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전기(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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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의 금오신화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남기곤 했는데요. 그 중에서 각 시대마다 천재라는 타이틀로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이가 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대표적인 인물로 김시습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1435년에 태어난 지 8개월째에 글을 깨쳤으며 두 살이 되었을 때에는 외할아버지게에 시를 배웠으며 세 살이 되었을 때는 직접 시구를 지었다고 합니다. 비도없이 천둥 소리 어디서 나나? 누런 구름 조각조각 사방에 흩어지네. 이것은 세 살 때 유모가 맷돌에 보리를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지었다는 시입니다. 그리고 이 후에는 이색의 후손인 이계전에게 , 같은 성리학의 기본경전을 배웠는데 그 때 그의 나이 다섯 살 때였습니다. 이러한 신동의 탄생은 소문으로 널리 퍼졌고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439..
2022.10.19 -
조선을 다스리는 법률근간 경국대전
1455년, 집현전의 직제학이던 양성지가 당시 조선의 왕이던 세조에게 상소를 올렸는데 그는 통일된 법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전에는 법전이 없었느냐, 고려시대에는 법률이 있었지만 체계적이지 않았습니다. 고려공사는 3일이라는 말이 있는데 고려공적인 일은 3일이면 바뀐다는 말로 안정적이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조선의 태조 때에 만들어진 고려시대의 관습법에 법률적 효력을 지닌 왕명을 합해 정리한 것으로 을 펴냈고 3년 뒤에 , 태종 때 과 그리고 세종 때에는 이 편찬되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바뀔 때마다 법전이 새로이 등장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왕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법률을 적용해야 하는 관리들은 그 때마다 난처했습니다. ..
2022.10.18 -
조선 백자에 대하여
선사시대에는 음식을 저장하기 위해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구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먼저 등장한 실용적 그릇이었습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들어 1000℃이상의 온도를 만들어내는 터널식 가마가 생겼고 이로서 도기의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지나면서 자연스레 가마의 온도가 올라가고 남북국 시대에 들어서는 중국에서 유약을 발라 다시 굽는 기술이 들어왔습니다. 바로 도자기의 시대로 접어든 것입니다. 이러한 도자기기술은 고려시대에 들어 기술적으로 더욱 진보하게 되어 12세기에는 고려만의 독자적인 기술, 상감청자로 전성기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몽골의 침입으로 침체에 빠졌습니다. 이후 들어선 조선대에 이르러서는 초기 분청사기와 백자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2022.10.17 -
몽유도원도에 얽힌 이야기
몽유도원도 기문 정묘년, 음력 4월 20일 깊은 잠에 꿈을 꾸었다. 꿈에서 박팽년, 최항, 신숙주와 함께 산 아래 이르니, 우둑 솟은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가 있고, 복숭아나무 수십그루가 있다. 오솔길의 갈림길에서 서성이는데 산관 야복 차림의 사람을 만났다. 그가 공손하게 일러준 대로 기암절벽과 구불구불한 냇가 길을 따라갔다. 어렵사리 골짜기를 들어가니 탁 트인 마을이 나타났는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였고 또한 대나무 숲과 초가집이 있고 개울가에는 오직 조각배한 척이 흔들거렸다. 한 눈에 도원동임을 알아차렸다. 제각기 신발을 가다듬고 언덕을 오르거니 내려가거니 두루 즐거워하던 중, 홀연 꿈에서 깨어났다. 안평대군은 시서화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가 꾸었던 꿈을 직접 그리지 않았는데요. 그 이..
2022.10.16 -
조선 세종 과학 문명의 결정체 칠정산
달력은 천체의 운행 즉 태양, 달, 별의 움직임을 연구하여 만듭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시간을 정확히 알아야 했는데 이러한 것을 역법이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천체의 움직임을 알려면 관측기구가 있어야 하고 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한 제도와 지식 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계산하여 달력을 만들었을까. 조선 세종 이전의 시기에는 우리만의 역법이 없었습니다. 대신 중국의 것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것을 따라 했습니다. 그리하여 매년 동지 때 달력을 받으러 중국에 사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달력을 가져와 사용하였는데 때문에 동지 때 가는 사신을 ‘동지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
2022.10.15 -
문화독립운동가 전형필이 품속에 지킨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 전형필이란 사람을 아실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 이름이 전형필의 이름을 따서 간송 미술관이라 지었습니다. 그는 1906년에 태어나 1962년에 생을 마감한 인물입니다. 그가 살아온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참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에 간송 전형필은 독립운동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져 있거나 6.25 전쟁에 참전하여 공을 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 정부와 관련하여 그가 문제를 일으켰다거나 민주열사로서 행보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의 아버지가 충청도 황해도등지에 엄청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종로 일대에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전형필은 지금의 표현으로 따지면 그야말로 금수저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송 전형필은 기억하는 이유는 우리 문화 유산 지키는 데에 모든 것을 걸..
2022.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