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은 영웅인가 고구려 멸망의 원인인가
2023. 9. 19. 11:41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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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멸망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연개소문의 집권입니다. 고대왕권국가에서 일개 신하가 모든 권력을 지고 휘두른다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은 인심을 잃을 수도 있는데요. 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연개소문은 인심을 잃어 이후에 고구려멸망을 자초했다고 합니다. 연개소문이 행차를 할 때에는 호위병들로 하여금 엄중하게 대오를 이루어 다녔으며 길을 지날 때에는 행차를 큰 소리로 알리게 하였는데 이럴 때면 길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구덩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숨었다고 합니다.
연개소문의 정변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 중에 안시성주가 있었습니다. 일설에는 성주가 양만춘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연개소문은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은 안시성주를 공격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인정해주었다고 합니다. 다만 647년에 오골성과 안시성에서 30,000명의 병력이 동원되어 안시성이 지휘를 받는 것을 보면 안시성의 반발은 과장되었거나 642년 당시에는 실제로 있었으나 고당 전쟁 시기 이전까지 어떻게든 봉합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여러 전투 즉 대전쟁 때 명확히 알 수 있는 신성과 국내성의 지원군 40,000명을 포함, 여러 전투에서 많은 병력을 동원하였는데 민심이야 어찌되었든 연개소문의 국가장악력은 상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개소문의 쿠데타에 의한 정권장악이 광연 중앙정부에만 국한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요. 고구려가 수, 당 전투에서 병력을 지원하여 그들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은 연개소문의 집권에 의한 통제가 발휘한 것인지 아니면 연개소문이 지방 세력마저 포섭하지 못했지만 중국통일왕조의 침입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고구려 백성과 성주들이 뭉쳤기 때문인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유교와 불교는 번성하나 도교가 없다.’
연개소문은 보장왕에게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에 도교를 전파해 줄 것을 요구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고구려 내에서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보장왕 9년 (650) 6월 반룡사의 보덕화상은 나라에서 도교만 받들고 불교를 믿지 않는다며 남쪽의 완산 고대산으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교탄압은 후대에 안좋게 기술되었습니다. 이후의 왕조들이 불교국가였기 때문인데요. 그리고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서도 수나라 장수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위해 연개소문으로 환생한 것이라고 기술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당강경책을 펼친 연개소문이 당나라로부터 도교의 수입을 청한 것입니다. 그가 대당강경책을 변함없이 사용했다는 것에 의문이 드는데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연개소문입장에서나 당태종 입장에서나 언제든지 서로를 침략하거나 싸움을 할 때를 기다렸습니다.
한편 연개소문은 당나라에 대한 두려움을 잃어서 고구려멸망을 자초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중국의 침략은 연개소문 집권이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출현했다는 것이 수당 입장에서는 고구려 정벌의 명분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연개소문의 대외강경책이 고구려 멸망의 화를 불렀다는 것인데요. 사실 영류왕은 당나라에 화친정책을 펼치고 있었고 연개소문은 당나라와 대립했습니다. 만약 연개소문이 대당외교를 화친정책을 어땠을까요. 하지만 생각해 보았을 때 당시 고구려는 당나라와 화친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단 권력을 보장왕이 쥐고 있었으면 모를까 연개소문이 쥐고 있었고 그가 정변을 일으킨 이유 중 여러 설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대당외교문제입니다. 대당강경파인 연개소문이 온건파인 영류왕을 외교노선에서 갈등을 빚어 정변을 일으켰다면 애초에 연개소문에게 대당화친정책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개소문의 대당강경책은 너무 일변도로 갔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때로는 당나라의 비위를 맞추어 가며 외교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런데 만약 연개소문을 지지했던 세력들이 대당강경론자들이라면 그것 역시 연개소문도 외교정책에 변화를 주는 것이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당태종이 고구려를 상대로 군사를 일으키면서 다음과 같은 명분을 내세웁니다.
