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벽화에 단군신화가 있다고
2023. 9. 22. 07:50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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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은 쑥과 마늘을 먹으며 삼칠일을 참은 끝에 여자의 몸을 얻었지만 호랑이는 참지 못해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 환웅(천신의 아들)이 잠시 사람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하고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이라고 불렀다.’
이 기록은 『삼국유사』에 실린 고조선 건국의 관한 이야기입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 설화는 고조선 건국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곰을 숭상하는 부족(이하 곰족)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이하 호랑이족)의 경쟁이 벌어져 곰족이 승리했다는 것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한민족을 상징하는 동물은 곰이 아니라 호랑이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어느 학자는 "고대 동북아에는 곰을 숭상하는 부족이 많았는데 곰족은 고조선의 해체와 함께 흩어졌을 것‘이라고 하며 "이후 세력이 약화된 곰족이 시베리아나 등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단군신화는 우리나라 국가 대대로 어떻게 전해져왔을까 하는 것도 궁금할 수 있는데요. 어느 논문에 따르면 이러한 이야기는 고구려인들은 유화부인(주몽의 어머니)과 주몽, 곰을 숭배하는 등 당시에도 단군신화가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합니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朱蒙·동명왕)이 고조선을 세운 단군의 아들이었다는 기록은 일연(一然)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만 나오는데요. 고구려의 주몽이 부여에서 온 인물임은 학계에서 주장되어온 것이지만 『삼국유사』에서는 주몽을 단군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즉 고구려 시조 주몽이 아버지인 해모수는 단군과 동일한 인물로 보고 고구려는 단군조선을 승계한 나라로 보는 것입니다.
고구려에서 4-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각저총과 장천1호분 등 고구려 고분의 벽화에 곰(熊.단군신화)과 관련된 그림이 많은 것과 중국 사서에 고구려인들이 주몽과 유화부인, 곰을 숭배했다는 기록은 고구려와 고조선의 연관성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와 더불어 고조선과 고구려의 연관성을 말하는 증거로 건국신화를 들고 있습니다. 단군신화와 고구려 건국신화의 구조가 똑같은 것도 고구려가 단군 조선을 계승했다는 것이며 하늘 족속과 땅 족속의 협력을 통한 제3의 세력이 탄생하는 것 그리고 단군신화의 풍백, 우사, 운사가 주몽신화의 오이, 마리, 협보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학자는 고조선과 고구려의 계승 관계를 고고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통호 만발발자 유적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만발발자 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명대까지 총 6기의 문화권이 층층이 쌓여 있는 독특한 유적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발견되는 고고학적 자료 중에 고조선의 물질문화로 알려진 세형동검문화 요소와 방단석광적석묘 같은 고구려 초기 물질문화 요소가 복합적으로 나타나 둘 사이의 연관 짓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총 6기의 문화권이 층층이 쌓여 있으며 3기와 4기 문화층에서 특히, 무덤 양식인 묘제와 관련해 고조선의 대개석묘(고인돌)에서 고구려의 적석총으로 이행해가는 과도기에 해당하는 ‘적석시설을 한 고인돌’ 단계인 대개석적석묘(고인돌의 덮개돌을 한 적석묘)와 무기단석광적석묘가 발견되었습니다. 무기단석광적석묘는 ‘돌무지무덤’으로 불리는 고구려 적석총의 원형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구려 적석총은 중국 동북 여타지역과 구별되는 특징적인 무덤 형식으로, 그 기원에 대해 명백히 밝혀진 바 없으니 이와 관련하여 무기단석광적석묘를 주목하는 것입니다. 주거지에는 구들의 초기 형태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무순 연화보 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연화보 유적은 고조선 후기 유적으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고고학적 자료이고, 구들은 고구려 주거시설로 계승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기록으로는 『후한서後漢書』 ‘예濊조’에 “예, 옥저, 구려는 본래 모두 조선의 땅이다”라고 했고, 『구당서舊唐書』 ‘열전’에는 당이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을 ‘조선왕朝鮮王’으로 책봉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1922년 요동지역인 하남성 낙양에서 발견된 연개소문의 셋째아들인 연남산의 묘지명인 ‘남산요묘지명男産療墓誌銘’에는 “군의 휘는 남산이니 요동 조선인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고구려 말 귀족 출신 무장으로 당에 투항한 고자(高慈, 665~697)의 묘지명인 ‘고자묘지명高慈墓誌銘’에도 그를 ‘조선인’이라고 기록하기도 했는데요. 이에 더하여 만발발자 유적이 있는 통화 지역은 고조선의 핵심지역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고구려 초기 유적이 집중되어있는 환인과 집안에 가깝습니다. 고조선이 연, 진, 한과 각축을 벌이며 점차 세력을 잃는 되는 정치적 격변기에 고조선 외곽에 있던 지역 집단이 독자적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당시 고구려를 고조선을 계승했다고 인식한 결과로 이러한 기록이 쓰여진 것은 걸까요. 아니면 중국인 입장에서 고구려가 위치했던 지역에 대해 그저 조선이라고 인식했던 것은 아닐까요.
