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언제 세워졌을까.
2022. 6. 9. 11:33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선사시대부터 고조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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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으로 기록되어 있고 고조선을 세운 사람은 단군왕검입니다. 하지만 오래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기록과 의심이 되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기원전 2333년인데요. 이러한 날짜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동방에는 처음에 군장이 없었는데, 신인이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자 국인이 세워서 임금으로 삼았다. 그가 단군이며 나라 이름은 조선이었는데 바로 요임금 무진년이었다. 『동국통감』
여기서 무진년이 바로 기원전 2333년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요임금이 즉위하고 25년째되었을 때의 시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시기가 바로 우리나라의 시기가 신석기 시대라는 것인데요. 신석기 시대는 평등한 사회였으므로 지배자가 등장하지 않았고 따라서 국가도 존재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교과서에서도 우리나라의 청동기의 시작을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 경으로 보고 있는데요. 또한 이와 관련된 청동기 유물인 비파형동검이나 반달돌칼, 미송리식 토기등이 대개 기원전 10세기 전후의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 경의 덧띠새김무늬토기가 발굴되어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작연대가 더욱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문헌이 나와 있는 기원전 2333년이라는 기로과는 여전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기원전 2333년의 기록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 이 기록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조선을 세워지기는 했지만 그 시기가 기원전 2333년이 아닌 그 이후의 시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발굴되는 청동기 유물의 연대를 근거로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10세기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야 청동기 문명을 바탕으로 건국되었다는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도 끼워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기원전 2000년 이전의 청동기 유물이 아직 발견이 안되어 있을 수도 있고 동국통감의 기록을 맞받아칠 고조선의 건국과 관련된 다른 문헌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청동기문화의 시작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까지는 대부분 한국의 청동기의 시작을 기원전 400년 경부터 시작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때의 역사서술와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면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 고조선의 건국이 기원전 2333년이라는 서술은 터무니없는 주장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학자들에 의해 기원전 700~800년, 기원전 13세기, 기원전 20세기라고 주장하더니 어떤 학자는 기원전 25~26세기를 한국의 청동기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과서의 실린 우리나라 청동기시작을 기원전 10세기로 보고 있기는 하나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청동기의 시작을 기원전 10세기로 본다면 아마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세웠다는 기록은 믿기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나온 청동기 유물을 비추어 볼 때 기원전 2333년은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시대였으므로 당시 지배자도 없었고 따라서 국가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가 존재하려면 강력한 법령이 존재해야 세워질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문자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한자가 사용된 것은 기원전 3~4세기경으로 보고 있으니 단군의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기원전 2333년은 믿기 힘든 기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꾸어 생각하면 문헌에 기록된 고조선의 건국 기록을 부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청동기 유물의 발견이 문제인 것인데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는 문제이고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밝힌 다른 기록이 없다는 점은 여전히 고조선의 건국연대가 기원전 2333년을 결정적으로 뒤집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개천절을 10월 3일이라고 하며 매년마다 이 날짜는 지켜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개천절은 양력인 셈인데요. 개천절은 원래 BC2333년 음력 10월 3일이었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초기에도 지켰습니다. 하지만 1949년에 1949년 10월 1일에 공포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 음력 10월 3일을 양력 10월 3일로 거행하게 되었으니 10월 3일이라는 날짜가 소중한 데다 기원전 2333년 음력 10월 3일을 양력으로 환산할 수 없어 양력 10월 3일로 지내게 된 것입니다.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로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었으니 나이가 1908세가 되었다.” 『삼국유사』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과 관련된 내용은 믿기 힘든 내용이 많습니다. 특히 단군이 1908세까지 살았다는 대목은 현대 인류가 부러워할만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믿을 수 없습니다. 단군왕검은 고조선을 다스린 정치적 군장이자 종교지배자입니다. 아마 단군왕검이 여러 대를 이어 1908년동안 재위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단군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그 자리를 물려받은 것입니다.
“1048년이라고 한 것은 곧 단씨가 대로 전하여 지나온 햇수일 뿐이고 단군의 수명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는데, 그 말이 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국통감』
이러한 견해는 15세기에 지어진 역사서에서도 보이고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동국통감』에서는 단군왕검을 일정한 직위가 아닌 단씨 성을 가진 인물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편 이런 단군을 곱게 바라보지 않은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일본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한 시절 단군왕검을 신화적 인물에 불과하다며 부정하였습니다. 일본은 이에 덧붙여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 나왔으니 이는 한반도가 중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일제는 1925년에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 편수회를 조직하여 역사왜곡이 나섰으며
1927년에 발행한 ‘낙랑군 시대의 유적’을 통해 ‘단군조선·기자조선이라고 칭하며 모두 평양에 도읍을 정했다.’는 조선의 문헌을 부정하며 다만 위만조선만을 역사로 인정했습니다.
사실 일본은 강제병합이전부터 단군을 부정했습니다. 1894년에 「단군고」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이 글에서 단군은 불교적으로 가공된 인물이며 불교가 고구려에 들어온 372년 이후에나 단군신화가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사리토리 교수로 이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단군이야기가 실렸다는 것이 『위서』뿐이라며 신빙성이 낮다고 보았고 삼국유사에 기록된 『고기』라는 책도 단군조선과 맞물린 중국의 요순시대와도 동떨어졌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상서(商書)’, ‘사기(史記)’, ‘한서(漢書)’ 등에 단군조선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단군이야기가 신화일뿐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의 주장 이후에는 단군이 실재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1910년 이후 일제는 전국의 민족 고유의 사서 20만 권을 모아 불사른 뒤 조선사 편수회를 만들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일본역사보다 짧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단군조선은 부정되어야 했습니다.
그럼 우리 학생들이 이용하는 참고서는 어떠할까. 2022년 고등학생들이 이용하는 수능특강을 보면 고조선의 건국에 대해서는 연도는 빼놓고는 청동기문화를 기반으로 건국되었다고 적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의 시기는 적어놓지 않았습니다. 고조선의 건국연도가 수능에 안나올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를 연 첫 번째 국가인데 적어놓지 않은 것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기원전 2333년이라고 적어놓지 못한 건 자신감 부족이었을까요. 아니면 일제 시대 이후로 이어져온 식민사학의 잔재일까요. 설마 고조선이라는 나라의 건국연도를 잘 모르겠으니 학생들더러 알아서 생각하라며 은근슬쩍 떠넘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단기 51년에 지어졌다는 강화도의 참성단은 단군과 관련된 유적을 떠올려보면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의 역사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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