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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에 강항 현창비가 세워진 이유
강항은 1567년 전남 영광군에서 불갑면에서 태어난 학자로 호가 수은이었기 때문에 강수은으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22세에 진사가 된 학자로 성혼을 스승으로 모시며 26세에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 다음해에는 문과에 급제하였고 조선과 일본 사이에 화평회담이 개최되어 일본군은 경상도 남해안으로 물러가고 전쟁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는 임진왜란 기간 동안 식량과 무기를 모아 의병 진영에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형조좌랑에 올랐는데 벼슬은 법무부계장에 해당하는 직책이었습니다. 그리던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납니다. 남원에 양원이 지휘하는 명나라 군사 3천명과 전라병사 이복남이 지휘하는 우리 군사 2천명이 있었습니다. 강항은 조정의 명령을 받고 호조 참판 이광정의 종사관으로 군량수송업무에 참여하..
2022.10.21 -
일본장수 사야가는 왜 김충선이 되었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도착한 부산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긴 벽보들이 나붙었습니다. ‘아아. 이 나라 모든 백성들은 나의 이글을 보고 안심하고 직업을 지킬 것이며 절대로 동요하거나 떨어져 흩어지지 말라, 지금 나는 비록 다른 나라 사람이고 선봉장이지만, 일본을 떠나기 전부터 이미 마음으로 맹세한 바 있었으니, 그것은 나는 너희의 나라를 치지 않을 것과 너희들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 까닭은 내 일찍이 조선이 예의의 나라라는 것을 듣고 오랫동안 조선의 문물을 사모하면서 한 번 와서 보기가 소원이었고, 이 나라의 교화에 젖고 싶은 한결 같은 나의 사모와 동경의 정은 잠시도 떠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적장이었던 일본의 장수가 써 붙인 내용입니다. 선봉장에..
2022.10.20 -
김시습의 금오신화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남기곤 했는데요. 그 중에서 각 시대마다 천재라는 타이틀로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이가 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대표적인 인물로 김시습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1435년에 태어난 지 8개월째에 글을 깨쳤으며 두 살이 되었을 때에는 외할아버지게에 시를 배웠으며 세 살이 되었을 때는 직접 시구를 지었다고 합니다. 비도없이 천둥 소리 어디서 나나? 누런 구름 조각조각 사방에 흩어지네. 이것은 세 살 때 유모가 맷돌에 보리를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지었다는 시입니다. 그리고 이 후에는 이색의 후손인 이계전에게 , 같은 성리학의 기본경전을 배웠는데 그 때 그의 나이 다섯 살 때였습니다. 이러한 신동의 탄생은 소문으로 널리 퍼졌고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439..
2022.10.19 -
조선을 다스리는 법률근간 경국대전
1455년, 집현전의 직제학이던 양성지가 당시 조선의 왕이던 세조에게 상소를 올렸는데 그는 통일된 법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전에는 법전이 없었느냐, 고려시대에는 법률이 있었지만 체계적이지 않았습니다. 고려공사는 3일이라는 말이 있는데 고려공적인 일은 3일이면 바뀐다는 말로 안정적이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조선의 태조 때에 만들어진 고려시대의 관습법에 법률적 효력을 지닌 왕명을 합해 정리한 것으로 을 펴냈고 3년 뒤에 , 태종 때 과 그리고 세종 때에는 이 편찬되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바뀔 때마다 법전이 새로이 등장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왕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법률을 적용해야 하는 관리들은 그 때마다 난처했습니다. ..
2022.10.18 -
조선 백자에 대하여
선사시대에는 음식을 저장하기 위해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구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먼저 등장한 실용적 그릇이었습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들어 1000℃이상의 온도를 만들어내는 터널식 가마가 생겼고 이로서 도기의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지나면서 자연스레 가마의 온도가 올라가고 남북국 시대에 들어서는 중국에서 유약을 발라 다시 굽는 기술이 들어왔습니다. 바로 도자기의 시대로 접어든 것입니다. 이러한 도자기기술은 고려시대에 들어 기술적으로 더욱 진보하게 되어 12세기에는 고려만의 독자적인 기술, 상감청자로 전성기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몽골의 침입으로 침체에 빠졌습니다. 이후 들어선 조선대에 이르러서는 초기 분청사기와 백자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2022.10.17 -
몽유도원도에 얽힌 이야기
몽유도원도 기문 정묘년, 음력 4월 20일 깊은 잠에 꿈을 꾸었다. 꿈에서 박팽년, 최항, 신숙주와 함께 산 아래 이르니, 우둑 솟은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가 있고, 복숭아나무 수십그루가 있다. 오솔길의 갈림길에서 서성이는데 산관 야복 차림의 사람을 만났다. 그가 공손하게 일러준 대로 기암절벽과 구불구불한 냇가 길을 따라갔다. 어렵사리 골짜기를 들어가니 탁 트인 마을이 나타났는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였고 또한 대나무 숲과 초가집이 있고 개울가에는 오직 조각배한 척이 흔들거렸다. 한 눈에 도원동임을 알아차렸다. 제각기 신발을 가다듬고 언덕을 오르거니 내려가거니 두루 즐거워하던 중, 홀연 꿈에서 깨어났다. 안평대군은 시서화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가 꾸었던 꿈을 직접 그리지 않았는데요. 그 이..
2022.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