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무형유산 씨름
2023. 6. 28. 17:24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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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1월 26일 아프리카 모리셔스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 위원회 제 13차 회의에서 남북한 공동등재 방식으로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등재 방식은 유사하거나 같은 거라도 남북한이 따로 개별 신청 및 개별 등록이 되었는데, 씨름 또한 2016년 6월과 12월 남북한이 따로 등재 신청을 했었지만 남북한의 씨름 문화가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공통점이 있고 평화와 화해를 위한 차원이라며 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공동 등재된 씨름의 공식명칭은 ‘씨름, 코리아의 전통 레슬링(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이라고 합니다.
씨름은 두 사람이 맞잡고 힘과 기술을 부리어 상대를 먼저 땅에 넘어뜨려 승부를 결정하는 경기로 다른 이름으로 각력, 각저, 각희, 상박 등으로 부르는데 이 한자어는 한국의 씨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씨름의 이원에 대한 확실한 정설은 없는 상태입니다. 영남지방에서 쓰는 우리말 가운데 서로 버티고 힘을 겨루는 것을 “씨룬다”고 하며, 또 서로 버티고 힘을 겨루어보라는 말을 “서로 씨루어보아라.”고 하고, 꽤 오래 버틴다는 말을 “대기(되게) 씨룬다.” 또는 “대기 씨루네.”라고 하였으니 씨름이라는 말은 타동사 ‘씨룬다’라는 말이 명사화하여 ‘씨룸’이 되고, 다시 ‘씨름’이 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몽고어에서는 씨름을 ‘bu"he’라고 하는데, 이 말은 우리말의 ‘발[足]’과 비교되는 말이라고 합니다. 몽고어에서 다리[脚]의 뜻으로 ‘silbi’, ‘saba`r’ 등이 있는데, 어근은 실(sil)로 우리말 씨름의 어근 ‘실’과 비교되므로 씨름을 ‘다리의 경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속설에는 ‘씨름’을 ‘씨[種]의 겨룸’으로 보아 남자들끼리의 힘겨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말인 씨름 외에도 각저, 각력, 각희라는 말을 전하고 있으며 고구려벽화 중에 씨름을 묘사한 그림이 각저총인 이유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이 밖에도 중국 문헌 『소씨연의(蘇氏演義)』에 치우희(蚩尤戱) · 각저지희(角觝之戱 · 角抵之戱) · 각희(角戱)가 나오는데, 이는 옛날 전설시대의 치우의 모양이 머리에 뿔(角)이 나서 사람들을 뿔로 들이받으면 겁이 나고 당할 수가 없어 힘을 겨루지 못한 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치우희’란 명칭이 씨름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명칭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25史'와 우리나라 고대 역사서 '환단고기'(桓檀古記) 중 '삼성기' 상·하 편에 '치우천왕'과 관련된 내용이 있는데, 전설적인 무신인 그의 이름을 딴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조선상고사'에 '각저희' '씰흠'이라는 명칭으로 씨름에 관한 일화가 기록된 것입니다.
씨름의 기원은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고 사회를 구성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맹수들을 상대로 싸워야했고 다른 사회집단과도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이 때 격투가 벌어졌을 것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씨름이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이러한 씨름의 흔적을 고구려 벽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구려 고분 각저총의 벽화와 장천 1호분의 벽화가 그 예입니다. 주몽이 고구려의 임금으로 오르기 전 계루부의 족장으로 있을 때 5부족장들의 고추가(古雛加:족장의 존칭) 시합이 있었는데, 당시의 경기종목이 각저 · 궁사(弓射:활쏘기) · 승마(乘馬) · 수박(手搏) 등 다섯 가지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고구려 사람들에게 이 씨름이 널리 행해졌을 것이며 따라서 고구려와 관련있는 고대국가 부여에서도 이 씨름이 행해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씨름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사』에서였습니다.
