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려(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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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이 만들고 대대로 지켜온 팔만대장경
대장경은 불교성전의 총칭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수록한 경장, 부처의 가르침을 해석한 문집인 논장, 그리고 불교의 계율을 수록한 경전을 의미하는 율장 이렇게 3가지 기록을 의미합니다. 석가모니가 6년 고행 끝에 35세에 득도하여 80세에 열반할 때까지 4년 동안 제자들과 대중들을 가르치고 깨우쳐주었던 진리와 이것을 풀이한 것을 기록한 것이며 이 내용을 나무판에 글자로 새겨 종이에 박아내도록 한 것이 바로 대장경판입니다. 그리고 팔만대장경이라는 것은 물건의 많음을 의미하는 8만 4천의 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번뇌를 많음을 들어 이것은 팔만사천진노라고 하기도 하고 탑파(塔婆)가 아주 많을 때 팔만사천탑이라 하는데 부처가 이러한 인간의 번뇌를 없애기 위해 8만4천의 경전을 설교하였고 이를 팔만사천법..
2022.09.26 -
원나라 황제 부인이 된 기황후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의 제 2황후이자 1365년에 정후가 된 기황후는 고려 출신으로 그가 낳은 아들 애유식리달랍은 1353년에 황태자에 책봉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고려 왕실을 제외하고 원나라 황실의 가족이 된 고려 사람이었습니다. 고려인이 어떻게 당대 제국이었던 원나라 황제의 황후가 되었을까. 그와 관련하여 『고려사』의 「이곡열전」에서는 공녀제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려사람들은 딸을 낳고도 이를 숨겼으니 친척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나라 사신이 오면 군인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여자를 찾곤 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발각되면 이웃과 친족들을 잡아들이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원나라사신은 1년에 한 두 번씩, 혹은 2년에 한 번씩 고려로 찾아와서는 공녀를 뽑아가고는 했습니다. 많으면 사오 십명의..
2022.09.25 -
고려시대 후반 원나라 간섭은 어느 정도였을까.
원나라가 고려정치에 간섭하며 많은 공물을 요구하던 시기는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로 원간섭기라고 부릅니다. 고려의 끈질긴 저항으로 고려는 독립된 나라의 지위는 유지할 수 있었으나 대신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고려가 몽골과의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몽골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어야 했음을 말합니다. 원나라는 철령이북의 땅에 쌍성총관부를 두어 고려 땅을 직접 다스리기도 했으며 일본한테는 고려를 통해 조공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이에 몽골은 정동행성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배를 만들고 군사, 식량을 마련하라고 하였습니다. 고려에는 ‘충’자로 시작하는 왕이 많은데 이것은 익히 알고 있듯이 고려의 왕이 몽골에 충성한..
2022.09.24 -
삼별초 항쟁의 의미와 영향
1270년 삼별초의 항쟁이 일어났고 진도에 거점을 잡은 이후 한동안 그 세력이 컸습니다. 진도는 당시 서남해의 조운선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었는데 삼별초가 여기를 틀어막았으니 고려입장에서는 난감했습니다. 특히 고려 정부가 몽골에 보낸 국서에 따르면 경상도와 전라도의 조세와 공물은 육지로 운항할 수 없어 반드시 강이나 바다로 옮겨야 했는데 삼별초가 진도를 장악하여 조운선을 운항할 수 없다고 하였고 1271년 4월에 몽골에 보낸 국서에 따르면 삼별초가 30여개의 섬을 빼앗았으며 경상도 김해, 밀양, 남해, 창선, 가제도, 합포 등의 해안가의 마을이 삼별초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편 삼별초는 전라도 안찰사에 명하여 백성들의 조세를 진도에 바치게 할 뿐만 아니라 많은 군현이 삼별초에 항복하여 ..
2022.09.23 -
삼별초는 왜 항쟁을 시작했나
고려에서는 원래 특별히 선정해 뽑은 병사들로 이루어진 부대를 별초(別抄)라 하였는데, 최씨 무신정권 시절 최우는 자신의 권력을 보호하고 신변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힘세고 기골이 장대한 장정들을 뽑아 사병조직 야별초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몽골과의 전쟁이 계속되자 야별초를 확대해 정규군 조직으로 재편해 좌별초, 우별초로 나눴고, 여기에 몽골제국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하거나 송환된 사람들을 모은 신의군까지 합쳐서 마침내 삼별초를 이루었습니다. 삼별초는 정규군으로서 역할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최씨 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사병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삼별초는 무신정권 그리고 몽골의 침략과 관련 있는 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은 강화 천도 후에 몽골군과 가장 치열하게 싸운 무사집단으로 따라서 경별초라는 칭송도 들었습..
2022.09.22 -
양수척 이야기
이의민이 고려무인집권기에 권력을 누리던 시기 그의 아들은 이지영은 아버지의 권세를 믿고 못된 짓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의 남편이 집을 비우면 그를 틈타 관계를 맺곤 했습니다. 그는 압록강 부군이 삭주분도장군으로 있을 적에 여러 여자들을 불러 술판을 벌였는데 그는 더욱 미색을 뛰어난 여자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지방관리가 조심스럽게 추천한 이가 바로 양수척 출신의 자운선이라는 18세의 여인이었습니다. 양수척은 본래 후백제의 병사들이 후예들로 변방으로 내쫓겨진 무국적의 무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사냥과 화전을 업으로 삼았고 여자들은 춤과 노래로 생계를 꾸렸는데 몸을 팔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은 공동체 의식이 남달랐고 누가 벌어도 부족의 소유였습니다. 미인은 부족에게 큰 돈을 벌어다 줄 수 있었기 ..
2022.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