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나온 효자수출상품 인삼

2023. 6. 29. 17:27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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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은 백제의 것을 중하게 여기고 다음으로는 고구려(요동)의 것을 쓰는데 고구려의 것은 백제의 인삼보사 못하다.’ 『명의별록』
‘그 뿌리의 절반을 날 것으로 먹은뒤 맥박이 훨씬 강해지고 식욕이 증진되고 원기가 왕성해졌습니다.’ -프랑스인 선교사, 피에르 자르투 (1714년)-
과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품 중에 인삼이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무역항인 벽란도가 있었고 이곳에서 여러 나라 상인들이 몰려와 물건을 거래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고려의 인삼입니다. 
‘고려인삼의 좋은 점에 관해서는 중국인도 완전히 신뢰하고 있다. … 나이가 들어 활력을 잃고, 오랜 질병으로 기운이 없고, 허약한 사람에게는 인삼이 매우 효력이 있었고, 질이 가장 좋은 것이라면 그 약은 거의 금 무게만큼과 같은 값어치가 있다.’ 『Life in Korea』, 칼스
‘파낙스 진생(Panax Ginseng) 또는 퀸키폴리아(Quinquefolia)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인삼은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다. 영국 약전에 있는 어떤 약도 극동에서의 인삼의 평판을 따라잡을 수 없다’ 『Korea and Her Neighbours』, 이사벨라 버드 비숍
 100여 년 전 구한말, 우리의 인삼은 세계적으로 그 이름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보다 이전인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의 인삼이 벽란도를 통해 지구 반대편으로 전달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시대적 상화을 볼 때 그렇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래도 생각보다 우리나라의 인삼이 서양에 알려진 것은 오래된 것 같습니다,
‘한국(조선)에서 온 좋은 뿌리를 보냅니다. 이 뿌리는 너무 귀해서 보통 사람의 손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한국과 교류할 수 있는 쓰시마 번주에 의해 일본 천황에게 보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약으로 간주되며 죽은 사람도 살려내기에 충분합니다.’ -1617년, 영국 동인도회사 일본 주재원 리처드 콕스가 본사에 보낸 통신문-

이러한 우리나라의 인삼이 유럽에 알려진 것은 중국의 의학서 『본초강목』가 하나의 루트였습니다. 이 책은 인삼에 대한 효능이 실려 있었고 , 선교사들은 관련 내용을 라틴어·프랑스어·독일어·영어·러시아어·스페인어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선교사 알바루 세메두는 1643년 중국을 소개한 책 '대중국지'에서 "중국인이 최고의 강장제로 꼽는 인삼이 요동 지역과 한국에서 난다"고 적었습니다. 그렇게 유통된 인삼은 서양에서 귀한 뿌리로 대접받았습니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진상되기도 했으며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인삼이 너무 귀해서 파운드당 25플로린(금화의 단위)에 팔렸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인삼을 같은 무게의 금과 맞바꾸었으며 은과 바꿀 경우는 무게당 7배의 값을 받았다.’ -윌리엄 그리피스, 『은자의 나라 한국』
한중일 사이에서 조선은 인삼을 매개로 무역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선 상인들이 인삼을 일본에 수출해 받은 은으로 중국에서 비단을 사 이득을 남겼습니다. 당시 중국은 세계 최대의 은수요자였고 일본은 세계 2위의 은 공급지였습니다.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해준 것이 바로 조선의 인삼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선의 인삼을 구하려는 일본의 노력도 깔려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조선 인삼을 사들여 오기 위해 ‘인삼대왕고은’이라는 순도 80퍼센트의 특수은을 만들었습니다. 조선 상인들이 순도가 낮은 은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국내에서 통용되는 은화의 순도가 30퍼센트 내외 수준이던 것을 생각하면 일본인들은 조선의 인삼을 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입니다. 한편 조선의 대중국무역은 사행무역으로 이루어졌으며 압록강에서 120리 떨어진 책문에는 조선 사행이 오는 때를 맞춰서 중국 각지 상인들이 여러 물건을 가지고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조선 상인들이 중국에서 사들인 물건은 주로 백사(白絲)와 비단이었으며 주요 결제수단은 인삼과 은화였다고 합니다. 
원래 인삼은 산에서 나는 인삼인 산삼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인삼 재배는 17세기 중엽~18세기 중엽까지 자연산 산삼이 절종 위기에 처하는 시점에 널리 시도되어 18세기 중엽~19세기 중엽에는 전국적으로 생산되었습니다. 인삼이 밭에서 갓 재배될 때만 해도 그것은 ‘가삼’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삼은 곧 인삼의 지위에 올랐고, 인삼은 산삼이라 불렸습니다. 