‘왕은 아첨하는 신하인 배전(裴佺) · 주주(朱柱) 등에게 나랏일을 맡기고 날마다 내수(內豎), 즉 아랫사람들과 더불어 씨름을 하니 위아래의 예절이 없었다.’ -충혜왕 즉위년(1330) 3월조-
이러한 씨름은 조선시대에도 이루어졌습니다. 적어도 이때에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았을 것으로 보는데요. 16세기 무렵부터 단오에 여성은 그네뛰기, 남성은 씨름을 즐겼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씨름 저변은 더욱 넓어졌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군사들에게 씨름을 겨루게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송경지』 『동국세시기』 『경도잡지』, 『해동죽지』 등의 문헌에 씨름에 관한 서술이 다수 등장합니다. 그리고 단원의 풍속도, 기산의 풍속화, 유숙의 대쾌도 등에서는 그림으로 씨름을 전하고 있습니다.
‘순제(順帝) 원년(AD 136)에 부여왕(夫餘王)이 경사에 와서 만나니, 순제는 궁중 뜰에서 연주하는 황문고취와 각저희(角抵戱)을 부여왕께 관람하게 하고 돌려보냈다’ 『후한서』, 「동이열전」
중국의 문헌에서도 우리나라 고대왕조의 씨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기록한 후한서의 원본은 모두 소실되었고, 의전행사로 중국씨름을 부여왕께 보여준 기록에 불과한데요. 그러니까 단지 명칭만 같을 뿐 우리 씨름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러한 씨름과 유사한 형태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수메르레슬링청동술잔(BC 2800)’과 중국 전국시대(BC 475~AD 221)의 ‘청동투조동패’, 그리고 북위시대(AD 386~534)의 산시성 대동출토물에서 발견된 ‘벼루에 새겨진 각저도’는 우리 씨름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백제와 신라에서는 이 씨름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더라도 그저 무예로써 씨름을 즐겼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씨름이라는 것이 현재 여러 나라에 존재합니다. 중국 솨이자오, 일본 스모, 몽골 부흐, 터키 야울귀레쉬, 러시아 삼보, 스위스 슈빙겐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각 나라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씨름의 특징 중 하나는 샅바를 맨다는 것입니다. 한손으로 샅바를 잡고 다른 손으로 허리춤을 잡으며 씨름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다리씨름을 발달해 왔습니다.
“샅바를 돌려 허벅지에 묶은 건강한 사내, 다리기술 현란하고 손기술도 다양하네” 『명암유고』
여기서 샅바를 뜻하는 ‘반건(蟠巾)’이 처음 확인됩니다. 반건은 곧 허벅다리에 거는 샅바를 뜻하는데 줄여서 ‘바’라고 불렀습니다. 원래 씨름의 승부는 한 사람이 상대자가 없을 때까지 겨루는 ‘지워 내기’라는 연승제 방식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기존에 아무 것도 착용하지 않는 민둥씨름이나 허리에 띠를 두르는 띠씨름의 경우 장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경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샅바가 등장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샅바가 생겨나자 상대와 밀착한 상태에서 다양한 기술이 가능했고 손과 다리를 이용한 기술씨름을 가능하게 만드는 ‘샅바씨름’ 내지 ‘바씨름’을 탄생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요즈음 인심과 풍속이 날로 심하게 경박하게 악독해지고 있다. 주인을 죽이는 강상의 변이 끊이지 않아 (…) 끝까지 추문하여 엄히 다스릴 것을 형조에 말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 각저(씨름)나 도박, 답교(다리밟기)등의 일은 사헌부로 하여금 금지하라’
하지만 씨름을 하다가 살인을 저지르는 폐단이 일어나자 조선시대에는 씨름을 두 번에 걸쳐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민간에 퍼져 있던 놀이라 금지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씨름이 스포츠로 체계화된 것은 1927년이며 서구스포츠인 야구, 농구, 축구, 레슬링, 권투가 국내에 유입되면서 우리나라 전통종목의 필요성이 제기돼 당시 전문가들이 모여 샅바씨름경기규칙을 만들어 스포츠로 체계화 시켰습니다. 1927년 제1회 조선씨름대회에서 정규샅바씨름에서는 뚝섬에 사는 신득윤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에서는 동아일보가 씨름과 관련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기사를 게재하자 총독부가 이를 삭제시키는 조치를 취하는 한편, 일본 스모를 학교 교육을 통해 보급하며 씨름을 폄하하려 했으나 씨름에 대한 인기는 사그라질지 몰랐고 1980년대 스포츠 장려정책에 힘입어 프로스포츠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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