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대비와 폐비 윤씨

2023. 2. 10. 18:27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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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에서 형제간의 갈등도 비극을 불렀지만 고부간의 갈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와 성종의 두 번째 왕비이자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사이의 갈등은 후에 엄청난 사건을 불러오게 됩니다. 그러면 인수대비는 어떤 사람일까요. 
사실 인수대비는 드라마로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인수대비는 세조 때 좌의정을 지낸 서원부원군 한확의 여섯째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교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습니다. 그전에 태종 때에 3번에 걸쳐 조선의 여자를 뽑아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졌습니다. 그 때 한확의 누이가 선발되었는데 명의 3대 황제 영락제는 그의 뛰어난 미모에 반해 후궁으로 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더 나아가 한확의 잘생긴 외모에 그에게 벼슬을 내리고 부마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확은 노모를 모셔야 한다는 이유로 귀국을 하게 됩니다.
‘한확의 손위 누이가 태종 문황제에게 입시하여 총애가 있었으므로 한확에게 홍려시소경을 주었으며 선종 황제 때 그 손아래 누이가 또 입시하게 되었다. 손아래 누이는 벌써 시집갈 시기가 지났었고 한확은 재산이 넉넉하더라도 그를 시집보내지 않고 장차 북경에 데리고 가려 하므로, 사람들이 한확을 천하게 여기게 그 손아래 누이를 슬피 여겼는데, 이 때에 와서 특별히 이 관직에 임명되었다.’ 『세종실록』
 이후 영락제가 몽골원정 도중 병사하고 그의 무덤에 순장자를 고르게 되었는데 그 때 여비 한씨도 포함되었습니다. 정말 비운의 여인이 아닐 수 없는데 그를 죽일 적에 형을 집행하던 사람이 발디딤판을 빼놓는 바람에 유언을 미처 다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영락제의 아들 홍희제에 이어 5대 황제 선덕제가 즉위하게 되었는데 이 때에도 조선은 공녀를 선발하여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비 한씨의 막내여동생인 한계란이 언니를 닮아 얼굴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명나라에서 한학의 동생을 공녀로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이와 관련하여 한 차례 비극을 겪은 한계란은 거부하였으나 결국 오빠 한확의 요구는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오빠를 원망하며 혼수감을 다 주변사람에게 나눠주고 떠났는데 한계란은 정통제의 황태자가 죽을 위기를 구해내어 이에 대한 공으로 태비가 되고 평생 동안 보호받고 천수를 누렸습니다. 

 어찌되었든 당시 한확은 당대 외교문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라 수양대군은 그와 사돈관계를 맺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문종이 즉위하던 해에 수양대군은 장남 도원군과 한확의 막내딸 한씨와 결혼을 시킨 것입니다. 그야말로 정략적인 결혼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왕이 되자 한씨도 세자빈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원군이 스무 살에 사망하게 되자 그도 세자빈의 지위를 잃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이미 3살의 월산대군과 태어난 지 한달된 아이 자을산군이 있었는데 이 아이는 나중에 성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운명을 몰랐습니다. 시동생인 해양대군(예종)에게 세자의 자리가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한씨는 왕비가 될 수 있었는데 왕위 계승 순위에 있는 자식을 둔 만큼 그는 오히려 높은 권력순위에 잇는 사람의 정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 세자 해양대군은 한명회의 딸 셋째 딸을 세자빈으로 들였고 세자의 자리는 더욱 공고해지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자빈이 인성대군을 낳고는 산후병으로 17세에 죽음을 맞이하자 당시  세자빈의 자리를 잃고 수빈에 머물던 한씨는 자신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을 한명회의 막내딸과 결혼시켰습니다. 다시 한 번 권력의 틈에 끼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종이 13개월 만에 요절하자 이제 뒤를 이을 사람을 네 살된 제안대군이었고 이에 왕권은 자연스레 열세 살이었던 자을산군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첫째 월산군도 있었지만 당시 후계자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것은 왕실의 최고 어른 정희왕후였고 그가 지명한 사람이 자을산군이었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한명회의 공이 컸습니다. 그가 바로 성종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씨는 다시 궁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한씨는 왕비를 거치지 않고 대비가 됩니다. 사실 이러한 것은 왕실에 혼란을 가져다줄 법도 했습니다. 가족관계로 보면 인수대비가 안순왕후보다 손위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종의 부인인 안순왕후가 인수대비에게는 먼저 왕비를 역임한 선배가 됩니다. 이 때 신숙주가 말하길, 인수대비의 남편이자 세자의 신분으로 죽은 의경세자를 왕으로 추숭하면 인수대비가 서열 2위가 되니 자연스럽게 서열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왕위에 오른 성종도 아직 어렸던 지라 수렴청정이 이루어졌는데 당시 할머니인 정희왕후가 문자를 모른다고 하여 인수대비가 옆에서 정치를 돕습니다. 따라서 당시 승지가 문서를 가지고 정희왕후에게 물으면 인수대비가 그에 대한 답을 하고 정희왕후의 이름으로 그 명령이 나간 것입니다. 
