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없는 논쟁의 숫자 기원전 2333년

2023. 9. 7. 11:15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선사시대부터 고조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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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를 익히 알려져 있는데요. 이 노래 처음 등장하는 위인은 바로 단군입니다. 1절부터 5절까지 다 외우지 못하더라도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로 시작하는 노래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군에 대해 실존했는지 의문이 따르기도 합니다. 
일단 단군이라고 하면 단군신화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신화는 한 나라 혹은 한 민족으로부터 전승되어 오는 예로부터 섬기는 신을 둘러싼 이야기를 뜻하는데요. 신 자체가 진실을 규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화의 주인공으로 인식되는 단군도 허구의 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화들이 사람들이 즐기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이냐 하면 꼭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신화는 허구가 아닌, 해당 지역과 문화권 혹은 역사 공동체 등이 체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군신화는 어떠할까.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까지는 단군을 실존 인물 즉 단군사화(檀君史話)로 교육하였습니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그랬다는 것입니다. 『동국사략』에서는 ‘단군의 이름은 왕검(王儉)이니 우리 동방에 처음으로 국가를 세운 왕이다. 할아버지는 환인(桓因)이며, 아버지 환웅(桓雄)이 태백산(太白山, 영변 묘향산) 박달나무 밑에서 왕을 낳았는데 임금으로서의 덕(德)을 지니고 있어 나라 사람이 추대하여 왕으로 삼았으니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4239년 [광무(光武) 10년(1906)으로부터 헤아려 내려오면 이와 같다.]이다.’이라 하였고 1908년 오성근과 선교사 헐버트가 한국인의 문명화와 계몽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인 『대한역사』에서는 ‘환인(桓因)이라 하는 자가 있었는데 아들 환웅(桓雄)을 낳고, 환웅이 태백산(太白山, 지금의 영변 묘향산) 박달나무(檀木) 아래에 집을 짓고 왕검(王儉)을 낳았다.’라고 하였으며 이 외에도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럼 현대교과서는 어떠할까요.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것은 고조선이었다. 고조선은 단군 왕검(檀君王儉)에 의하여 건국되었다고 한다(B.C. 2333). 단군 왕검은 당시 지배자의 칭호였다”(고등학교, 국사 국정교과서, 1990년대)
“족장 사회에서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것은 고조선이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 단군왕검은 당시 지배자의 칭호였다.”(고등학교, 국사 국정교과서, 2002년)
(“단군 이야기에 따르면, 천신 환인의 아들 환웅이 비와 구름, 바람을 주관하는 관리와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를 세우고, 곰이 변한 여자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으며,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고등학교, 한국사 검정교과서, 천재교육, 2011년)
 “삼국유사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고등학교, 한국사 검정교과서, 미래엔, 2014년)
“삼국유사에는 기원전 24세기에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전하고 있다”(고등학교, 한국사 검정교과서, 금성출판사, 2014년)
그러니까 교과서에 따라 ‘~되었다고 한다.’, ‘건국하였다.’, ‘건국하였다고 한다.’, ‘고조선이 성립하였다.’ ‘건국되었다.’등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다 비슷한 표현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확신과 자신 없는 말투가 교과서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그러다가 2020년에 발행된 교과서를 보면 청동기 연대를 근거로 고조선 건국을 연계해 설명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집니다.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만주지역에서부터 청동기문화가 시작되었다.~~~이러한 변화가 랴오닝과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서 나타나면서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성립하였다.”(고등학교 한국사 검정교과서, 비상교육, 2020년)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고조선의 건국연대 기원전 2333년의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이것은 『삼국유사』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였다 『경(經)』에는 무엽산(無葉山)이라 하고, 또한 백악(白岳)이라고도 하니 백주의 땅에 있다. 혹은 개성(開城)의 동쪽에 있다고 하니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 그것이다.. 나라를 개창하여 조선(朝鮮)이라 했으니 고[高-요임금-]와 같은 시대이다.’ 『삼국유사』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중국의 전설상에 등장하는 요(堯) 임금과 같은 때라고 한 구절이 눈에 띕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문화가 중국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았으며 중국과 동등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일연의 생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일연이 연대를 올려잡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여기에 더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당(唐)의 고(高)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庚寅)으로, 평양성(平壤城) 지금의 서경(西京)이다.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하였다.’ 『삼국유사』
이 부분에서 일연은 주석을 달았는데 ‘당의 요(堯)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戊辰)인 즉 50년은 정사(丁巳)요 경인이 아니다. 사실이 아닐까 의심스럽다.’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일연은 기록을 참조하면서 ‘당요 즉위 50년’이라고 정확한 연대를 적은 것입니다. 즉 일연은 삼국유사를 구성함에 있어 다른 문헌을 참조할 적에 그냥 적어 넣은 것이 아니라 의심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 연도를 계산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삼국유사』의 정사년과 경인년을 연도로 환산하면 기원전 2333년은 아니라고 합니다. 일연이 본 정사년은 기원전 2284년이고 일연이 당요 50년이라고 한 경인년은 기원전 2311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기원전 2333년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바로 서거정(1420~1488)이 편찬한 『동국통감』은 이때까지 따라오던 요임금 개국 무진년설을 버리고 갑진년설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기록에는 이전까지 갑진년에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거정은 『동국통감』에 이렇게 썼습니다.
 ‘지금 살피건대, 요가 일어난 것은 상원 갑자 갑진의 일이며 단군이 일어난 것은 그 후 25년 무진의 일이니, 즉 요와 동시에 세워졌다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서거정은 동국통감에 앞서 1476년에 『삼국사절요』를 편찬했는데 이때는 요임금과 동시에 나라를 세웠고 그때가 무진년이라고 써놓았으나 그랬던 것이 8년 만에 자아 비판하듯이 요와 동시에 나라를 세웠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서거정의 이러한 지적의 근거는 알 수 없는 상황인데요. 고조선이 중국의 요(堯)임금 때 고조선이 요(堯)임금시대에 건국되었다는 기록은 『고기(古記)』와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의 두 문헌(文獻)이 일치하지만 요(堯)임금도 전설상 인물로서 그가 왕위에 오른 연대도 실재한 인물이었는지도 요(堯)임금의 즉위 연대를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즉 기원전 2333년이라는 근거는 찾기 힘듭니다. 조선의 유학자가 별다른 고증 없이 기원전 2333년을 고조선 건국연대를 썼는데 현대인들도 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강단사학에서는 고조선의 실체가 확인되는 기원전 7~6세기를 ‘초기 고조선’이라 규정한 다음, 단군조선이나 단군신화는 ‘만들어진’ 신화이기 때문에 실재한 역사로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반면 다른 학자는 우리나라 청동기는 기원전 2500년 이전으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청동기 초기인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보았습니다. 한편 ‘고조선은 철기 시대인 기원전 4세기경 중국의 연(燕)과 겨룰 정도로 성장하였다.’라고 고등학교 교과서에 서술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이전에 고조선이란 나라는 세워졌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역사학자는 우리더러 알아서 건국시기를 생각하라는 것 같은데요. 그럼 우리가 이제껏 배워왔던 기원전 2333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갑론을박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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