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라시압 벽화 속의 고구려인
2022. 7. 21. 21:23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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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언덕에서 궁궐터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궁궐은 소그디아 왕국의 유적으로 소그디아 왕국은 13세기 몽골제국에 의해 멸망당하기 전까지 중계무역으로 크게 번영했던 국가입니다. 그런데 이 궁궐터에서 벽화가 발견되었는데 이 벽화 속 인물 중에 고구려에서 온 인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인이라고 추정하는 이유는 바로 의상에 그 단서가 있었습니다. 서쪽 벽화에 소그드 왕이 앉아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 있는데 그 오른쪽 아래쪽에 두개의 새깃털을 꽂은 모자를 쓴 두 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조우관을 쓰고 있는 사람,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시대 혹은 남북국 시대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허리에는 고리칼을 차고 소매에 두 손을 넣은 두 명의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벽화만이 알려지며 이 인물이 고구려인인지 백제인인지 혹은 신라인이나 발해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벽화를 설명하는 글이 발견되면서 벽화의 주인공은 소그드왕 바루후만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이 벽화를 발굴한 사람은 러시아고고학자였습니다. 벽화의 제작 시기를 7세기 후반∼8세기로 추정했으며, 이를 근거로 벽화 속의 동양인은 699년 개국한 발해의 사신이거나 고구려 멸망(668년) 이후 통일신라의 사신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고구려에서 온 사신이라는 것에 힘이 실렸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추후 조사를 통해 벽화가 속한 무덤의 주인공이 바루후만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그의 재위기간을 따져보면 적어도 고구려 멸망 이후의 발해나 신라의 사신은 아니었습니다.
"머리에는 절풍을 쓰니 그 모양이 변과 흡사하였으며, 옆에 새의 깃을 꽂는데 귀천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위서, 고구려전-
이 외에도 검은색의 머리와 갈색 얼굴, 헐렁한 바지와 끝이 뾰족한 신발, 그리고 환두대도라고 하는 큰 칼을 차고 있는 모습으로 특히 고구려 벽화에서 환두대도를 착용한 사람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고구려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고구려인이 그려졌을까 생각하면 당연히 국제정세를 살펴보게 됩니다. 이 벽화를 분석한 결과 그 시기가 650년에서 655년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당시 고구려는 수나라와 그 뒤를 이은 당나라의 침략에 맞서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고구려는 외교적 전략으로 서역국가들과 교류를 자연스레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각저총이라는 벽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각저는 씨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여기서 씨름하는 모습의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벽화 속 주인공들은 얼굴 생김이 사뭇다른데요. 한 사람은 우리와 닮은 모습이지만 다른 한 사람은 큰 눈에 매부리코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서역인입니다. 이를 통해서 고구려가 당나라 서쪽의 국가들과 교류를 했다는 것은 자연스레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프라시압 벽화에 고구려인은 외교적인 목적으로 왔을 것입니다. 그 목적은 당시 고구려가 서역으로 하여금 수나라와 당나라를 압박하려는 전략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중국 왕조에게 서역국가들은 위협이 되었기에 고구려는 그것을 이용한 것입니다.
더욱이 고구려인이 외교적인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는 것은 바로 고구려에서 소그드왕국에 이르는 길이 험난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아마 무역을 목적으로 오기에는 너무 어려운 길이고 위험 부담이 클 것입니다. 상업적 이득을 얻기 위해 무역을 하는 것인데 장사를 위해서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걸어갔을 초원길, 그 길은 7000~8000km에 달하는 엄청난 거리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길은 추정할 수밖에 없고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인이 당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초원길을 이용했다면 역시 고구려와 같이 당나라에 반하는 세력이 고구려인이 서역으로 향하는 길을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 세력은 서돌궐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당나라는 막강했던 지라 친당적인 성격을 지닌 세력 또한 있어서 고구려에서 서역으로 외교사절단을 보내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특히 바르후만이 사신을 맞이하는 그림 서쪽에는 돌궐인들이, 북쪽에는 당나라인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돌궐과 당나라는 적대적인 관계였습니다. 651년부터 반당적인 자세를 취했던 서돌궐은 657년에 당나라와 주변국의 연합세력에 의해 멸망당하고 맙니다. 따라서 이 벽화의 그림이 당시를 그린 벽화라면 그 시기가 651년부터 657년 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구려사신이 당나라를 압박하기 위해 보낸 것이라면 서돌궐보다 먼 소그디아 왕국의 벽화에 그러져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고구려사신의 최종목적지가 서돌궐이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몰라도 소그디아 왕국에까지 갔던 건 아니었을까요.
다르게 생각하면 당시 강력했던 당나라의 침입을 막아냈던 고구려의 위상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살수대첩은 612년, 안시성 싸움은 645년에 있었습니다. 아마 이 싸움의 결과는 당나라를 넘어서 서역지역에까지 알려졌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입을 물리친 고구려에서 사신이 왔다는 것은 당시 서역 세계에서 흥미로운 일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서돌궐이 고구려에서 온 사신을 데리고 소그디아 왕국에 가서 과시하려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서돌궐에 고구려사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소그디아왕국에서 고구려사신을 초청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애초에 소그디아 왕국에 오지도 않았는데 이 벽화에 고구려인을 그려 넣지 않았을까요. 그럼 오지도 않은 고구려인은 왜 그려넣었을까. 이 벽화는 벽화의 주인공은 바르후만의 치세를 기록하고 후대에 알리는 벽화입니다. 그러면서 당나라를 물리친 고구려인의 모습을 넣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프라시압 벽화에 있는 깃을 꽂은 모자를 쓴 사람은 고구려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앙아시아 혹은 서아시아와 우리 고대 국가 간에 교류는 우리가 잘 언급하지 않을 뿐, 그 사례가 꽤나 있습니다. 경주 월성에서 출토된 토우는 터번을 쓰고 있고, 경주 용강동에서 출토된 토용이나 원성왕릉의 무인상은 우뚝 솟은 코와 덥수룩한 턱수염을 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서역인의 모습입니다. 이는 신라의 사례일 뿐이라고 하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도 서역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씨름하는 그림이 보이며 한 때 돌궐제국의 중심지에 있어 732년에 건립된 큘테긴비문에는 제국의 시조 부믄카간의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는데 여기에 고구려와 관련된 문장이 보입니다. ‘동으로는 해뜨는 곳에서 뵈클리(Bokli)’가 조문단을 파견했다는 내용인데요. 학계에서는 ‘B’는 ‘M’으로 환치음이므로 뫼클리는 ‘뫼클리’가 되고 이는 ‘맥구려’로서 즉, 고구려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구려는 돌궐세력과 제휴하며 여타 중국세력을 견제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충분히 서역으로 통할 루트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페르시아의 문화가 자연스레 고구려로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 무용총의 벽화를 보면 말을 달리며 허리를 돌려 활을 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를 파르티안 샷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이 모습에서 고구려인가 갖는 기마민족으로서의 위상을 살필 수 있지만 파르티아샷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사냥의 모습에서 서아시아의 구대제국 파르티아와 연관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구려고분에서 천장을 바라볼 때 보이는 줄여나가는 방식은 중국에서 발견되지 않지만 이란의 건축물에 흔하다고 합니다. 평지성과 산성을 하나의 세트로 묶어서 도성을 방어하는 방식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만 중국에는 없는 모습으로 저 멀리 페르시아에서 그와 같은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아프라시압 벽화 속의 고구려가 그려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 당시 국제국가로서 교역을 활발히 했던 고구려의 당시의 모습을 담은 흔한 사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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