인수대비의 아들 성종은 경연을 자주 한 왕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것은 유교교육을 받은 어머니의 교육열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종은 향락과 잔치를 즐겼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기록에서는 연산군이 연락(連絡)을 탐한 것은 눈과 귀에 익숙해져서 그렇다라는 기록도 남깁니다. 그리고 성종도 청소년기를 지나 스무 살에 다다르면서 이제 친정의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성종도 죽은 첫 번째 왕비 외에 다시 왕비를 뽑아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떠오른 것이 바로 폐비 윤씨하고 정현왕후 윤씨였습니다. 그러면서 인수대비가 내세운 것이 바로 『내훈』이라는 책으로 일종의 왕비가 되기 위한 지침서였습니다. 
‘아들이 아내를 꽤 마음에 들어 하더라도 부모가 기뻐하지 않으면 내보내야 한다. 그러나 아들이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부모가 “나를 잘 섬기는구나”라고 하신다면 아들은 부부의 예를 실천하며 죽을 때까지 허술히 하지 말아야 한다. (중략) 비록 남편이 아낀다고 하더라도 시부모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면 이는 의가 스스로 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시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굽히고 따르는 것 이상이 없다. (중략) 며느리가 잘못하면 이를 가르칠 것이고, 가르쳐도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릴 것이고, 때려도 고치지 않으면 쫓아내야 한다.’ 『내훈』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을 받들어 왕비가 된 사람이 바로 폐비 윤씨였습니다. 그는 제헌왕후로 1455년 정3품 판봉상시사 윤기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다가 후궁으로 간택되어 입궁하였으며 이후 성종의 부인이 되었고 책봉식이 있은지 3개월 만에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연산군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도 잠시 윤씨는 페출되었습니다. 성종은 교지를 내려 그 내용을 전하니 내조하는 공이 없고 도리어 투기를 하며 1473년에는 몰래 독약을 품고 다녀 궁안의 사람을 해치려 하다 발각되어 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조정대신들은 갑작스런 폐비이야기에 당황해 했고 성균관 유생  65명이 중궁 폐출을 반대하고 나왔습니다. 특히 그가 차기 왕위계승자의 어머니라는 점에서 반대는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윤씨를 폐출시키는 것과 관련하여 『연려실기술』에서는 ‘나에게 행패를 부리고 나를 노예처럼 대우한다.’는 성종의 입장을 실었고 세 명의 대비에게 공손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비상이라는 치명적인 독약을 가지고 다닌 것은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을 것입니다. 성종보다 연상으로 짐작되는 폐비 윤씨는 성종에게 만만치 않은 존재였을 것이고 한편 성종은 폐비 윤씨보다 후궁을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즈음 폐비 윤씨는 후궁을 제거하기 위한 민간요법을 쓰는가 한편 후궁들이 자신과 아들을 죽이려 한다는 거짓투서를 돌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에 더욱 분노한 것은 인수대비였습니다. 이에 성종은 윤씨의 폐출을 결심하게 됩니다. 결국 윤씨가 다른 후궁을 찾는 것에 반발하여 성종의 얼굴에 상처를 내자 인수대비가 성종에게 윤씨의 폐위를 주장하였고 이에 폐위된 윤씨는 3년 뒤에 사약을 받게 됩니다. 당시 그의 아들은 일곱 살이었으니 이는 또다른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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