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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되었을까.
사찰에 가면 동탑과 서탑이 있습니다. 보통 이 두 탑은 모양이 똑같거나 아주 흡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 이름을 따서 ○○사의 동탑 혹은 서탑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런데 불국사 쌍탑은 동탑과 서탑이라는 명칭 대신 다보탑과 석가탑이라는 명칭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 다보탑의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화려한 모양 덕분에 사람들의 이목을 받았습니다. 시각적으로는 다보탑에 쏠리지만 극적인 이야기는 석가탑이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무영탑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석가탑입니다. 바로 아사달과 아사녀의 이야기입니다.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석가탑은 20세기 중요한 발견의 터로서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게 됩니다. 그 시기는 1966년의 일입니다. 당시에는 도굴꾼들이 많았나..
2022.08.04 -
의상대사와 선묘아가씨 그리고 부석사
신라의 고승이었던 의상은 우리나라 불교역사에 있어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상가입니다. 그는 625년 신라의 귀족 김한신의 아들로 태어나 20세가 넘어서 승려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항복사로 출가한 그는 당나라에서 화엄교학이 크게 일어났다고 하자 원효대사와 함께 당나라로가게 됩니다. 하지만 고구려의 순라군에게 잡혀 첩자로 오해받았으며 이후 수십일 동안 잡혀 있다가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10년 뒤에 의상과 원효는 다시금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고 이 때 해골물일화가 전해집니다. 원효는 신라로 돌아섰지만 의상은 중국으로 향한 것입니다. 의상은 등주에 머물게 되었는데 당시 이 곳 적산포에는 신라의 사찰인 법화원이 있었습니다. 의상은 이 곳에 머물렀고 그 곳에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선묘는 의상에게 마음을 두고 ..
2022.08.03 -
중앙아시아를 정복한 고선지
멸망한 나라의 후예로서 중국에서 크게 이름을 떨친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고선지, 그가 태어났을 때에는 이미 고구려가 망한 30여 년 정도 지난 뒤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조국은 고구려였을까 당나라였을까. 그는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고사계도 정4품의 벼슬이 있었으므로 이미 멸망한 고구려 출신이었지만 일반 평민계급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이러한 것은 당시 국제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민족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주었던 당의 정책 덕분에 고선지의 아버지가 지금의 스타급 군간부 진출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한족왕조인지라 과거 시험을 통한 등용은 쉽지 않았을 것이고 무예가 출중하여 정치계로 진출을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고선지는 20여 세 쯤 유격장군이라는 지위에 올랐는데 그것은 음보라는 제도 ..
2022.08.02 -
석굴암을 유리 너머로 보아야 하는 이유
우리가 신라 혹은 경주 하면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도시, 신라의 도읍지라는 것입니다. 특히 경주로수학여행을 갈 때면 꼭 들리는 곳. 하지만 먼 발치서 바라봐야만 하는 곳이 있습니다. 세계 문화유산임에도 말입니다. 그 곳은 바로 석굴암입니다. 석굴암의 정식명칭은 석굴암 석굴이고 석불사라고 불렸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불국사에 예속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석불암 대신 석굴암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석굴암은 가지고 있는 예술성과 조형미에 의해 신앙심 깊은 사람의 미술작품 정도로 생각될 수 있지만 뒤에 절 사(寺)가 붙으므로 이곳은 엄연히 절입니다. 하지만 유리 너머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석굴암의 이미지를 바라보아야 하는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석굴암은 751년 신라 경덕..
2022.08.01 -
관음보살은 왜 원효가 아닌 의상을 택했을까.
신라 시대 때 고승으로 의상대사와 원효 대사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 중에 겪은 이야기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 해골물이야기입니다. 원효와 의상이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던 중 한 동굴에 머물게 됩니다. 원효는 한밤중에 심한 갈증을 느껴 주변을 더듬다가 바가지에 든 물을 마시고는 갈증을 해소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음날 사실 바가지에 든 물이 아닌 해골물에 든 썩은 물이라는 것을 알고는 구역질을 하게 됩니다. 이에 일체유심조의 깨달음을 얻어 원효는 유학길을 포기했습니다. 너무 유명한 이 이야기가 사실 변형된 이야기일 수 있다고 합니다. 애초에 원효와 의상이 잔 곳은 동굴인 줄 알았는데 일어나보니 인골이 흩어져 있던 무덤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
2022.07.31 -
발해가 왜 우리 역사일까.
발해는 698년에 건국된 나라로 중국측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발해 말갈의 대조영은 본래 고려(고구려)의 별종이다.’ 『구당서』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 고구려에 복속되었던 자이며 성은 대씨이다.’ 『신당서』 이 두 사료를 종합하면 발해를 건국한 사람은 대조영으로 말갈과 관련 있는 사람입니다. 『구당서』에서는 고려의 별종으로 보고 있는데요. 이는 고구려와 다른 사람이 아닌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인물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은 대씨라 하였는데 『신당서』에서는 대조영의 아버지의 이름을 걸걸중상이라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신당서는 대조영이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던 말갈인으로 고구려인과 다른 민족으로 기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걸걸조영이 발해를 세우면서 성을 대씨라 하고 대조영이 되었다는 ..
2022.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