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과 중종반정 그리고 장녹수

2023. 2. 12. 18:30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전기

728x90

김처선은 조선 세종 대에 들어온 내시였습니다. 그는 세종 때부터 연산군까지 일곱 임금을 섬겼으며 그러면서 임금은 그를 곁에 두고 아꼈습니다. 세조 임금은 그를 원종공신 3등에, 성종은 자헌대부에 승진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조 때에는 처벌당해 관노로 궁궐에서 추방당했으나 곧 복직되었으니 그것은 그가 보여준 왕에 대한 충성심과 청렴이 한몫한 것이었습니다. 김처선은 여러 임금을 섬겼으니 그 충언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하루는 연산군이 처용무를 추었는데 그 춤이 음란했다고 합니다. 본래는 그렇게 음란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자신의 구미에 맞게 퇴폐스럽게 만드니 신하로서 김처선은 한 마디하였습니다. 당시는 두 번의 사화를 겪으면서 삼사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임금의 폭정 때문에 감히 말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김처선은 이토록 문란한 임금은 없었다면서 폭정을 거두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이에 분노한 연산군은 옆에 있던 활로 김처선을 향해 쏘았습니다. 그리고 김처선이 활에 맞고 쓰러지자 칼을 휘둘러 그의 다리를 절단하고 그래도 직언은 멈추지 않던 김처선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연산군의 광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양아들과 7촌 친척들까지 처형당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김처선의 고향 이름을 없애고 그의 집도 불태워 없앤 뒤, 연못을 팠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춘 처용무도 ‘풍두무’로 고치고 김처선에 이름 글자 처(處)자와 선(善)자를 쓰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과거 합격자의 답안 중에 쓰지 말라는 글자 처(處)자를 썼다는 이유로 과거 합격이 취소되었고 왕명을 받아 교서를 작성한 사람이 처(處)자를 사용하여 벌을 주려고 하였는데 이러한 왕의 명령이 내리지기 전에 사용한 것이므로 벌을 면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김처선에 대한 연산군의 분노는 왜이리 컸을까. 아마 연산군은 김처선을 자신에게 충직한 신하라고 여겼는데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쓴 소리를 하니 그 동안에 쌓인 분노가 폭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위치한 연산군 10년(1504년) 만들어진 금표의 모습.

이러한 연산군의 폭정은 교묘하게 국가적인 제도를 자신의 취미를 위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금표’입니다.  금표란 원래 국방상 주요 요충지나 전략자원 생산지가 난개발로 인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정한 개발제한구역입니다. 예를 들면 조선에서는 궁궐의 개보수나 전함을 만들 때에 나무가 많이 필요했는데 이러한 목재의 확보를 위해 금표를 세우고 민간인의 출입을 막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도심지와 먼 곳에 설치하여 백성들에게 주는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연산군은 이러한 금표를 주요 도로는 물론, 도심지까지 확대합니다. 그리고 1503년에는 기존의 금표구역보다 10배가 넓어졌는데 이로 인해 백성들의 주택 이전도 국가의 재정에서 충당하여 재정손실도 입었습니다. 특히 이렇게 확대된 금표 안에서 연산군이 사냥을 즐겼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즉, 국가의 정책 아래 금표가 세워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미를 위해 금표가 설치되었고 자신이 사냥하는 모습을 다른 이가 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궁궐 담을 아주 높게 만들고 누군가 넘어오지 못하게 가시울타리를 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동물들을 사냥하고 나서 다시 후원에 풀어 다시 사냥했다고 합니다. 
한편 당시의 기괴한 왕의 정치행태가 계속되자 익명의 투서가 날아오기도 했습니다. ‘의녀들이 우리 임금은 신하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고 죽인다고 하는데 왜 그런 사람들을 잡아들이지 않는가. 그리고 우리 임금은 여자를 가리지 않으니 우리도 조만간에 불려가겠다고 했는데 그런 여자들을 왜 잡아가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즉 의녀들이 임금이 신하들을 죽이는 것과 이성관계를 비판하는 것을 보고만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성자로 지목된 사람이나 해당 의녀들은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혀지면서 연산군이 자신에 대한 불만을 엉뚱한 사람들을 빌려 투서에 담은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당시 마음대로 상소를 올리지 못하던 시대였으니 누군가 이런 일을 꾸민 것으로 보였습니다. 약이 바짝 오른 연산군은 투서에 쓰인 한글을 못쓰도록 하는 조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한글 사용의 금지가 예외가 된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흥청이나 운평을 불러 노래하고 놀 때 「경청곡」같은 악장은 언문으로 쓰라고 한 것입니다. 

