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려(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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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청의 서경천도운동
이자겸이 몰락하였지만 그로 인해 추락한 왕권은 쉽사리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여진족은 이 기간에 고려로부터 동북 9성을 되돌려 받아 세력을 키워 금나라를 건국하여 북방의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고려에 사대를 요구하였습니다. 여진은 본래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여겼는데 입장이 바뀌었고 고려왕실에서는 현실을 인정하여 조건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바로 서경의 귀족세력이었습니다. 당시 금나라에 사대하는 것이 불만이었고 이에 따라 고구려의 옛 도읍지이기도 했던 서경으로 기반으로 한 세력들이 힘을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 중에는 백수한과 정지상이 있었고 이들이 사람 한 명을 추천하니..
2022.08.27 -
이자겸의 난
이자겸의 할아버지인 이자연은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벼슬길에 올라 최고위직에 올랐고 그의 딸 3명은 문종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자연의 권세는 엄청 높았습니다. 이후 12대 순종과 13대 선종에서도 경원 이씨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경원 이씨 가문의 권세를 더욱 확고하게 해주었습니다. 이후 14대 헌종과 15대 숙종은 경원 이씨 가문와 딸과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왕실과의 혼인을 통해 경원 이씨 가문의 힘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경원 이씨인 이자겸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바로 16대 예종 대의 일입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관직에 있었으므로 그 역시 벼슬길에 올라 권세를 누렸습니다. 그는 이전에 여동생과 사촌형제가 왕실과 문제를 일으켜 ..
2022.08.26 -
윤관의 여진 정벌과 동북9성
고구려나 발해가 차지한 북방 영토에 여진이 살고 있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말갈 혹은 숙신, 읍루라고 불린 여진은 중국과 핏줄과 말이 달랐고 더러는 우리와 비슷했습니다. 이들은 말을 잘 타고 용맹했습니다. 따라서 태조 왕건이 후삼국통일전쟁을 치를 때에는 이들을 이용하였으으니 우리 역사에서도 일찍부터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이러한 여진부족 중 요나라의 지배를 받던 여진족을 숙여진, 그렇지 않은 여진은 생여진이라 불렀습니다. 한편 고려에서는 함경도 일대에 거주하는 여진족을 동여진, 평안도 일대에 사는 여진족을 서여진이라 불렀고 이러한 여진족은 고려에 공물을 바치고 식량이나 옷감, 농기구, 무기 등을 가져갔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여진족을 편안히 바라보고만 있던 것은 아니어서 1044년 정종 때에는 천리장성을 쌓..
2022.08.25 -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로 간 이유는
고려 15대 임금 숙종은 조카인 헌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무력으로 왕위를 차지한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나라를 잘 다스리도록 더욱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능력만 뛰어나면 신진가문이든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관리로 임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든든한 지원이 된 것은 바로 숙종의 동생이자 승려인 의천와 파평의 신진가문 출신인 윤관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려 숙종 때의 기억할만한 일은 바로 이 때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동전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고려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시장에 가서 베를 갖고 가서 바꾸어야 했습니다. 나라의 세금도 쌀과 베로 걷었습니다. 물론 고려 숙종 이전 시기에도 화폐 역할을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성종 대에 만든 철전과 숙종 때에 만들어진 은병이..
2022.08.24 -
고려시대 무역항 벽란도
고려는 대외교류가 활발한 나라였으며 당시의 주변국들 송, 여진, 일본, 거란을 비롯하여 토번과 섬라곡국(타이), 대식국상인들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몰려온 곳은 바로 벽란도라고 하는 개경의 입항이었습니다. 벽란도라고 하면 ‘도’라는 글자가 붙기 때문에 섬이란 생각을 하기 쉽지만 사실 이 때의 도는 섬 도가 아닌 건널 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드나들었던 여러 나라중에 가장 교역이 잦았던 국가는 송나라였습니다. 송나라배가 고려의 영역 내인 흑산열도에 오게 되면 이들을 영접하기 위한 관리들이 나가서 상황을 보았으며 밤에도 송나라 상선이 통과할 수 있도록 지역에 봉화를 올려 예성강 하구로 인도하였습니다. 송나라사신들이 머물 수 있는 순천관을 포함하여 여러 욍국인숙소도 있었습니다. 당시 고려..
2022.08.23 -
고려 태평성대를 이끈 군주 문종
고려말 학자 이제현은 왕조의 전성기를 현종부터 그의 세아들 덕종, 정종, 문종시기로 보았으며 특히 문종시기가 태평성대였다고 전합니다. 문종은 1046년 28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현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원혜 태후 김씨의 아들이자 정종이 이복동생으로 누구처럼 섭정을 받을 일도 없었고 적당한 때에 왕위에 올라 고려를 살폈습니다. 이 문종은 호화로운 물건 대신 검소한 생활을 하여 모범을 보였으며 땅의 등급에 따라 세금의 차등을 두는 전품제를 도입하는 한편 흉년이 들 때면 가난한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백성도 없게 하기 위해 사형을 내릴 때에는 세 명의 관리가 철저히 조사하도록 하였습니다. 세 번 심사하도록 한 것도 문종 대의 일입니다. 문종은 불경을 ..
2022.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