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황제국이었나
2023. 9. 24. 07:51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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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이었습니다. 북한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뉴스를 보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2007년 6월 7일 고구려는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황제국이었다고 보도함으로써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은 중국과의 외교관계 등을 고려해 한반도의 역사왜곡을 담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며 당시 북한도 중국의 동북공정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중앙통신은 그러나 '고구려의 왕호에 반영된 황제적 지위' 제목의 기사에서 "조선 역사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였던 고구려는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황제국이었다"며 "고구려의 건국자인 동명왕은 자기를 천자(하늘의 아들)라고 자칭했고 실제로 이 시기의 금석문에도 동명왕을 '천제의 아들', '황천의 아들', '해와 달의 아들'로 표현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 통신은 "동명왕을 계승한 고구려의 역대 통치자들도 다 그와 같은 지위에 있었다"며 "고구려에서는 평시에 고구려 통치자를 뭇 왕들을 거느린 최고통치자라는 뜻에서 대(태)왕이라고 했고 '성상', '제(황제)'라고도 불렀다"고 지적했습니다.
‘위궁의 현손의 아들을 일러 소열제라 한다.’ 『수서』
‘위궁의 현손이 을불리이며, 을불리의 아들이 소이다.’ 『위서』
‘위궁의 현손인 을불리가 죽으니 그 아들 소가 대를 이어 즉위하다.’ 『북사』
위궁은 산상왕이며 을불리는 미천왕입니다. 그럼 소는 고국원왕을 뜻하는 말이 됩니다. 그럼 당시 고구려에서 이러한 ‘제(帝)’의 명칭을 사용할 수 있었을까 궁금증이 생기게 됩니다. 물론 이전에 우리나라 고대 왕 중에 제(帝)가 붙었던 것은 없던 것은 아닙니다.
‘국사의 고구려 본기에는 시조 동명성제의 성은 고씨이며 이름은 주몽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동명성제는 바로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입니다. 그런데 이 기록을 담은 것이 바로 『삼국유사』라는 점인데요. 기록에서 국사는 바로 『삼국사기』입니다. 그러니까 『삼국유사』를 저술하고 『삼국사기』를 참고하는 과정에서 시조 동명성왕을 시조 동명성제라고 옮겨왔을 수 있으며 혹은 실수나 착각을 해서 동명성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본래 동명성제라 불리던 것이었는데 『삼국사기』는 저술할 당시에는 사대주의에 입각해서 본래 동명성제를 동명성왕이라고 쓴 것을 『삼국유사』를 찬술하면서 바로 잡은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백제의 시조의 이름은 온조(溫祚)이니, 동명성제(東明聖帝)가 그 아버지였으며, 그 형 유리(類利)가 와서 왕위를 이으니, 마음이 편하지 못할 것 같아 남쪽으로 건너갔도다. 동모(同母) 형 은조(殷祚)와 함께 남쪽으로 달아나 나라를 세웠는데, 은조는 왕위에 오른 지 5개월 만에 죽었다.’ 『제왕운기』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왕한테는 제(帝)를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동명왕이 고구려를 건국하였다라는 특수적인 위치 때문에 붙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 『삼국사기』에서는 동명성왕이라고 하여 제(帝)자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대 고구려인들에게도 그랬던 것으로 보입니다. 「광개토대왕비문」에는 추모왕이라고 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마든 모두루묘지에서도 고구려 시조에 대해 언급하되 ‘하백의 손자이며 일월의 아들인 추모성왕은 본디 북부여 출신이다.’라고 하였으니 디 비문에서 말한 것은 추모왕과 추모성왕입니다. 그러니까 고구려 역대 왕명 끝에는 제(帝)가 붙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역사서들도 역시 고구려 왕들에 대해 ‘왕’자도 붙이지 않았습니다. 시조 동명왕에 대해서만 ‘동명’이라는 묘호를 썼고 그것도 고구려전이 아닌 부여전에서의 이야기입니다. 고구려를 세운 이는 주몽이라 표현할 때에는 주몽이라 하였지 왕은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중국의 역사서가 오직 고국원왕에게만 소열제라고 한 것은 의외의 일입니다.
