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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군사력이 강했다면 그 이유는
고구려가 군사력에 강했다는 사실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구려가 초기부터 강한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은 중국의 왕조들에게 부담이 강한 나라였습니다. 그것은 강력한 군사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인데요. 어쩌면 최고로 강한 나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약 무시할만한 국가도 아니었던 셈입니다. 게다가 고구려가 남으로는 백제와 신라와 맞닿아 있었고 서북방면으로는 한족이 세운 중국왕조 내지는 유목민이 세운 왕조와 군사적으로 대결을 펼쳐야 했습니다. 그 많은 정벌과 외침 속에서 고구려는 700년 가까이 존속한 나라였는데요. 고구려가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강했던 나라인지 아니면 중국왕조에게 조공을 바치고 연명했던 나약한 왕조였는지는 그 판단의 개인의 몫이지만 적어도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마주한 나라가 700..
2023.09.20 -
연개소문은 영웅인가 고구려 멸망의 원인인가
고구려의 멸망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연개소문의 집권입니다. 고대왕권국가에서 일개 신하가 모든 권력을 지고 휘두른다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은 인심을 잃을 수도 있는데요. 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연개소문은 인심을 잃어 이후에 고구려멸망을 자초했다고 합니다. 연개소문이 행차를 할 때에는 호위병들로 하여금 엄중하게 대오를 이루어 다녔으며 길을 지날 때에는 행차를 큰 소리로 알리게 하였는데 이럴 때면 길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구덩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숨었다고 합니다. 연개소문의 정변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 중에 안시성주가 있었습니다. 일설에는 성주가 양만춘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연개소문은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은 안시성주를 공격했으나 뜻대로 되..
2023.09.19 -
고구려는 왜 망했을까
고구려는 왜 멸망했을까.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연개소문의 세 아들을 분열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연개소문 역시 고구려 멸망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가 세 아들들에게 많은 권한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끝부분에 나오는 사론에서는 고구려의 멸망원인에 대하여 중국에 대해 두려움을 잃었으며 인심을 잃었다는 데에 그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구려가 당나라와 화친을 하였더라면 멸망이이라는 비극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심을 잃었다는 것은 연개소문이 최고실권자가 되어 권력을 휘두르며 불의를 행하고 백성들로부터 인심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만 여러 이유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고구려는 멸망했던 이유는 여러 가..
2023.09.18 -
고구려 멸망하다
665년 연개소문이 사망하면서 고구려의 실권은 그의 세 아들에게 옮겨졌습니다. 하지만 이미 연개소문 대에 고구려의 문제점은 부각되었습니다. 연개소문은 중앙의 모든 요직과 지방 성주의 자리를 자신의 사람들로 채운 것입니다. 고구려 5부귀족도 역시 연개소문의 지시를 따라야 했습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은 바로 연개소문이 안시성을 공격했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안시성주가 연개소문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시성공략에 실패한 연개소문은 안시성주에 대해 인정하였고 연개소문을 강력한 실권을 쥐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제는 그의 세 아들들 즉, 연남생과 연남건, 남산에게 이를 두고 분쟁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각각 세 아들들에게는 따르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무리들은 자신이 모시는 사람이 실권을 잃는 것을 두려..
2023.09.17 -
고구려 영류왕은 왜 대당 화친정책을 썼을까
612년 한국사에 있어 잊지 못할 고구려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바로 살수대첩입니다. 살수대첩하면 을지문덕을 떠오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당시 수나라군대는 육로로만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113만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군 앞에서 고구려가 요하 일대에 주력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정예병 30만으로 수도 평양성을 번개처럼 직공하고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수군(水軍)이 이들을 지원했습니다. 육로로 오는 군대는 을지문덕이 이끄는 부대가 막았다고 해도 만약 수군이 고구려 땅에 상륙하여 평양성을 진격하여 함락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수군 역시 고구려땅에서 격파당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막아낸 것이 바로 고건무였습니다. 고건무는 평원왕의 아들이자 영양왕의 이..
2023.09.16 -
고구려 전쟁의 힘 말은 어디서 왔을까
평강공주는 궁에서 가지고 나온 패물을 팔아 살림을 장만했고, 바보 온달을 잘 가르칩니다. 또 병든 국마(國馬)를 사오게 한 뒤 튼튼하게 길렀습니다. 온달은 이렇게 공주를 통하여 실력을 길렀고 사냥행사에서 두각을 나타내 왕을 놀라게 하였는데요. 공주가 국마를 골라 사오라고 했다는 것은 고구려가 나라에서 직접 말을 생산하고 관리해왔다는 것입니다. 삼국시대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순한 인물로 사기가 있습니다. 사기는 치양 전투 당시 기록으로 등장하는데, 본래 왕의 말을 돌보던 일을 하다가 말굽을 상하게 해서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 고구려로 망명했습니다. 이후 치양 전투가 벌어지자 백제로 귀순해 당시 태자였던 근구수왕에게 고구려군의 기밀을 알려줘서 백제군이 승리하게 도와준 것입니다. 그리고 사기가 백제로 넘어오면서..
2023.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