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은 누구일까
2023. 7. 3. 17:37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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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상인을 보부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대부터 있었으나 조선 시대에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조선 시대의 원래 명칭은 ‘부보상’이었다고 합니다.
조선후기가 되면서 전국 1000개 넘는 시장이 생겼습니다. 보통 5일마다 장이 열렸는데 장을 옮겨다니며 장사를 하는 이들이 보부상이었습니다. 보부상들은 대개 파산한 농민이나 몰락한 양반 혹은 노비출신이었습니다. 보부상들은 낯선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산적을 만나 장사 밑천을 빼앗기기도 하고, 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부상들은 3~5명 단위로 접장(보부상의 우두머리)을 두고 그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의무 사항을 만들어 철저히 지켰는데 보부상은 길을 가다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가리지 않고 돌보았고 만약 보부상 가운데 죽은 사람이 있으면 장례를 치러 주기도 했습니다(병구사장(病救死葬)). 장사 밑천이 떨어진 사람이 있으면 서로 돈을 빌려줘 다시 장사를 하도록 도왔으며 윗사람을 섬기고 무리를 사랑하며(위상애당(爲上愛黨))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 보답하기도(진충보국(盡忠保國)) 하였습니다. 하지만 규율을 어기는 사람이 있으면 매로 다스렸습니다. 불효를 저지르는 자는 곤장 50대, 웃어른한테 불손한 자는 곤장 40대, 폭리를 취하고 남의 장사를 방해하는 자는 곤장 30대, 보부상 회의에 빠지는 자는 곤장 10대 등 꽤 엄했습니다. 심지어 회의 시간에 옆 사람과 말하다가 걸리면 곤장 15대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규율은 엄격했지만, 보부상들은 서로 도우며 가족처럼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들은 길을 가다 만나면 다음에 만날 날짜와 시간, 장소를 약속하고 서로 옷을 바꿔 입었고 서로 같은 길을 가는, 형제 이상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동포(同胞)' '동포애(同胞愛)'라는 말도 이러한 보부상의 풍습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보부상은 보상과 부상을 합친 말입니다. 등짐장수를 부상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상업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고대에도 있었습니다. 고대사회의 물품 운반수단은 소와 말도 있었지만 주로 사람의 머리나 등으로 운반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상단(負商團)이 조직된 것은 조선 초로, 이에 대해서는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개국에 공헌했기 때문에 그 조직을 허용했다는 설과, 이와는 달리 상류 계층과 무뢰한의 탐욕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다루는 상품은 주로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 생활용품이었고, 하층민이 많아서 사회적으로는 냉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 조정의 지원을 받아 부상단이 만들어져 서로 도우며 활동했습니다.
반면 봇짐 장수인 ‘보상’은 조선 후기에 나타났습니다. 보상은 세공품처럼 부피가 작고 값비싼 물건을 다루었습니다. 보상들의 조직인 보상회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고 규칙을 만들어 지나친 이익을 남기거나 속이지 않도록 단속했습니다. 보상들의 우두머리는 ‘접장’이라고 불렀다. 보상과 부상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습니다.
