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에서 신이 된 유화부인

2023. 8. 27. 19:42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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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부인은 고구려 건국신화의 주인공인 주몽의 어머니로 건국 후 여신으로 추숭되고 있습니다. 유화부인의 이야기는 고구려 건국자의 어머니로 묘사되는데요. 이야기에 따르면 유화는 본래 하백의 딸인데 웅심산 아래에 있는 압록강에 놀러 나갔다가 자칭 천자의 아들이라고 하는 해모수와 통정합니다. 그 뒤 해모수는 혼자 떠나버리고 유화는 중매도 없이 통정을 했다 하여 우발수로 쫓겨났다가 동부여 왕 금와에게 발견됩니다. 금와왕의 궁실에 갇혀 있었는데 햇빛이 몸을 비추어 임신한 뒤 닷 되 크기의 알을 낳습니다. 금와왕이 알을 길가에 버리자 소와 말이 피하고, 들판에 버리자 새가 날개로 덮어주고, 쪼개려고 해도 쪼갤 수가 없어서 다시 유화에게 돌려주었는데 그 안에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옵니다. 이 아이가 바로 주몽이며 성장한 뒤 동부여를 떠나 고구려를 세웠으므로 유화는 시조의 어머니가 됩니다. 

주몽이 알에서 나오는 바 이는 난생설화이며 태양, 즉 해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는 곧 천손사상입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주몽은 하느님을 믿는 부족의 자손인 것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주몽은 매우 활을 잘 쏘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주몽이 말을 하고 활로 파리를 잡았다는 것이나, 일곱 살 때 직접 활과 화살을 만들 줄 알았다는 이야기는 분명 과장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 때에 활을 잘 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분명 그 사람의 능력입니다. 특히 주몽이 하늘의 자손임을 강조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활을 잘 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들 간에 투쟁이 일어나고 무기가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 활은 당시 직접 몸을 부딪치지 않고도 상대에게 살상을 입힐 수 있는 무기였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활을 잘 다루는 사람은 당대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고 신화 속에서 주몽으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다만 고조선의 단군신화에서는 이 활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군신화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활이 부각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재능은 위험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동부여의 금와왕이 왕자들을 대동하고 사냥을 나가기도 했는데 서자이긴 했지만 주몽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몽은 자신의 빼어난 활솜씨로 많은 사냥감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금와왕의 일곱왕자들의 질투를 불러왔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금와왕도 탐탁치않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동부여의 왕자 대소가 주몽은 사람에게 태어난 것이 아니므로 위험하고 그 싹을 잘라버리자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왕의 힘이 있더라도 아무런 이유 없이 주몽을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인 마구간을 보내 말먹이꾼 노릇을 하게 합니다. 유화부인은 아들의 위험을 직감하고 주몽에게 말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유화부인이 마구간에 가서 말에게 채찍을 가하니 그 중에 붉은빛이 도는 한 마리가 놀라 난간을 뛰어넘었습니다. 유화부인을 저 말이 준말이라고 생각했고 주몽은 그 말의 혓바닥에 바늘을 꽂아 먹이를 잘 먹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말은 야위어갔습니다. 한편 다른 말들은 살이 찌고 잘 길러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금와왕이 마구간에 들렀는데 주몽에게 상을 주고자 말을 하나 주었습니다. 이에 혀에 바늘을 꽂아 삐쩍 마르게 된 말을 상으로 받았고 이후 바늘을 뽑아 기르니 예전의 준마처럼 되었습니다. 주몽에게 마구간일은 어떤 의미였을까. 고대사회에서 말은 중요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농업이 잘 발달하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인데요. 돌려짓기기술이나 지력을 증가시키는 거름이 발달하지 않았고 휴경지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것은 중앙집권적 국가에게 더 많은 영토를 필요로 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환경에서 말이 중요시되었던 것이고 고구려와 신라의 건국신화에서 말이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주몽이 큰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두 마리의 비둘기가 날아왔다. 주몽이 말하기를 “이것은 틀림없이 신령스러운 재간을 가진 나의 어머니가 보리 씨를 보내는 것이로다” 하고 활을 당겨 쏘니 화살 하나에 두 마리의 비둘기가 맞아 땅에 떨어졌다. 그 비둘기들의 목구멍을 헤쳐보니 보리 씨가 나왔다. 죽은 듯 누워 있는 비둘기들에게 물을 뿜어주니 곧 살아서 날아갔다.’ 『세종실록』 
고대사회에서 말도 중요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농경도 중요했습니다, 특히 가을에 씨를 뿌려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여름에 수확하는 보리는 중요했습니다. 동부여는 압록강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기후 조건상 벼농사는 거의 안 되고 대신 보리농사를 지었을 것입니다. 고구려가 건국되고 나서 농업의 비중은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오곡종자를 준 유화부인은 농업의 신으로 추숭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몽에게 유화부인이 보리종자를 준 것은 고대국가에서 지도자는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는 즉, 사냥을 잘하는 것은 물론 농업도 잘 다스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엔 연락수단이 되어준 것은 바로 비둘기였습니다. 신화에서는 유화부인과 주몽을 먼 곳에서도 연결해주는 매개체역할을 한 것인데 신화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 고대사회에서도 비둘기가 연락수단으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이규보의 『동명왕편』에는 물의 신 하백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유화로 버드나무꽃여인입니다. 버드나무는 몽고에서 샤먼의 나무로 불린다고 합니다. 둘째는 훤화로 원추리꽃여인입니다. 훤화는 사내아이를 많이 낳는 부인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셋째는 위화로 갈대꽃여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계속 이야기한 유화부인이 버드나무꽃여인이라는 점인데요. 만주족의 창세 신화인 '천궁대전'에 의하면, 세상을 창조한 신은 버드나무 여신 '아부카허허'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만주에는 물과 생명을 상징하는 버드나무를 숭배하는 풍습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해모수는 이들을 웅심연이란 곳에서 만나는데 웅심연은 곰마음연못이란 의미로 곰 숭배는 중국보다는 동북아시아 종족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신앙이기에 고구려 건국신화에도 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해모수는 하백이 사는 궁전으로 가서 그가 천신의 아들임을 말하는데요. 이에 궁금했던 하백은 그와 도술대결을 펼칩니다. 하백은 이후 해모수를 천신의 아들로 인정하고 유화와의 혼례를 치루어 주었는데요. 그런데 이 해모수가 하늘로 혼자 가버립니다. 즉, 신화에서 유화부인에 비해 해모수는 의문부호만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영웅신화가 다 그런지 몰라도 영웅으로 묘사된 추모왕에게는 아버지는 모호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면에서 해모수는 북방에서 내려온 세력이자 이방인으로 하백과의 도술대결은 일종의 무력충돌로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싸움에서 해모수는 하백을 상대로 완전한 승리를 가져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신화에서는 해모수가 모호한 존재로 그려진 것은 아닐까요. 

