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천왕이 장발미녀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린 이유
2023. 9. 5. 20:05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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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천왕은 고구려 제12대 왕(재위 248∼270)으로 . 휘(諱) 연불(然弗:延弗), 동천왕(東川王)의 맏아들입니다. 고구려에서는 12대 중천왕(재위 248~270)이 즉위하며 역모에 연루된 중천왕의 친동생 예물과 사구를 참수했습니다. 고구려는 연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의 다섯 부족이 연합으로 국가를 통치했는데 중천왕이 연노부 출신 연씨를 왕비로 책봉했습니다. 중천왕 친동생 둘이 왕비 책봉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급기야 소수 부족 비류나족과 합세해 모반을 획책하자 처형한 것입니다.
중천왕은 외모가 준수하고 지혜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연나부의 여인을 왕비로 맞아 들였습니다. 특히 당시 국상의 자리는 명림어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혼인은 연나부를 의식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명림어수는 본래는 우태(于台) 벼슬을 지내다가 230년에 동천왕 때에 최고위직인 국상(國相) 고우루가 죽자 그의 뒤를 이어 국상이 되었습니다. 명림답부와 성씨가 같은 탓에 그의 친족이나 후손이 아니냐는 의견이 존재합니다.
259년 위나라 장수 울지해(尉遲楷)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일명 양맥전투라 불리는 것입니다.
‘다시 병사를 이끌어 양맥(梁貊) 골짜기에서 싸워, 또 이겨 3천여 명을 베거나 사로잡았다.’ 『삼국사기』 「동천왕」
1차 양맥전투는 중천왕 이전인 동천왕 대에 있던 일로 이 때 대승을 거두었으나 후에 비류수전투로 인해 고구려는 건국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비류수전투에서 고구려는 대패하고 수도까지 함락당한 것입니다.
‘12년(서기 259) 겨울 12월, 위나라 장수 울지해(尉遲楷)가 병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왔다. 임금이 정예 기병 5천 명을 선발하여 양맥(梁貊)의 골짜기에서 싸워 이기고, 8천여 명의 목을 베었다.’ 『삼국사기』 「동천왕」
중천왕 본인이 친히 기병 5,000명을 이끌고 태자하(太子河) 상류로 추정되는 양맥(梁貊)에서 친정해 이들을 격파하고 8,000여 명의 수급을 베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선왕인 아버지 동천왕이 위나라 장수 관구검에게 침략을 당한 것을 복수한 셈입니다. 아마 중천왕은 동천왕이 겪었던 패배에 교훈을 얻고 단단한 대비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위나라의 침략을 겪기 8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중천왕에게는 왕후가 있었으나 그는 왕후보다 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의 머리는 9척, 3미터의 길이를 가졌으며 따라서 장발미녀라고도 했는데 이 여자는 관나부출신이었습니다. 고구려 5부 중의 하나로 관나부(貫那部)는 고구려 초기에는 자체적으로 주변 소국을 정벌하고 왕위 계승에 영향을 미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관나부와 관련한 가장 이른 기록은 태조왕이 관나부 패자 달가를 보내 조나(藻那)를 정벌해 그 왕을 포로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나부의 우태 미유가 차대왕의 왕위 계승을 도우고 그 공으로 패자 관등에 올라 좌보가 되었다고 하니 그간 관노부는 고구려 조정에서 그 영향력이 컸습니다. 동천왕의 어머니가 고구려의 관노부 주통촌 출신입니다. 그에 비해 동천왕 이전의 왕인 고국천왕과 산상왕의 왕비는 절노부(絶奴部 혹은 연나부)의 우소(于素)의 딸인 왕후 우씨였습니다. 여하튼 동천왕이 사랑한 여인은 관나부 출신의 장발미녀였으나 그에게는 첫째 부인인 연씨 왕후가 있었습니다. 아마 이 연씨 왕후도 우씨 왕후가 추천한 인물일 것이며 따라서 연나부일 것입니다. 당시 연나부의 세력은 강했습니다. 그리고 중천왕이 즉위할 적에 예물과 사구의 사건을 잠재운 것은 연씨 왕후와 국상을 중심으로 한 연나부 세력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국상 명림어수는 중천왕 재위 3년에 중외(中外)의 병마사(兵馬事)를 겸임하여 병권(兵權)까지 거머쥐게 되며 연나부는 중천왕 시기 실권을 거머쥐었을 것입니다. 중천왕이 연씨왕후와 결혼했던 것은 그만큼 집안의 세력이 컸기 때문이고 그에 비해 세력이 약하면 왕후를 배출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물론 왕이라 하더라도 부인은 더 얻을 수 있었습니다. 중천왕은 관나부의 장발미녀를 둘째 부인인 소후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중천왕은 연씨 왕후의 방해로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중천왕은 장발미녀를 사랑했습니다. 따라서 그에 따른 연씨 왕후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연씨 왕후는 중천왕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들으니 지금 위(魏)나라에서는 천금을 주고 장발(長髮)을 구한다 하옵니다. 전일에 선대왕(東川王)이 위나라에 예의를 갖추지 않은 관계로 마침내 위나라 군대에 화를 입어 사직을 거의 잃을 뻔하였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위나라에 장발미녀를 바친다면 더 이상의 외침은 없을 것입니다.’