고국원왕(故國原王)은 국강상왕(國罡上王)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사유(斯由) 혹은 쇠(釗)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간단히 말하면 『수서』를 쓴 사람의 착오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다른 중국사서에서도 고국원왕에 대해 소열제라고 하지 않지만 유독 『수서』에서만 이러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은 착각에서 비롯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과연 북한의 주장처럼 고구려는 황제국이었을까. 앞에서 이야기했다시피 북한은 ‘소열제’라 부른 것을 고구려가 황제국이었다는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서』를 쓴 사람의 착오로 생긴 일이라면 고구려가 황제국이었다는 북한의 주장의 그거를 하나 잃는 셈입니다.
그럼 고구려는 황제 대신 최고 통치권자에게 어떠한 칭호를 사용했을까. 고구려는 『삼국사기』에서는 성왕(聖王), 대왕(大王), 왕(王)이란 칭호만 보일 뿐 고구려에서 황제를 칭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사실 이러한 황제란 말을 고구려인들이 사용하려고 시도라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고구려 초기에 적국이었던 한나라 군주의 칭호인 제(帝)가 대단한 것이라고 여겼다면, 다른 관직명도 그들의 것을 받아들여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우보, 좌보, 국상, 우태, 대형, 조의, 선인 등 중원국가에서 볼 수 없는 관직명을 사용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든 고구려는 황제를 칭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선 『삼국지』의 주(註)에 오나라 손권이 고구려 동천왕을 선우(單于)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선우라는 것은 본래 북방 유목국가에서 사용하는 근주의 칭호입니다. 고구려 왕이 선우를 자칭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고구려가 오나라에 비해 북쪽에 있었고 오나라 입장에서는 그들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인해 고구려왕에게 선우라는 칭호를 부여한 것입니다.
고구려에서는 가한신(可汗神)을 섬겼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가한은 고대 우리 겨레가 족장 및 수장의 칭호로 사용하던 가(加), 한(旱), 간(干) 등에서 연유한 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에서 가한을 최고 통치자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한 적은 없으며 이에 비해 일찌감치 사용되었을 말로 왕을 꼽을 수 있습니다. 고조선도 기원전 4세기에 중원의 연나라 등과 함께 사용하였음이 『위략』 등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조선에서는 이미 단군왕검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미 자체적으로 최고통치자의 의미를 가진 단군이라는 말에 왕이라는 말을 붙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원의 국가에서 황제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고구려도 최고통치자의 칭호에 힘을 주게 되었는데요. 바로 대왕입니다. 대왕이란 칭호는 고구려 6대 태조대왕부터 차대왕, 신대왕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릉비문」에는 호태왕이란 칭호가 찾을 수 있습니다. 대왕보다 큰 의미를 가진 태왕이란 칭호에다 아름답게 수식하려는 의미에서 좋을 호자를 덧붙인 것입니다. 이는 고구려가 제국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럼 여기서 더 나아가 고구려가 제국이었을까 하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제국은 황제가 국가원수인 군주제 국가 또는 다른 민족이나 국가를 통치(지배)하는 국가를 칭한다면 고구려는 이에 속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태왕이라는 칭호에 함의된 제국의 지배자로서의 위상이 주목하고 있는데요. 전성기 시절 만주와 한반도 일대의 패권을 행사하고 동아시아의 주요 세력으로 군림하는 등 한국사에서 강대국, 제국이라는 단어에 가장 근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예맥족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역사를 시작하였지만, 정복국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고구려는 영토 내부에 한족을 비롯하여 말갈족, 거란족, 한족과 예족 등을 포함하게 되었으며, 또 영토 외곽에는 말갈족을 비롯한 다수의 주변 세력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국으로서의 고구려를 그려볼 수 있으나 실제로는 고구려는 제국과 왕국 그 사이에 어딘가에 있던 나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700여 년에 이르는 기간을 가진 고구려에 대해 제국이다라고 당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저자들이 고구려와 제국을 같이 조합하여 만든 책제목을 정하고 있는데요. 사람들에 따라서 고구려는 제국으로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진실을 전해야 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좀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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