며 반발하였습니다. 삼척시는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 정벌을 위해 출항했던 곳으로 알려진 오분항에 울릉도는 물론 '우리 땅 독도'를 우리 역사에 처음으로 편입시킨 이사부 장군의 해양개척정신을 기리는 취지문이 새겨진 '이사부 출항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는데요. 신라 실직주(삼척)와 하슬라주(강릉)의 군주였던 이사부 장군은 당시 생소한 동물인 사자를 나무로 만들어 함선에 싣고 가 "항복하..
2023.10.05 -
문무를 겸비한 정치가 거칠부
거칠부(居柒夫, 502~579)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함께 공존했던 삼국시대 사람으로 성은 김이며 신라 내물왕의 5대손입니다. 그의 집안은 신라 왕족으로 할아버지는 각간 잉숙(仍宿)이며, 아버지는 소지왕의 장인인 이찬 물력(勿力)입니다. 거칠부는 신라시기의 역사서 『국사』를 편찬한 인물입니다. 따라서 학자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사실 그는 사사 편찬 외에도 승려이자 학자, 장군, 상대등 그리고 여기에 더해 첩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등 만능앤터테이너형 정치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거칠부는 왕실의 주요 일원이기도 했습니다. 내물계의 다른 직계인 미사흔계의 자손이며 그의 아버지 물력은 524년(법흥왕 11)에 건립된 울진봉평리신라비에 법흥왕(모즉지매금왕)과 함께 국정을 논의한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전하고 ..
2023.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