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전쟁 포상팔국전쟁
2023. 7. 20. 17:52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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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부 영남에는 진한과 변한이 있었고 경남 남해안에는 포상팔국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포상팔국은 변진지역의 소국들이었지만 『삼국지』 「위지 변진조」에는 그 명단이 없는 수수께끼같은 나라들로 변진 12국과 무슨 관계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바닷가 포구에 있는 8개의 소국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골포국, 칠포국, 고사포국이 금관가야, 아라가야, 신라의 적국이었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있습니다. 고사포국, 사물국, 칠포국, 골포국과 4개 나라가 포상팔국이며 해당 나라들이 김해가야와 함안가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 것입니다.
포상팔국은 세 차례에 걸쳐 전쟁을 벌였습니다. 209년(나해왕 14) 포상팔국이 가라(加羅) 혹은 아라(阿羅)를 침략하였고, 212년(나해왕 17) 보라국·고자국·사물국 등의 8국이 신라 변경을 공략하였으며, 215년(나해왕 20) 골포국 등 3국이 지금의 울산 지역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러한 전쟁 기사는 가야사의 문헌 기록이 부족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풍부한 내용을 지니고 있어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전쟁 시기나 대상, 목적 등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이러한 포상팔국은 전쟁이 있기 전에는 비교적 안정된 삶을 구가한 것으로 보이고 해안가에 있던 나라들인만큼 수산업이 생산기반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포상팔국이 처음 기록상에 등장한 것은 202년에 안라국을 공격했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전쟁에 신라가 개입하였고 이전까지 다소 껄끄러웠던 신라와 가야와의 관계는 이후 평화적인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포상팔국전쟁에 대해 전하는 내용은 워낙 간략하여 그 원인이나 결과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전해지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싸움은 김해가야와 포상팔국간의 전쟁입니다. 205년과 209년에도 포상팔국은 김해가야를 연거푸 공격합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김해가야는 왕자를 보내어 신라에 구원을 요청합니다. 신라는 당시 석씨가 왕위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장군 석우로와 이벌찬 석리음이 6부의 병사를 이끌고 전투에 참여하였고 포상팔국의 장군을 죽이고 6천여명의 포로를 잡습니다. 그런데 3년 뒤인 212년에도 골포국 등이 연합하여 갈화성으로 쳐들어갑니다. 포상팔국의 마지막 총공격이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신라 내해왕이 직접 지휘하여 갈화성 전투에서 신라가 승리하였습니다. 싸움은 김해가야와 함안가야, 그리고 포상팔국간의 전쟁이었지만 주도적으로 전쟁을 이끈 것은 신라였고 신라의 승리로 인해 김해가야는 변진세력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사실 포상팔국전쟁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이 남을 수밖에 없는데요.
‘(내해왕) 6년 봄 2월 가야국이 화친을 요청했다.(201년)… 14년, 가을 7월에 포상의 여덟 나라가 가라(加羅)를 침범하려고 하였으므로 가라 왕자가 와서 구원을 요청하였다. 왕이 태자 우로(于老)와 이벌찬 이음(利音)에게 명하여 6부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구원하여, 여덟 나라의 장군을 공격하여 죽이고 포로가 되었던 6천 명을 빼앗아 돌려주었다.’