고려말 조선초기의 거상이자 부보상(負褓商)의 아버지로 불리는 백달원(白達元)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집아가씨와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하였으나 고생길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생각해낸 것이 사냥꾼들을 찾아다니며 양질의 털가죽을 매입하고 이를 손질하여 소비자들에게 파는 것이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손질은 소비자의 몫이었는데 그 고충을 해결함으로써 질좋은 품질에 서비스까지 더해서 판매한 것입니다. 이에 백달원은 소비자의 수요를 파악하고 필요한 상품을 구해 직접 전달해 주니 그것이 바로 등짐장수(부상)와 봇짐장수(보상)로 불리는 상행위였습니다. 물산이 풍부한 곳에서 열악한 곳으로, 특정 산물이 생산되는 곳에서 그것을 구하기 힘든 곳으로. 수요와 공급의 공백을 이용하고, 지역간 시세차이를 활용하면서 백달원은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 그는 함경도의 전장에서 이성계를 만나게 됩니다. 그가 위험에 처한 이성계를 구한 것인데요. 조선이 건국되고 나서 이성계를 다시 만나게 되고 백달원은 소원으로 자신과 같은 부보상들을 돌봐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이성계는 부상을 위한 중앙조합기관인 부상청(負商廳)을 설립하고 지역사무소인 임방(任房)을 전국 각지에 세우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설이고 백달원을 보부상의 기원으로 볼 수 없으나 적어도 이전에도 있던 부상 조애 이성계가 도움을 주었는데 정부차원에서 특권을 보장받은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부상은 지역의 동향을 파악하고 민심을 살피기 용이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이성계 입장에서도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이후 조선역사에서 굵직한 사건에서 보부상이 함께합니다. 보부상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 전투에서는 수천 명의 부상이 식량과 무기를 운반했을 뿐 아니라 전투에도 직접 참여하여 왜군을 물리치는 데 공헌했으며, 병자호란 때는 인조(仁祖)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자 부상들이 식량을 운반해주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정부에서는 이들의 요구대로 생선·소금·목기·토기·수철기(水鐵器)에 대한 전매권을 허락했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전국의 보부상이 동원되어 프랑스군을 무찔렀으며, 1882년에는 민영익(閔泳翊)이 대원군의 개혁정치에 불만을 품고 경기도와 강원도의 보부상을 이끌고 서울로 침입한다는 소문이 있어 도성 내에 큰 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또 1894년 갑오농민전쟁 때 보부상은 정부군에 합세하여 농민군과 전투를 벌였는데, 당시 주축이 되었던 것은 충청우도(忠淸右道) 저산팔구(苧産八區)(모시를 생산하는 8읍 : 부여·정산(定山)·홍산(鴻山)·임천·한산·비인·남포·서천)의 보부상들이었습니다.
보상이 언제부터 조직을 갖게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1879년(고종 19) 9월에 발표된 ‘한성부완문’에 따르면 이전부터 지역적으로 각기 정해진 기율과 우두머리인 접장의 소임이 있어 보상들을 통솔해 왔으며, 이렇게 흩어진 소규모 자본의 행상을 전국적인 상단으로 조직한 것이 보상단입니다. 동제상구를 위해 무뢰배(일정하게 사는 곳과 하는 일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무리)나 하급 관리의 침탈을 금지하여 상권 확립을 꾀하고, 또한 한성부에서 8도의 도접장을 차출하면 일종의 신분증인 도서를 발급하여 보상의 신분을 보장하였습니다. 이처럼 보상과 부상은 각각 별개의 행상 조합 조직으로 발전해 왔으며 부상이 보상의 상품을 가지고 행상한다든지, 그와 반대되는 경우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1883년에 혜상공국(惠商公局)을 설치하여 보상과 부상을 완전 합동하게 하였습니다. 1885년에는 다시 상리국(商理局)으로 개칭하는 동시에 부상을 좌단(左團, 左社), 보상을 우단(右團, 右社)으로 구별하고, 역원(役員)만은 상리국에 통합, 단일화시킵니다.
개항 이후에 조선 정부가 보부상에 관심을 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개항하였고 그에 따라 청나라와 일본 상인들을 비롯한 외국상인들이 침투해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정부는 이들을 보호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보부상은 당시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이를 이용하려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전주 감영의 영병 250명과 함께 보부상 1,000여 명이 동원된 이래로 농민군 토벌에 참여, 농민군과 대립한 일이나 광무 정권 당시 정부는 황국 협회에 소속된 보부상단을 동원하여 정부의 비자주적 외교 활동을 비판하며 반정부 운동을 벌인 독립 협회와 만민 공동회를 탄압하기도 한 것입니다. 보부상은 이러한 활동의 대가로 정부로부터 어염, 수철, 토기, 목기, 목물 등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전매 특권을 부여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정부는 보부상단에 소속되지 않는 행상을 상단 조직에 포섭하는 한편, 불량 행상을 단속하고 외국 상인의 불법 행위를 금함으로써 보부상의 권익을 보호하였습니다. 상업자본이 덜 발달한 조선에서 가장 영세한 보부상이 전국적인 집단으로 성장한 것은 주목할만하지만 개항 이후 변화의 길을 외면하면서 보부상은 전통적인 보수 상인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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