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서원

2024. 6. 19. 07:02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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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지난 2019년의 일입니다. 조선시대 핵심 이념인 성리학을 보급하고 구현한 장소인 서원(書院) 9곳을 묶은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6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진행 중인 제43차 회의에서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으로 등재했습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모두 9곳입니다.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입니다. 
  서원은 조선시대에 유교의 성현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학자를 키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설립한 사설 교육 기관입니다. 성현(聖賢)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건물인 사우(祠宇)와 청소년을 교육하는 서재(書齋)로 크게 나뉘어 있습니다. 오늘날의 지방사립대학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원이 출현한 것은 15세기 들어 관학이 점차 쇠퇴하면서부터였습니다. 관학이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과 사부학당(四部學堂, 四學이라고도 함)을 합쳐 부른 칭호로 고려 중기 이후 집권한 무신 세력을 대신하여 조선 정부는 문신 주도의 정부를 구축하려 했고 유교를 진흥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방의 향교와 중앙 4학은 중등교육을, 그리고 중앙의 성균관은 고등교육을 책임진다고 성종 2년 (1471년)에 편찬된 『경국대전』에 명시했습니다. 이들 학교의 학생들은 군역면제 등의 특혜를 받았기 때문에, 조선왕조 초기에는 조선시대 인재양성과 사회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학도 15세기 후반 들어 점차 쇠퇴하였습니다. 세조가 집권하면서 지식인들이 관학에 참여하는 것을 피하여 교사들의 수준은 떨어졌고, 학생들의 수준도 떨어졌으며 관리들도 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무식하며 그들이 단지 그 지위를 얻어 군역을 면제받는다고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관학의 질이 떨어지면서 필연적으로 대체 교육 기관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일종의 사립학교인 서원이었습니다. 

소수 서원


  훈구와 대립하던 사림은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궁리했고, 향촌을 기반으로 했던 사림은 향촌자치제 강화를 주장했으나 훈구 세력의 방해로 쉽게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구상한 것이 바로 사림입니다. 서원은 교육 기관이었기 때문에 훈구 세력의 견제를 피할 수 있었고, 사림 세력은 서원을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사림 세력이 자신들의 힘을 키우기 위해 설립한 서원은 명종 말기(1545~1567년)에는 서원 수가 20여 개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명종 시기에는 훈구파가 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 당시 서원이 교육 기능에 치중해야 했던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에 세워진 최초의 서원은 경북 영주에 있는 소수서원입니다. 고려 말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순흥 출신의 성리학자 안향을 기리기 위해, 1543년에 풍기군수 주세붕(1495~1554)이 앞장서 세운 것입니다. 안향(1243~1306)의 위패를 사당에 모시고 나서 사당 동쪽에 ‘백운동서원’을 세워 유학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백운동서원은 이황이 1550년에 명종이 손수 쓴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받아 이 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사서오경’과 ‘성리대전’ 등의 서적들과, 노비도 내렸습니다. 서원의 이름인 ‘소수’는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서 닦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나라에서 서원의 사회적 기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소수서원에는 모두 네 분의 선현을 모시고 있습니다. 이 땅에 주자학을 도입한 안향과 그의 후손이자 순흥 안씨의 대표적 학자인 안축과 안보, 또 한분 주세붕입니다.
  우리나라에 세운 서원의 기능의 첫째는 모시고 있는 선현의 뜻을 기리는 ‘제향’이며 서원에서는 제향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성균관, 향교나 중국, 일본의 전통유학 교육시설처럼 ‘공자’가 아닌 지역 선현만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은 한국 서원의 특징입니다. 서원에 모셔진 인물들은 한국 지성사에 큰 영향을 끼친 분들입니다. 따라서 서원의 위상은 겉으로 보이는 건축물의 규모보다 ‘사당에 어떤 분을 모셨는가’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인물에게는 제자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곳곳마다 그를 모시는 서원도 늘어났습니다.
  서원의 두 번째 기능은 강학입니다. 본래 있던 과학의 중심 성균관은 유교적 소양을 갖춘 관료를 집중양성해서 왕조체제 유지에 기여했습니다. 그런데 서원은 달랐습니다. 출세해서 이름을 날리는 ‘과거시험’ 준비보다, 성리학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집중  교육했습니다. 원생들은 자연스레 올바른 삶의 가치관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이러한 가르침 속에 고된 수련을 거치며 학식과 덕행을 두루 갖춘 진정한 ‘선비’로 양성되었습니다. 서원교육은 성리학 교재와 서원에 모신 선현이 지은 책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때문에 서원마다 교육 내용이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도산서원은 이황의 학문을 바탕으로 ‘심성’과 ‘우주론’이, 돈암서원은 김장생의 ‘의례’가 중심이었습니다. 이렇듯 서원에 남아있는 ‘강학규약’, ‘강학내용’, ‘평가’, ‘강학의례’ 등을 통해서 서원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명륜당


  이러한 서원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은 사림파가 중앙 정계를 장악한 선조 이후부터였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붕당정치가 있었습니다. 붕당(朋黨)은 중국과 조선에서, 정치적 사상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이루어진 당파 집단을 말합니다. 오늘날의 정당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 중기의 정치 운영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이 바로 붕당정치로 향촌사회의 서원을 중심으로 전개된 사림의 공론에 입각한 정치였습니다. 이 때 서원은 정치문제에 대한 향촌 사림의 일차적 여론 결집 거점이 되면서 그 중요도가 커졌습니다. 따라서 본래 교육과 제향 기능만이 아니라 양반들이 모여 여러 문제를 의논하고 여론을 수렴하여 정치에 반영하는 일까지 도맡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현종의 의복을 두고 논쟁을 벌인 예송 때는 남인은 영남 각 지역의 서원을 통해 공론을 형성하고 1000여 명의 서명한 상소를 올리며 집단적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로 송시열의 서인의 실각을 끌어내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17세기 이후에 당쟁이 격화되면서 서원은 붕당정치의 후방 역할을 단단히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서원은 지나치게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17세기 이후 서원이 남설되면서 부작용이 커졌습니다. 서원에 딸린 토지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았고, 서원의 노비는 국역(國役)을 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서원이 증가함에 따라 국가 재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엄청난 숫자의 서원들 때문에 민생에 끼치는 폐단이 엄청났고 심지어 산 사람을 모시거나 성현도 아니지만 자신의 조상이라는 이유로 모시느라 집안마다 서원을 만들고 한 사람을 모시는 서원이 5~6곳에 이르는 등 말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부터 세도 가문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서원의 정치적 영향력은 사실상 없어졌지만 그래도 지방에선 터줏대감으로 큰소리를 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경제적인 폐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선현의 제사를 지낸다는 명목으로 지방 농민들을 사사로이 수탈하였으며 이에 반발하는 지역민들을 향약이나 반상의 도리를 어겼다 하여 처벌하거나 지역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전횡을 저지르고 나라에서 막대한 식량과 노비를 제공받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 특권이 있어 국가 재정을 악화시켰습니다.
  “진실로 백성에게 해가 되는 것이 있으면 비록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나는 용서하지 않겠다.” - 흥선대원군,
  1871년 3월 9일에는 한 사람 당 하나의 서원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남겨놓을 만한 서원들만 조사해 보고하게 하였고 마침내 3월 20일에는 사액서원 47개만 남기고 전국의 모든 서원을 철폐했습니다. 이 당시 난립해 있던 서원은 1,000여 곳이 넘었으며, 안동 한 곳에만 40여 개의 서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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