이것은 201년의 기사와 209년의 기사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해이사금이 196년에 즉위했으므로 14년은 209년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201년에 화친을 요청한 가야가 함안가야인지 김해가야인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때에 포상팔국이 함께 모의하고 아라국을 침입하므로 아라가 사신을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이사금이 왕손 내음(股音)으로 하여금 가까운 군(郡)과 6부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케 하니, 드디어 팔국병이 패하였다.(202년) (중략) 그 뒤 3년에 골포ㆍ칠포ㆍ고사포의 3국인이 와서 갈화성을 공격하니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구원하여 삼국의 군사가 대패하였다.’ 『삼국사기』
3년 뒤의 전쟁이 205년이라면 이전에 있었던 침입은 202년에 있었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안라국과 포상팔국간의 싸움인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가라를 아라로 잘못 표기한 것은 아니냐는 의문이 따르기도 하지만 기록상으로는 아라이고 그리고 ‘아라국’이라고도 했으니 209년의 ‘가라’가 포상팔국과 싸움을 벌인 것이고 202년과 205년은 안라국과 포상팔국간의 싸움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포상팔국이 아라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은 이후 209년에 ‘가라’에게까지 확대된 것입니다. 한편 변진구야국이라는 나라 대신 ‘가라’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포상팔국전쟁이 일어나던 시기에는 변진구야국이 이미 가라에 통합된 이후에 일어난 전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제10대 나해왕 즉위 17년 임진에 보라국ㆍ고자국【지금의 고성이다.】ㆍ사물국【지금의 사천이다.】등의 팔국이 힘을 합하여 변경을 침략하므로 왕이 태자 이음과 장군 일벌 등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막게 하니, 팔국이 모두 항복하였다. 이때에 물계자의 군공이 으뜸이었다.’ 『삼국유사』
이것은 212년의 이야기로 포상팔국이 신라를 공격하였지만 결국 실패하여 멸망하였다는 기사입니다. 그러니까 201년에 가야와 신라는 화친을 맺었고 202년에 포상팔국의 아라국에 대한 1차공격, 205년에 골포, 칠포, 고사포 등 해상세력이 가야의 갈화성을 공격, 212년에는 다시 포상팔국이 신라로 상대로 전쟁을 벌였으나 멸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간략한 내용의 포상팔국전쟁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점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시 신라가 가야를 구할 만큼 강력한 집단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당시 신라 곁에는 여러 소국들이 있었고 신라의 상황도 이들 소국과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록상의 포사팔국이 변진 12국명단에 없는데 과연 그러한가에 대한 의문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포상팔국의 고사포국이 전기가야이고 후기가야인 고자국이 되었다는 의견도 있는데 포상팔국이 패배한 뒤에 고자국으로 변진12국의 한 나라가 되었다는 점은 여러모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따라서 제10대 나해왕 즉위 17년에 나오는 고자국이 정말 고상팔국이었는지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 포상팔국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만약에 함안과 김해를 중심으로 소국들을 병합해 가고 있었다면 주변 소국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패배하여 포상8국이 김해가야에 통합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중국 측의 기록을 보면 김해가야와 안라국이 변진 12국을 재편해 가고 있을 적에 낙동강 동편에서는 신라를 중심으로 유사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론 그 시기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으나 3세기까지 신라는 대부분의 경북지역을 손에 넣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기에 변진지역에 전기가야연맹이 있었을까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포상팔국이 김해가야와 함안 안라국 싸움을 벌였지만 이들을 도운 다른 가야소국이 나타나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쟁의 배경에는 김해가야나 함안안라국 그리고 포상팔국 간에 국력면에서 별 차이없던 나라들이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할 것입니다.
포상팔국은 경쟁적으로 세력을 뻗치려했던 김해가야와 함안 안라국에 대한 불만이 있었을 것입니다. 김해가야 입장에서는 이들이 있으면 통행이나 교역에 있어 블편함이 있으므로 통합에 대해 필요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자진 항복하는 소국들도 있었으며 이에 대해 반기를 든 나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포상팔국간에 연합은 있었지만 가야연맹은 없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그러한 것은 김해가야와 함안안라국이 신라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면 김해가야와 함안 안라국 그리고 포상팔국 간에 공존이 불가능하게 한 다른 요인이 있지 않았을까하는 점인데요. 이들은 왜와 교역해야 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경쟁은 불가피했을 것입니다. 비단 교역 상대는 왜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낙랑으로 가기 위해 바닷길을 이용해야하는데 포상팔국전쟁은 남해의 해상권을 두고 벌인 전쟁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포상팔국전쟁의 승리로 이전의 국제질서가 해체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고 김해가야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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