이러한 인삼의 재배 시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전해오는 바가 없으니 하나의 설을 추가할 수 있는데요. 그중 유력한 것은 여말 선초설이며 원나라의 인삼 조공 요구가 극심해지면서 산삼을 남획하는 바람에 산삼이 귀해졌고 민가에서 산삼 씨앗을 받아 산속에서 키우는 산양삼 재배가 시도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삼은 이외로 18세기 후반 당시 신생독립국이던 미국의 효자수출상품이었습니다. 미국은 별다른 수출품이 없었는데 1784년 미국은 자국 상선을 이용한 첫 해외무역을 성사시킵니다. 이 배의 전체 화물 27만 달러어치 가운데 인삼이 24만 달러어치에 달했습니다. 미국은 1786년 1천800피쿨(1피쿨은 약 64㎏)의 인삼을 중국에 팔았고 그 가운데 절반가량은 자국 선박으로 운송했습니다. 1820년 발행된 한 잡지는 "영국은 중국에 갖다 팔 것이 하나도 없지만, 우리 미국은 인삼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당시 중국인들은 독립국가 미국의 배에 꽂힌 성조기를 꽃으로 여겨 ‘화기(花旗)’라고 불렀으며 미국에서 난 인삼을 화기삼이라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러나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중국에 대한 시선도 부정적으로 바뀌었고 중국인들이 떠받드는 인삼에 대해서도 ‘만병통치약‘에서 ’중국인들이 떠받는 마신‘정도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양의 근대의학이 발달하며 동양의학에 대한 멸시가 이어지면서 인삼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더해져갔습니다. 18세기 후반 서양에선 약의 제조 관행을 통일하고 기준을 만드는 ‘약전 개혁’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커피에서 카페인, 아편에서 모르핀을 추출하는 식으로 식물의 유효성분을 찾는 것입니다. 인삼은 약전에서 제외되거나 폄하되었습니다. 당시 기술로선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을 분리정제하기 어려웠고, 실험에 사용한 인삼도 질 나쁜 북미삼이나 아시아삼을 사용하다보니 실험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삼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가짜가 시장에서 판을 쳤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비단 인삼만의 이야기는 아닌데요.
‘도라지를 인삼으로, 까마귀 고기를 꿩고기로, 말고기를 소고기라고 속이는 자도 있고, 누룩에 술지게미를 섞고 메주에 팥을 섞는 자도 있다. 요즘은 소금이 귀한데 간신히 사고 보면 메밀가루를 섞었다.’ 『무명자집』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인삼의 납품은 공인(貢人)이 담당했는데요. 인삼의 수요는 갈수록 늘었지만 화전 개간으로 인삼(산삼) 산지는 줄고 있었습니다. 가격을 맞출 수 없었던 공인들은 도라지나 더덕을 아교로 붙이거나 인삼 껍데기에 족두리풀 가루를 채워 넣어 가짜 인삼을 만들었고 조삼(造蔘)이라 불렸습니다. 부르는 대로 값을 치를 만큼 인기가 좋아 가짜 산삼인 조삼(造蔘)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도 생겨났고 쓰시마 번주가 조선 상인에게 사들인 가짜 인삼을 에도 막부에 바쳤다가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일본은 이미 숙종 36년(1710)경부터 중국삼을 수입하였고 1730년대가 되면 일본에서도 인삼재배가 성공하여 수입 대체를 보았기 때문에 1750년대 이후 조선의 인삼 수출은 크게 줄어들게 되면서 위에서 얘기한 홍삼이 등장하였습니다. 이러한 홍삼은 아편 해독에 효과가 있다는 중국인들에게 조선에서의 판매가격보다 7배까지 비싼 가격에 팔렸고 이로 인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조선 정부 국고를 채워주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총독부에서 홍삼전매법이 만들어졌으나 1996년 인산전매제도가 폐지되어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홍삼을 가공판매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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