그럼 흥청이란 무슨 말일까. 현대에는 돈이나 물건을 마구 사용할 때 흥청망청 사용한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연산군과 관련있는 말로 당시 술과 여자에 빠져 지내던 연산군은 각 지역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뽑아 궁궐로 데려오게 했습니다. 그 때 이쁘고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여성을 흥청이라 했으니 그 의미는 맑은 기운을 일으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연산군이 주색에 빠지다 보니 백성들의 삶은 점점 어려워졌는데 이 때 연산군의 마음을 흔든 여인이 있으니 그가 바로 장녹수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문의현령을 지낸 장한필로 그의 어머니는 첩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천즉천에 따라 장녹수도 천민신분이었습니다. 장녹수는 제안대군이 부리는 가노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낳았고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가 되었습니다. 유부녀였고 아마 연산군보다 나이가 많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록에서도 미인은 아니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엄청난 동안으로 30대에도 10대 중반의 소녀로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산군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의 외모가 아니라 연산군의 비위를 잘 맞추는 언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연산군의 마음에 든 장녹수는 후궁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1504년에는 연산군이 무명 5백 필을 그녀의 집에 하사하고 그녀의 집이 화재의 위험에 있다고 하여 새로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장녹수의 권세로 그의 친척이 벼슬이 얻기도 하니 집안이 크게 부귀영화를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장녹수는 연산군의 마음을 움직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는데 한 때 승은을 입기도 했던 궁녀 수근비를 질투하여 처형시키고 하였고 옥지화라는 기생은 춤을 추다가 장녹수의 치마를 밟았다는 이유로 참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종3품 숙용의 자리에 오르면서 권세가 하늘을 찌르던 어느 날, 동지중추부사 이병정이라는 사람이 친구와 이야기와 나누던 중 주변의 시끄러움을 듣게 됩니다. 이에 하인을 시켜 조용히 하라고 일렀는데 이를 듣지 않으니 이병정이 가보았습니다. 거기서 장녹수의 종을 본 것입니다. 그러면 종이 죄송하다고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이병정에게 면박을 주었습니다. 이 때 이병정이 버릇없다며 따졌습니다. 이에 연산군은 오히려 장녹수의 종이 아닌 이병정에게 죄를 물어 벌을 주려 했으나 이병정이 장녹수에게 뇌물을 바치고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506년 연산군은 후원에서 나인들과 잔치를 하다가 시 한 수를 읊었습니다. 
‘인생은 풀에 맺힌 이슬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
시가 끝나고 나서 다른 여인들은 모래 서로 비웃었으나 왕이 흐느끼고 장녹수도 따라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연산군이 장녹수에게 만약 변고가 있으면 너도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자신의 앞날을 예견했던 것일까. 그 때가 중종반정이 일어나기 9일 전의 일이었습니다. 
‘내 죄가 중대하여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졸을 대로 하라라고 하고 곧 시녀를 시켜 옥새를 내어다 상서원 관원에게 주게 하였다.’ 『중종실록』
연산군은 반정의 움직임을 알아채고 있었던 듯 합니다. 그럼에도 제대로 막지 못한 것은 궁궐을 지키던 호위군사, 시종 환관들이 전부 수챗구멍으로 빠져나가는 데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정의 중심에 있던 것은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등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산군은 교동도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배간 지 두 달 만에 역질로 사망합니다. 그리고 그의 폭정을 만류했던 왕비 신씨가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왕으로 장녹수를 비롯한 여러 기생을 끼고 살았던 연산군은 마지막에는 생각난 사람은 신씨였던 것입니다. 

728x90

'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 > 조선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시대 과거제도  (0) 2023.02.15
정철과 기축옥사  (0) 2023.02.13
연산군은 왜 폭군이 되었나.  (0) 2023.02.11
인수대비와 폐비 윤씨  (0) 2023.02.10
남이 장군  (0) 2023.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