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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인들의 사냥 유목민과 닮았나
고구려가 처음 건국한 지역은 농사짓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초기 고구려는 농사와 함께, 수렵과 방목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고구려인들은 사냥을 매우 즐겼지만, 수렵이 중요한 산업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또 넓은 초원도 갖지 못했기에 대규모로 가축을 기를 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도 고구려인들은 사냥을 매우 즐겼습니다. ‘호구가 3만이 되고 이곳은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넒은 곳이 없다. (…) 좋은 밭이 없어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백성들은 구복을 채울 수 없다.’ 『삼국지』「고구려전」 초기 고구려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유목민들은 가축을 기르며 살 수 있었지만 고구려인들은 그러지 못하고 움직이는 사냥하며 살았습니다. 이는 확률이 떨어지는 작업이었습니다...
2023.09.04 -
고구려 역사상 최악의 패배 비류수전투
고구려의 제 11대왕은 동천왕이었습니다. 이름은 우위거(憂位居)이고, 어릴 적 이름은 교체(郊彘),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고구려조에는 위궁(位宮)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제10대 산상왕(山上王)의 아들로 어머니는 관나부(貫那部) 주통촌(酒桶村) 출신입니다. 이름은 후녀(后女)라고 하나 성은 전하지 않습니다. 고구려 왕들은 연나부 출신의 여인을 왕비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들의 힘을 빌어 정권을 유지하고자 함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연나부가 더욱 힘이 커지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이에 산상왕이 주통촌 출신의 여자를 소후로 맞이한 것은 우씨를 위시한 연나부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주통촌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동천왕으로 그는 213년(산상왕 17) 1월, 동천왕은 5살의 나이에 왕..
2023.09.03 -
좌원대첩과 청야전술
명림답부는 단연코 신대왕을 있게 한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대왕은 왕위에 오른 후, 명림답부에게 국상이란 관직을 주고, 패자의 관등을 주어 나라 안팎의 병마(兵馬: 군대) 관련 업무를 맡았습니다. 특히 신설된 국상이란 관직은 이전까지 고구려 최고 관직인 좌보(左輔)와 우보(右輔)를 합친 것으로 이로써 명림답부는 왕에 버금가는 최고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명림답부의 활약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서기 172년 후한의 군대가 쳐들어 왔습니다. 신대왕은 신하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였습니다. ‘적은 군사 숫자가 많다고 고구려를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싸우지 않는다면 겁이 많다고 간주, 자주 쳐들어올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산이 험하고 길이 좁습니다. 한 사람의 병사가 요새를 지키면 1만 명의 적도..
2023.09.02 -
차대왕과 명림답부 그리고 신대왕
차대왕은 고구려의 7대 왕으로 6대 태조왕의 동생이었습니다. 그가 왕위를 이어받았을 때 나이 76세였습니다. 차대왕은 측근들을 고위직에 앉히면서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하는, 이른바 측근정치를 행하였습니다. 태조왕이 마치 차대왕에게 왕위를 스스로 물려준 것처럼 보이나 차대왕이 왕위에 올라 고복장을 제거하고 태조왕의 아들 막근과 막덕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은 사실상 차대왕이 협박하여 왕위에 오른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서기 148년 음력 7월, 고구려 임금 차대왕(次大王)이 평유원(平儒原)이라는 곳에서 사냥을 하고 있을 때 흰여우가 임금을 따라오며 울었습니다. 임금은 흰 여우에게 활을 쏘았지만 맞지 않았습니다. 이후 차대왕이 사무(師巫)에게 이것이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사무는 이름을 ..
2023.09.01 -
고구려 태조왕은 어떻게 94년간 재위했을까
고구려 6대 태조왕은 자그마치 94년을 왕위에 있었으며 그가 죽었을 때는 나이가 119세였습니다. 그런데 『환단고기』에서 자료를 가져오면 태조왕의 재위기간은 순위는 떨어지게 됩니다. 치우천왕은 151세를 살고 109년을 통치했다고 합니다. 역대 환웅 중 재위 107년, 105년도 있고 90년 이상은 보통이라고 하니 이러한 연대 기록은 기록한 책에 대한 진위여부를 의심케 합니다. 한편 고구려 장수왕이 98세를 살며 78년을 다스렸고 그 밖에 우리나라 역대 왕들을 살펴보면 신라 진평왕(재위 53년), 백제 고이왕(52년), 고려 고종(46년), 조선 영조(53년)가 각 왕조를 대표하는 오랫동안 왕 자리를 지킨 왕입니다. 반면 고구려 6대 태조왕은 119세를 살고 93년을 재위했다고 하나 의문점이 많습니다. ..
2023.08.31 -
한국사 최초 태후 부여태후
고구려 3대 대무신왕의 원비는 그 성과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원비라고 하는 것은 첫째 왕비이기 때문입니다. 대무신왕에게는 갈사국왕의 손녀를 차비로 들이고 있었고 그와의 사이에서 아들 호동이 있었습니다. 호동은 외모가 뛰어났고 낙랑을 멸망시키는 데에 공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원비는 이 호동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원비는 대무신왕에게 호동왕자가 자신에게 음란한 짓을 하려 한다고 참소하였고 이 이야기를 대무신왕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원비가 울면서 왕이 몰래 살피라고 하면서 그런 일이 없다면 스스로 목숨을 바치겠다고도 하니 대무신왕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데에는 고구려에는 취수혼이라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취수혼은 형이 죽은 뒤 형수를 아내로 맞이한다는 의미이지만, 아버..
2023.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