고조선과 고구려의 연관성에 대해서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고구려 벽화입니다. 일단 장천 1호분에서는 나무 아래 굴속에 곰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으며 하부의 수렵도는 사슴·호랑이·멧돼지 등을 사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마 이 호랑이는 굴에서 인간이 되기를 기도하다가 뛰쳐나온 것은 아니었을까요. 또한 각저총에도 단군신화가 표현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고구려 각저총 벽화에 씨름하는 두 남자 중 한 명의 이목구비를 보면 코가 높고 쌍꺼풀이 짙어 고구려인으로 보기 어렵고, 중앙아시아 출신 서역인으로 추정하여 더욱 인상 깊은데요. 그 와중에 왼쪽 나무 아래 곰과 호랑이가 등을 돌리고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것은 벽화로만 남아있는 것은 아닙니다. 산동성에는 무씨사석실 화상석에도 단군신화를 묘사해놓은 그림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첫째 단에는 환웅이 하강하는 모습, 둘째 단에서는 한웅이 비, 구름, 바람을 관장하는 우사, 운사, 풍사를 대동하고 지상을 다스리는 모습, 셋째 단에서는 단군의 탄생과 넷째 단에서는 단군이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이념을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는데요. 중국 산동성 가상현에 있는 무씨사석실의 단군신화를 그린 화상석 연구를 통해 중국이 단군신화까지도 중국의 것으로 해석한다고 하니 분명한 것은 단군신화가 한반도와 만주는 물론 중국 본토까지 알려진 신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93년 평양에서 의문의 유골 조각 86개와 금동 장식품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 측은 해당 유골을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성종 3년 단군이 아사달산에 들어가 화하여 신이 되었다"라는 부분이 등장합니다. 특히 북한이 단군릉으로 주장하는 무덤의 동북쪽에 아사달산(현 대박산)이 존재하는 만큼, 북한은 유골의 주인이 단군왕검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 논란이 쏟아진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 중에는 발견 당시 유골의 무덤 양식과 출도된 금동장식품이 고구려 방식이라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은 단군릉이 고구려 시대에 개축됐기 때문이라고 반박하며 정확한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고구려가 단군릉을 개축했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고구려는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여러 주민들을 모았을 것이며 그 중에는 자신들을 고조선의 유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고구려는 이들을 통치하기 위해 고구려가 고조선을 계승한 국가라는 것이 필요했고 그 상징적인 조처가 바로 단군릉 개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보다 고구려가 247년에 오늘의 평양을 ‘선인왕검의 고택’이라며 임시수도로 정한 것이나 427년에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기면서 단군조선의 중심지로 수도를 정한다는 것을 하나의 명분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데요. 고구려가 처음부터 고조선을 계승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아니면 고조선 주민들을 규합하는 과정에서 생긴 국가정책인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고구려에는 ‘다물’이란 용어가 있어 이는 ‘옛 땅을 회복한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어쩌면 고구려가 차지한 땅은 옛 고조선이 차지했던 영역과 비슷하다면 이러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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