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언제 일본에 문자를 전해주었을까

2023. 10. 22. 20:32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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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국은 백제와 신라의 동남쪽 수륙 3000리나 되는 대해의 가운데에 산으로 된 섬에 의자하여 살고 있었다. … 개항20년에 성이 아매이고 자가 다리사북고이며 호가 아배계미인 왜왕이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어 대궐에 들게 하였다…. (왜국에는) 문자가 없어서 다만 나무막대기에 금을 새기고 끈을 맺어 썼을 뿐이다.  백제로부터 불경을 전해 받아 불법을 경신하고부터 비로소  문자가 있게 되었다.’ 『수서』 ‘왜국전’
수 문제의 개황 20년은 서기 600년 정도 되는 시기입니다. 당시 일본은 수나라에 사신을 보냈고 수나라에서는 왜국의 풍습을 들으며 그들이 문자를 접한 계기를 위와 같이 설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사실을 기록한 국내의 서적은 전무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일본의 사서에 기록된 사실을 근거나 그들이 연구해놓은 논문을 바탕으로 알아가는 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인 박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1600여 년 전에 당시 문화적으로 ‘미개(야만)’ 상태에 있던 일본열도의 왜국(일본)에 한자문화를 상징하는 ‘천자문’과 유교(유학)를 상징하는 ‘논어’를 가지고 건너가 문명의 상징인 한자와 한자문화를 왜인(당시의 태자)에게 직접 전수.교수하고, 논어로 대표되는 유교 경전을 전하고 가르쳐 유교사상과 학문, 문자(한자)문화를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미개사회 일본열도를 문명사회로 전환시킨 획기적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잇습니다. 하지만 일본역사서에서는 이것과 관련되어 생각해볼만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요. 응신천황 15년 백제왕의 아직기를 보내어 능히 경전을 읽을 줄 알므로 태자의 스승이 되게 하였다고 합니다. 아직기는 『일본서기』에 따르면 아신왕 때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좋은 말 두 필을 오진 덴노에게 선물했으며 오진 덴노가 아직기가 경서에 밝은 것을 알자 우지노와키이라치코(菟道稚郎子) 황태자의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이후 오진 덴노가 아직기에게 뛰어난 학자에 대해 묻자 왕인을 추천하니 1년 뒤에 왕인이 일본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태자의 스승이 되게 하고 모든 전적을 왕인에게 배워서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기록을 본다면 왕인이 일본에 처음으로 문자를 전한 인물은 아닐 수 있습니다. 아직기가 그보다 앞서 태자의 스승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역사에서는 왕인을 처음 문자를 전한 이로 보는 것은 문자를 읽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아직기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후에 왕인이 일본에 건너와서 본격적인 가르침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과연 일본에 문자가 전래된 시기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요. 아직기와 왕인에 의해 문자가 전해졌을 수도 있지만 먼저 일본에 문자가 전해졌으나 일본은 이를 알지 못하고 이후에 왕인이 와서 가르쳤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따라서 아직기나 왕인은 일본에 처음으로 문자를 전한 사람일 수도 있겠으나 확정할 수는 없는 일이고 아직기가 왕인이 일본에 글을 깨우쳐준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귀수왕은 백제가 처음 일어나고 제 16대째의 왕이다. … 그 후 응신천황이 상모야씨의 먼 조상인 황전별을 백제로 보내어 글 잘하는 사람을 초빙하니, 백제 임금 귀수왕이 그 뜻을 받들어 왕족 중에서 선택하여 그 손자 진손왕을 사신에 딸려 보냈다. 천황이 기뻐하고 매우 총애하여 황태자의 스승이 되게 하였다. 이로써 서적이 비로소 전해져서 유풍이 크게 떨쳤다.’ 『속일본기』
여기서도 일본에 백제가 문자를 전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기록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아직기에게 묻고 사람을 천거하였다는 내용이 없고 곧바로 백제에 사람을 보내어 글을 아는 사람을 데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을 진손왕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서적을 처음 전하여 유풍이 크게 떨쳤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여기서 진손왕은 마치 왕인의 행적을 보이고 있으나 왕인으로 동일시보는 것에는 신중함이 필요한데요. 응신천황 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왕자로 직지왕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때 진손왕은 직지왕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일본에 처음 문자를 전하는 인물로 아직기, 왕인, 직지 왕자로 추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본역사서는 이들이 건너간 것을 구체적인 연대로 말하지 않고 응신천황의 시기로 하고 있으니 그의 재위기간은 270년에서 310년입니다. 『일본서기』에서는 277년에 왕자 직지가 건너가고 284년에는 아직기가, 그리고 1년 뒤에는 왕인이 건너옵니다. 그렇게 된다면 『수서』에 기록된 ‘백제로부터 불경을 전해 받고 나서 비로소 문자가 있게 되었다,’라는 기록과 맞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백제가 불교를 받아들인 해는 384년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응신의 연대입니다. 따라서 이 연대를 우리나라 역사서와 비교하여 보았을 때 『일본서기』에 맨 먼저 등장하는 백제 초고왕은 사실 근초고왕이고 그 아들 귀수왕은 제 14대 근구수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귀수왕자 침류왕은 침류왕이 확실하며 침류왕의 원자 ‘아화’는 아신왕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아직기와 왕인이 일본으로 건너간 때는 백제의 아신왕 때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직지왕이 아신왕 6년 (397년)에 건너갔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백제가 일본에 문자나 서적을 전해주며 이를 깨우쳐준 시기는 아신왕 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는 중국의 기록에서 백제로부터 불경을 전해 받아 불법을 경신하고부터 비로소  문자가 있게 되었다고 했으니 일본의 입장에서는 불교수입이 먼저이고 문자는 그 다음에 전달된 것입니다. 
‘겨울 시월에 백제의 성명왕이 (백제의) 서부 희씨 달솔 노리사치계 등을 보내어 금동 석가불 한 구와 번개 약간 및 경론 약간 권을 전하였다. …’ 『일본서기』
이 기록은 백제 성왕 552년대에 해당하는 기사로 이 때에 비로소 일본에 불교가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사귀도궁 천황이 천하를 다스린 지 7년째 되는 무오년 12월에 백제국 성명왕이 사신 편에 태자상과 관불하는 기구한 벌 빛 불설 경권 한 상자를 보내왔다. 이것으로부터 대왜국불법이 비롯되었다.’ 『원흥사가람연기병류기자재장』
이 기록에서는 일본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사실을 전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불교의 시작을 ‘흠명 무오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흠명이 다스린 기간에는 무오년이 없고 7년째 되는 해는 병인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일본의 연구가 있어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흠명 천황 전(선화) 전(안한) 그리고 전 천황인 계체 천황 대로 올라가보았을 때 황기가 잘못되었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흠명의 재위연수가 늘어나고 즉위년도가 앞당겨짐에 따라 신해년(531년)에 즉위하였으며 그렇게 되면 흠명 천황 시기에 (538년)이라는 시기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흠명 13년이라고 하는 552년과 흠명 무오년인 538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불교가 전한 뒤에 문자가 전하였다라는 기록은 틀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문자가 전해지고 나서 13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불교가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에 따르는 의견은 일본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그보다 전의 일인데 흠명천황대의 불교전래는 공식적을 전한 것을 기록한 것이고 그 이전에 백제에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 이미 불교가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 기록에서는 문자 전래시기를 2갑자 정도 그러니까 120년 정도 시대를 올려서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일본에 문자를 전해준 것은 백제 아신왕 대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이미 불교가 일본에 전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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