장발미녀는 관나부인을 말하는 것으로 선대왕이 겪었던 위나라의 침입은 바로 유주 자사 관구검이 고구려 환도성을 점령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중천왕은 관나 부인을 사랑했기에 왕후 연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관나 부인에게도 들어갔습니다. 관나부인은 왕후가 자신을 모함하여 위나라로 보내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에 더 큰 화가 미칠까 두려워 중천왕에게 하소연합니다.
‘왕후께서는 저를 만나기만 하면 ‘시골 계집 주제에 언감생심 궁궐에 머물 생각을 하느냐? 다시 네가 살던 시골로 돌아가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협박하곤 합니다. 만약 대왕이 멀리 출타하게 되면 왕후가 저를 해치려 들 것입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청에 대해 중천왕은 그저 여인들의 질투쯤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장발미녀는 관나부(관노부) 출신이었는데 관나부 세력은 차대왕이 연나부 조의 명림답부에 의해 척살 당하자 이 때를 기점을 관나부의 세력도 약화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력이 약해진 관나부는 주통촌에 모여 살았을 것이며 일명 주통촌의 여인이라 불린 소후가 궁궐에 들어가 태자 교체를 낳자 관나부는 다시 한 번 세력강화를 꿈꾸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체가 동천왕이 되었지만 여전히 연나부의 세력은 강했습니다. 연나부 출신의 우씨 왕후가 왕태후에 오른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씨 왕태후가 죽은 이후에 관나부에서는 동천왕의 모후인 소후를 통해 여인을 하나 궁궐로 들여보내니 그가 바로 장발미녀라는 것입니다.
‘왕이 기구(箕丘)에 전렵을 나갔다가 돌아오니 관나부인이 가죽 부대(革囊)를 가지고 나와 맞으면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하기를 “왕후가 나를 여기에 집어넣어 바다에 버리려고 하니 대왕께서 나에게 미명(微命・가는 목숨)을 내리어 집에 돌아가게 하여 주시면 언감히 더 좌우(左右)에서 모시기를 바라겠나이까?” 하였다. 왕이 그 거짓임을 들어 알고 노하여 말하기를, “네가 (정말) 바다에 들어가려고 하는구나” 하고 사람을 시켜 바다에 던졌다.’ 『삼국사기』
하지만 연씨 왕후가 가죽주머니에 장발미녀를 넣어 바다에 넣어 버리려고 했다면, 가죽주머니는 연씨왕후가 갖고 있어야 했지만 그것을 직접 장발미녀가 들고 온 것을 보고 중천왕이 장발미녀가 거짓말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장발미녀는 서해바다에 던져졌습니다. 하지만 굳이 사람을 바다에 던졌어야 하는 물음에 중천왕의 속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연나부의 세력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장발미녀를 희생시킨 것인지도 모릅니다.
중국 문헌자료인 『삼국지』에는 부여의 풍습을 소개하는 부분에 “남녀 간에 음란한 짓을 하거나 여자가 투기하면 모두 죽였는데, 투기를 더욱 미워하여 죽이고 나서도 시체를 매장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고구려는 부여와 언어, 풍속 등 여러 면에서 흡사한 점이 많다고 하였으므로 고구려에서도 부인의 질투에 대한 규제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관나부인의 사례는 고구려에서 투기로 인해 처벌된 실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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