‘근본을 버리고 곁가지를 취하며. 높은 데를 버리고 낮은 데를 취하며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취하는 이 세 가지는 모두 좋지 않은 것인데 고구려를 치는 것이 이러함을 나도 안다. 하지만 (연)개소문은 임금은 시해하고 대신들을 도륙했으며 한 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목을 늘이고 구원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명분을 내건 당태종 역시 ‘현무문의 변’을 일으킨 당사자라는 점입니다. 이 사건은 이세민이 황위계승을 둘러싸고 태자 이건성을 죽인 일입니다. 적어도 당태종은 고구려 침략의 명분으로 연개소문이 임금을 시해했다고 말하여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당나라 시조인 고조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명실은 서로 상부해야 한다. 고구려는 수에 칭신했지만 끝내 양제를 거부하고 말았다. 어찌 이런 신하가 있겠는가? 짐은 만물 중에 공경 받지만 교귀하고 싶지는 않고, 다만 영토 안에서 모든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힘쓸 뿐이지 어찌 반드시 (고구려로 하여금) 칭신하도록 하여 스스로 존대함을 자처하겠는가?”
당고조가 이렇게 말한 것에서 이미 당 시기에 중화사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가 신하의 예를 갖추지 않아 고구려만은 예외로 한다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커버하기 위하여 당고조의 말에 신하들이 ‘고구려 땅은 주나라 때 기자의 나라였다.’라든지 ‘한나라 때에는 현도였다.’라는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그래도 연개소문이 당나라에 협조적이었다면 고구려의 멸망을 늦출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신라는 우리나라에 귀의하여 조공이 끊이지 않으니 고구려는 백제와 더불어 각기 전쟁을 중지하라. 만일 또다시 신라를 친다면 내년에는 군사를 발하여 너희 나라를 칠 것이다.’
이것은 당태종이 644년 (보장왕3년) 사신을 보내 한 말인데요. 좋게 말해도 내정간섭이요, 사실상 협박성 멘트였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이전에 신라에게 땅을 뺏긴 바가 있었습니다. 신라 진흥왕 시기의 일로 고구려입장에서 예전의 고토를 회복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 일에 당나라가 관여한다는 것은 고구려 입장에서는 선을 넘는 일이었습니다.
‘662년 봄 정월, 당나라의 좌효위장군 백주자사 옥저도총관(左驍衛將軍白州刺史沃沮道摠管) 방효태(龐孝泰)가 연개소문과 사수(蛇水)에서 싸웠다. 그의 군대가 전멸했고, 방효태도 그의 아들 13명과 함께 전사했다.’ 『삼국사기』
660년에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661년에는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평양으로 대군을 보냈습니다. 662년 가을 8월, 마침내 소정방 등의 당나라 대군은 패수, 지금의 대동강 하류에 상륙하였고 격렬히 반격하던 고구려 군사를 격파하고 인근 마읍산을 탈취하였으며 마침내 평양성을 포위하였습니다. 연개소문은 연남생에게 압록강을 수비하도록 했으나 때마침 강이 얼어 계필하력이 이끄는 부대가 기습하여 고구려군에게 패배를 안겼습니다. 연개소문은 당에게 지배받은 철륵에게 군사를 일으키라고 제안하고 철륵은 이것을 수락하니 이로 인해 당나라 장안이 위험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계필하력이 이끄는 주력 요동도행군은 다시 바다를 건너 당으로 돌아가야 했는데요. 하지만 해상으로 대거 침입했던 소정방의 평양도행군, 임아상의 패강도행군, 방효태의 옥저도행군 등의 당의 대부대는 이제 완전 고립상태에 빠졌습니다. 662년 2월 연개소문을 군사를 모아 당의 임아상의 패강도행군, 방효태의 옥저도행군을 공격하여 완전히 몰살시켰습니다.
우리나라 역사 인물 중 상반된 평가가 많은 인물이 바로 연개소문입니다. 좋든 좋지 못한 평가를 받던 간에 고구려멸망과 관련 있는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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