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려(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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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예술공예품 나전칠기
나전칠기는 나무로 만든 상자 장롱 등 목물의 겉에 삼베를 바르고 그 위에 0.3mm~0.5mm의 얇은 전복조개껍데기 혹은 진주껍데기나 야광패껍데기를 붙여 여러 가지 무늬를 만들고 다시 칠을 하여 만든 것입니다. 그 이전에 있었던 칠기라는 것은 중국에서 3천 년부터 만들었고 한국에서는 6세기부터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6세기 초에 축조된 신라의 천마총과 백제의 무령왕릉에서 칠기가 발견되었습니다. 나전칠기는 이보다 늦은 고려시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서긍의 『고려도경』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나전칠기 공예는 고려자체의 독창적인 예술이자 화려하고 섬세하여 그야말로 동양칠기공예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긍의 『고려도경』에서도 ‘나전의 공교함이 세밀하고 귀하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2022.09.08 -
치열했던 고려시대 노비의 삶
우리나라 고대국가시대부터 신분이 있었고 가장 낮은 계급은 바로 노비였습니다. 고조선을 나라를 다스리는 법률로 8조법을 두었는데 그 중에 '도둑질을 한 자는 노비로 삼고 만약 풀려나려면 50만 전을 내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비는 아주 옛날부터 꾸준히 존재했던 신분계층으로 이러한 노비들은 불과 130여년 전만 했도 존재했던 사람들입니다. 바로 1894년 갑오경장이 발표되고 나서야 노비제도가 폐지되었습니다. 그럼 고려시대에는 어떻게 노비가 양인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광종 대에 실시한 노비안검법이란 제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려의 광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실시하였고 그 중에 노비안검법이 있었습니다. 이 제도는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를 원래의 신분으로 되돌려주겠다는..
2022.09.07 -
고려시대에는 향부곡소가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향부곡소라는 행정구역이 있었습니다. 아주 예전에서 학교에서 이곳을 천민주거집단 정도로 가르치기도 했으나 지금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향과 부곡에 대해서는 전쟁의 포로를 집단적으로 수용하였거나 아니면 반역을 일으키거나 또는 적에게 항복하면 해당 지역을 향과 부곡으로 바꾸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성현, 본래 신라 대병부곡인데, 고려 초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으며 현종 9년(1018년)에 (상주목)에 내속했다.”『고려사』 이렇게 보면 향과 부곡은 이미 고려 이전의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고려초인 태조 대에 군현에 대한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향·부곡도 재편이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태조 왕건에게 크게 ..
2022.09.06 -
조선시대보다 권한이 컸던 고려의 향리
고려의 초기는 숙청과 거란의 침입으로 상당히 어수선했습니다. 거란의 침입은 호족과 연합하여 만든 고려의 왕조가 중앙집권체제로 나아가는 데에 지체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고려초기의 향리의 위세를 보면 그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라는 나라가 건국되었을 때 수많은 호족세력이 도움을 주면서 이들 중 일부는 개국공신이나 중앙관료가 되면서 개경으로 이주했습니다. 하지만 지역에서만 힘쓰는 호족은 개경으로 이주하지 않고 그 지역에 머물면서 그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고려의 향리가 된 것입니다. 일례로 고려 8대 왕인 현종이 거란의 침략으로 개경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을 때의 일입니다. 현종일행은 경기도 양주에 도착합니다. 이를 맞이한 이곳의 향리가 자신을 알아보겠느냐고 왕에게 묻습니다. 모르는 ..
2022.09.05 -
고려대표불상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지난 2018년의 일입니다. 문화재청은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국보로 지정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은진미륵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문화재인데요.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을 담고 있는 이 불상은 우리나라 불교 신왕과 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는 점이 인정되어 국보로 지정된 것입니다. 이 불상은 고려 4대 임금인 광종 대인 서기 968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목종 9년인 1006년에 완성된 불상으로 높이가 자그마치 18.12m에 이릅니다. 하반신의 중간부분은 자연암을 그대로 조각하였고 그 위에 큰 바위를 올린 관음보살상입니다. 이 거대한 불상은 옛 조상의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그 큰 규모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거대한 크기와 더불어 면류관을 쓰고..
2022.09.04 -
고려불화이야기 두번째 아미타삼영도
불교에서 시방 정토 특히 아미타불의 정토에 다시 태어나려는 극락왕생신앙이 있었는데 이를 정토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미타불을 계속 외우면 서방정토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신앙입니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신라의 원효가 크게 퍼트린 신앙이었습니다. 원효는 불교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이와 같은 정토신앙을 널리 알렸으며 따라서 정토 신앙은 서민적인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행을 쌓고 염불을 외우다가 생을 마감할 때 즈음이면 아미타여래와 여러 보살들이 직접 찾아와 극락으로 데려간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은 통일신라 때부터 유행하여 고려시대에는 불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아미타내영도가 그것입니다. 아미타내영도에는 여러 구도가 있습니다. 아미타여래가 단독으..
2022.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