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85)
-
무고한 백성들의 순교 사건 병인박해
1866년 조선 조정(朝廷)에서 가톨릭 교도를 대량 학살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른바 병인박해사건, 이 사건이 촉발되어 이후에 프랑스가 서해안에 침범하니 병인양요입니다. 당시 조선의 군주는 고종이었으나 나이가 어렸기에 흥선대원군이 섭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흥선대원군을 수식하는 말이자 외교노선은 바로 예전에 쇄국정책이라 불렀던 통상수교거부정책입니다. 그러면 당시 흥선대원군이 통상수교를 거부하고 가톨릭 교도들을 박해했던 데에는 무슨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요. 외세를 배격한 인물로 알려진 흥선대원군은 천주교를 무작정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초반에는 우호적이었습니다. 일단 고종의 어머니인 여흥부대부인 민씨가 천주교 신자였고 고종의 유모 역시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일단 주위 사람들이 천주교신자였고..
2022.11.01 -
조선 후기 건축 걸작 수원화성
조선 전기에 대표적인 성군으로 세종이 있다면 조선 후기에는 정조가 있습니다. 정조는 여러 업적을 남겼습니다. 1783년에는 자휼전칙(字恤典則)이라는 법열을 통해 굶어죽는 아이들이 없게끔 구제하고자 했으며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여 여러 인재들을 등용하기도 했습니다. 정조는 신분에 따른 차이를 두지 않았는데 이덕부, 박제가, 유득공이 이 시기에 등장한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용의자나 피의자에게 심한 고문을 가하지 않도록 하는 법률서 흠휼전칙(欽恤典則)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도망간 노비를 추적하도록 하는 추노를 보호하는 법률 노비추쇄법을 폐지하였으며 신해통공을 통해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국가의 허락을 받지 못한 상인들이 활동에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가 정치를 행함에 있어 당파를 적절히 이용하고 자신의 정적을..
2022.10.31 -
조선 후기 지리학의 걸작 대동여지도
조선 후기 과학의 걸작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입니다. 이 대동여지도는 한 번쯤 교과서에 봤을 만큼 유명합니다. 높이 7m에 달하는 거대한 대동여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현대과학이 들어오기도 전에 사람의 힘으로 이토록 윤곽선이 실제와 비슷하도록 그릴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와 더불어 국가의 무관심 속에 이 지도가 제작되었고 김정호는 몇 차례나 전국을 돌고 백두산을 몇 번이나 올랐으며 그렇게 힘든 지도는 오히려 너무 정확하다는 이유로 불태워졌다는 이야기가 떠오르실 지도 모릅니다. 불과 몇십년 전 김정호의 위인전에 버젓이 들어있던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중 대부분이 왜곡되어 있는 이야기며 오히려 당시 김정호는 비변사와 규장각의 군사지도까지 참조하며 지도를 제작한 것으로 알..
2022.10.30 -
조선 천재 화가 김홍도
김홍도는 젊은 시절부터 천재적인 실력으로 인정받은 화가였습니다. 십대 후반에 이미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고 임금의 초상을 그리는 화진화사에 세 번 뽑히며 정조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정조는 그러한 김홍도를 총애하였으며 도화서의 화가들을 추려 규장각에 배속시켰는데 김홍도는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김홍도의 평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풍속화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소재를 통해 인정을 받은 화가였고 그 중 신선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화가였습니다. 신선을 그린 그의 그림 중에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군선도입니다. 그는 역사상 실재했던 인물들을 이 그림에 등장시켰습니다. 신선이라고 해서 과장되거나 신비하게 그린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켰고 달마도 조선인으로 설정하였습니다. 그는 우..
2022.10.29 -
독도를 지킨 수호자 안용복
울릉도는 동해 가운데에 있는 섬으로 이전에는 우산국이라 불리던 섬이었습니다. 육지로부터 700리~800리 쯤 떨어져 있는 섬이고 강릉이나 삼척에서 높은 곳에서 보면 어렴풋이 보이는 섬이기도 합니다. 이 섬은 지증왕 12년인 511년, 신라의 장군 이사부가 정복하였습니다. 이후 고려 초에 울릉도사람들이 자신들의 특산물을 가지고 와서 왕에게 바쳤습니다. 그리고 조선 대에 들어서면서 육지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이 곳에 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태종 대와 세종 대에 울릉도에 군사를 보내 그 곳의 사람을 잡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울릉도는 임진왜란 뒤에 왜적에게 노략질을 당하여 다시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게 되었다. 근래 들으니 왜적이 의죽도를 점거했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의죽도가 바로 울릉도라고 한다.” -..
2022.10.28 -
조선에 표류한 네덜란드인과 하멜 표류기
1653년 6월 18일 지금의 자카르타인 바라비아를 출발한 배가 있었습니다. 그 배의 이름은 스페르우르호, 하지만 네덜란드 선원들을 태운 배는 8월의 태풍을 만나 제주도에 도착하게 되었고 그 중에는 헨드릭 하멜이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제주관아로 끌려갔고 그들이 나가사키로 향하는 기도교인 정도로만 인식되었습니다. 이 일행이 나가사키로 가려고 했는데 나가사키에는 데지마라는 인공섬이 있었습니다. 본래 포르투칼과 스페인이 일본에 진출했지만 그들의 무역품과 같이 들어온 기독교는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1637년 일본에서 시마바라 농민 반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추방되었고 선교를 배제한 무역만을 하는 조건으로 네덜란드가 데지마에서 제한된 무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
2022.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