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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문무왕릉, 과연 맞을까.
지난 1967년의 일이었습니다. 경주 동쪽 약 30km의 동해안에서 둘레 이백미터 정도 되는 바위를 발견하였습니다. 동서와 남북 두 갈래로 십자수를 깎아 그 중앙에 4평 가량의 해중 못을 만들어 석함 속에 유골을 묻은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바로 신라 문무왕릉으로 경북월성군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서 찾은 것입니다. 석함 위에는 길이 3.59m, 두께 0.9m, 너비 2.85m의 큰 거북모양의 화강암이 덮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능의 조영방식은 사문을 배치하고 그 중에 사리를 앉힌 기원전 2세기의 산치탑을 비롯하여 기원전 5,6세기 중국의 육조 시대의 목탑의 방식과 비슷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의 분황사탑, 백제의 미륵석탑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록에서는 문무대왕이 “내가 죽으면 인..
2022.07.29 -
삼국시대 서로 말은 통했을까.
삼국시대를 생각하면 궁금해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가야까지 이들간에 과연 말이 통했을까하는 것입니다. 일단 이런 것은 벽화로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연히 기록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같은 고대 문헌에 담겨진 이야기로 유추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삼국사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김춘추가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김춘추가 왕이 되기 전 신라는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이에 신라는 김춘추를 고구려에 보내 백제를 칠 구원병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당시 보장왕이 고구려의 왕이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연개소문이 쥐고 있었습니다. 연개소문은 죽령 이북의 땅을 되돌려 달라고 하니 이에 김춘추가 왕이 결정..
2022.07.28 -
삼국시대 때에는 어떤 모습으로 전쟁했을까.
아주 먼 옛날 초기 국가시대에는 어떤 식으로 전쟁을 치루었으며 그 모습을 어떠했을까요. 일단 그 시절에도 무기가 있어야 전쟁을 치를 수 있습니다. 당시 강력한 무기는 철제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초기 고대국가시대에서는 부유한 계층에서만 철제 농기구를 보유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무기도 마찬가지였 것입니다. 부여라는 나라를 보면 왕 밑에 권세를 누리는 마가, 우가, 저가 등이 있었고 그 아래로 하호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나면 지배계층이 가들이 전쟁에 참여하면 하호들은 군인들에게 먹을 것을 나르는 역할에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일단 하호들에게는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고 국가에서 이들에게 무기를 지급해주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밭이 없어 농사를 지어도 식량이 부족하며, 성질이 사납고 ..
2022.07.27 -
삼국시대 고단했던 농민들의 삶
예나 지금이나 농사는 중요한 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농사는 우리나라에서 신석기 시대 중기인 기원전 3000년 경부터 행해진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초창기의 농사는 나무나 잡초를 베거나 불로 태운 다음 밭을 만들어 농사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후 청동기 시대의 유물로 당시 농경모습을 알려주는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농경문 청동기입니다. 이랑과 고랑이 표시되어 있고 밭을 가는 사람과 흙을 고르는 사람이 새겨져 있던 것입니다. 더불어 청동기시대에는 본격적인 벼농사가 시작됐고 농경을 통해 부가 축적된 것을 보여주는 거대한 곡물저장소도 발견되었습니다. 이전시대에 비해 농사는 분명 발전했지만 아직 금속을 농기구를 사용하던 시기는 아니었는지라 땅을 깊이 갈 수는 없었고 거름 주는 법도 ..
2022.07.26 -
삼국시대 사람들의 의식주는 어떠했을까
삼국시대 사람들의 의식주는 어떠했을까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간단하게 살펴볼까요. 그에 앞선 청동기 시대에는 위 아래로 옷을 나누어 입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고조선과 부여 등 고대국가를 거쳤고 삼국시대에 들어섰는데 이 시기에는 저고리와 그 밑에 바지 혹은 치마를 입는 옷이 입었고. 머리에는 모자를 썼고 허리에는 띠를 맸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두루마기를 입었으니 그러한 모습은 각종 벽화나 토우를 통해 전해집니다. 이러한 옷의 재료인 베를 짜는 일은 여성이 맡았고 백제의 직조장인으로 서소라는 사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동기 시대 이후로 계급이 생겨났습니다. 따라서 삼국시대에는 계층 간에 의상이 차이 났는데 비단옷은 높은 신분이 입는 것이었고 겨울이 되면 두루..
2022.07.25 -
고구려 부흥운동과 보덕국
“짐이 고구려를 치려고 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끼어있어 매번 침략을 당하는 능욕을 당하고 있어 편안한 날이 없음을 내가 불쌍히 여겨서이다. 내가 두 나라를 평정하고 나면 평양 이남과 백제의 땅을 모두 그대 나라에게 주어 영원히 편안토록 하겠노라.” 『삼국사기』 당태종은 당나라로 건너온 김춘추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즉,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리고 대동강 이남의 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당태종의 일방적인 약속으로 보이기는 하나 당시 위 말대로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서 곤란한 상황에 있던 신라의 김춘추는 이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두 나라를 멸망시키고 나면 대동강 이북의 고구려 땅에 대해서는 신라가 넘보지 않..
2022.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