고구려의 ‘해의 신’. 중국 集安 오회분4호묘의 고구려 벽화로 고구려 건국신화를 보여주고 있다.

‘ 우발수 강가에서 고기를 잡던 강력부추(强力扶鄒)라는 어부가 "요새는 물고기 잡으려고 강에 쳐둔 그물이 이상하게 자주 찢어진다"고 금와왕에게 호소했다. 그래서 금와왕이 쇠로 된 그물을 쳐 두게 했더니 입술이 석 자나 되는 여자가 물고기를 먹다 말고 그물에 걸려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늘어진 입술 때문에 무슨 질문에도 대답을 제대로 못하자 입술을 세 번 칼로 잘라내고 나니 그제서야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구삼국사』
여기서 유화의 입술이 새의 부리처럼 나온 것은 유화가 하늘이 여자임으로 이는 무녀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의 부리가 잘린 것은 그가 무녀가 아닌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화부인이 신화 속에서 보이는 능력은 많습니다.  물가에 자라는 버드나무가 이름이며 강의 신인 하백의 딸이라는 점에서는 물과 생명의 신, 주몽이 명마를 미리 준비하여 훗날에 대비하도록 한 장면에서는 유목민족의 신, 오곡의 종자를 비둘기편에 주몽에게 전해준 대목에서는 농경민족의 신으로 묘사됩니다.  유화부인은 부여땅에서 죽었지만 고구려에게 신으로 모셔졌는데요. 아직 가부장적인 색채가 조선시대에 비해 옅었던 고대사회, 유화부인은 여성임에도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을 있게 한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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