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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평성대를 이끈 군주 문종
고려말 학자 이제현은 왕조의 전성기를 현종부터 그의 세아들 덕종, 정종, 문종시기로 보았으며 특히 문종시기가 태평성대였다고 전합니다. 문종은 1046년 28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현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원혜 태후 김씨의 아들이자 정종이 이복동생으로 누구처럼 섭정을 받을 일도 없었고 적당한 때에 왕위에 올라 고려를 살폈습니다. 이 문종은 호화로운 물건 대신 검소한 생활을 하여 모범을 보였으며 땅의 등급에 따라 세금의 차등을 두는 전품제를 도입하는 한편 흉년이 들 때면 가난한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백성도 없게 하기 위해 사형을 내릴 때에는 세 명의 관리가 철저히 조사하도록 하였습니다. 세 번 심사하도록 한 것도 문종 대의 일입니다. 문종은 불경을 ..
2022.08.22 -
거란의 2차 침입과 귀주대첩
거란은 고려에 대한 1차, 2차 원정을 단행하였으나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어내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2차 공격은 고려의 황제를 생포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항복은 받아내지도 못했으며 퇴각하면서 공격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만약 확실한 승리를 하고 퇴각하는 군대였다면 이처럼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상 실패였던 셈입니다. 1018년 10월에 3차 원정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2차와 3차 원정 사이에 요나라의 침입은 꾸준히 있어 왔습니다. 1013년에 여진족과 거란의 연합군대가 압록강을 건너려다가 대장군 김승위가 이끄는 고려군의 반격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1014년 10월에는 요나라 장수 소적열이 통주와 흥화진으로 침입하였으나 ..
2022.08.21 -
거란의 2차 침입과 양규의 활약
고려의 8대 왕은 현종, 하지만 다시에는 현종보다는 그의 신하 강조의 힘이 컸습니다. 본래 강조는 목종의 명을 받고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개경으로 향하던 중 목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는 잘못된 정보였는데 이를 알지 못한 강조는 한동안 군사를 움직이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목종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강조는 임금의 명을 받고도 군대를 움직이지 않은 꼴이 되어 난처하게 되었고 이렇게 된 바에야 쿠데타를 일으켜 대량군 순을 즉위시키니 그가 바로 현종입니다. 그리하여 실권은 강조에게 있던 것입니다. 이 때 요나라는 송나라와 대전에서 우위를 점하며 중원을 차지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송나라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대로 성과를 거둔 요나라는 고려로 칼을 향합니다. 아무..
2022.08.20 -
최승로의 시무 28조
고려 건국 초기의 불안함 속에서 왕권 강화라는 목적을 두고 행했던 광종의 정책들은 엄청난 희생을 몰고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에서는 그의 공포에 가까운 정치보다 그가 행한 과거제와 노비안검법같은 정책들이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어쩌면 광종이 행한 숙청의 표적이 결국 농민이나 일반 백성이 아닌 당시의 지배층을 향하고 있었고 호족 일변도의 관직등용이 아닌 과거제를 통해 인재등용의 폭을 넓히고 노비안검법을 통해 호족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고 억울한 노비를 풀어 양인을 만든 것은 표면적으로는 백성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광덕’, ‘준풍’과 같이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스스로를 황제라 칭한 광종에 이은 경종 시기에는 광종에 반대하는 분위기에 휩쓸려야 했습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광종..
2022.08.19 -
고려 정치판의 여걸 천추태후
천추태후는 왕건의 사후 혼란했었던 고려의 초기 964년 왕건의 손녀이자 대종의 딸로 태어납니다. 천추태후는 어렸을 적 할머니에 맡겨져 자랐습니다. 왕건이 혼인정책으로 여러 호족들과 관계를 맺었던 만큼 천추태후의 할머니도 유력 호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호족에 대한 엄청난 숙청 작업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천추태후의 부모도 이 때 제거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그의 할머니는 천추태후를 자신의 호적에 올리고 황보라는 성을 사용하게 합니다. 이후 천추태후는 18살에 고려의 왕인 경종에게 시집을 가게 됩니다. 천추태후 뿐만 아니라 그의 동생도 경종에게 시집가니 자매가 같은 남자를 남편으로 둔 셈입니다. 당시 경종에게는 이미 두 명의 왕비가 있었다고 하는데 경종에게 두 손녀를 시집보낸 것을 보면 천추태후의 ..
2022.08.18 -
고려를 구한 서희의 외교담판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얼마 되지 않은 942년, 거란에서 30여명의 사절단이 낙타 50마리를 데리고 도착합니다. 하지만 당시 태조 왕건은 거란의 사신들을 귀양 보내고 50마리의 낙타를 만부교에 묶어 굶어 죽게 합니다. 당시 태조 왕건의 이러한 정책에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켰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었고 「훈요 십조」에서도 거란을 멀리하라고 언급하였습니다. 하지만 악의적인 목적이 없이 온 사절단을 귀양보내고 그 동물들을 굶어죽게 했던 행동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행동입니다. 고려의 건국초기에 발해의 태자인 대광현이 수많은 유민들을 이끌고 고려로 귀순해 옵니다. 아마도 이들의 세력이 자못 무시못했는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이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이런 일을 벌엿는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개운치 않..
2022.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