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을 뒤집는 가야의 철기 유물

2022. 6. 19. 21:37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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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일본

임나일본부설이라고 아시나요. 이것은 왜가 4세기 중엽에 가야지역을 군사적으로 정벌해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고 6세기 중엽까지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학설로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더러 믿는 학자들이 있는 학설입니다. 이 학설은 약 150여년 전 메이지 정부가 외친 ‘조선은 우리의 부속국이다.’를 뒷받침하는 학설로 당시 일본참모본부는 비밀리에 작전용 지도를 작성하는 동시에 광개토대왕비문의 해석 등 자료수집에 열을 올리며 고대사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임나일본부설은 일선동조론의 핵심이론이 되어 청일전쟁 이후에는 우리나라에 대한 현지조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임나일본부의 존재를 기록하지 않은 『삼국사기』를 위서로 규정하고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추정되는 김해를 샅샅이 뒤지게 됩니다. 1910년까지 계속되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결국 옛 가야 지역을 조사하게 되었지만 별 다른 게 없었습니다. 일본의 한 학자는 임나란 것이 일본의 건국 후에 만든 식민지였다고 하는 그러한 선입관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다수의 일본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패전 이후에도 그들의 편견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근거로 내세운 것은 바로 광개토대왕 비문과 칠지도를 거론했으며 이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일본서기의 신공황후 조의 기사를 토대로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그렇게 주장한 가야란 나라는 실제로 어느 정도의 나라였을까요. 우리나라 역사책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도 가야란 나라에 대한 서술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책제목에서 말하는 삼국에는 가야는 해당하지 않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가야는 한없이 나약한 조그만 나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야라는 꽤나 오랫동안 한반도에 존재했던 나라입니다. 400년이 넘는 세월을 한반도에서 버텨온 것인데 그 기간은 조선의 한반도 통치기간과 맞먹으며 고려의 존속기간보다 긴 역사입니다. 중앙집권국가로 나아가지 못하고 연매왕국단계에서 신라에게 멸망당했지만 과연 가야가 당시 일본의 임나일본부가 설치 될만큼 약한 나라였을까요.

종장판갑 부산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갑옷. 가장 이른 형태의 갑옷으로서 세로로 긴 형태의 철판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갑옷과 갑옷을 가죽이나 작은 철못으로 연결하였다


먼저 중국쪽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중국의 위지 동이전을 보면 “가야는 철을 많이 생산해 낙랑과 왜에 수출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록을 증명할 유물들이 쏟아진 시점이 60년대로 철제갑옷류가 8벌이 출토된 것입니다. 임나일본부설은 가야에서 출토된 단갑은 일본열도에서 유입된 것이라고 했으나 이 갑옷은 일본지역에서 나오는 갑옷보다 더 옛날식으로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이 갑옷은 투구 뒤에 폈다 접을 수 있는 목가리개까지 장치했고 정강이를 덮을 수 있는 경갑도 있는 그야말로 완전한 상태의 갑옷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깨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제작된 갑옷이었습니다. 이는 서구의 갑옷보다 활동적이고 제작연대도 앞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91년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이를 다시 한 번 증명하였습니다. 이 고분군에서는 구리거울이 발굴되어 금관가야의 왕의 무덤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대에서 거울은 수장의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지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발굴된 무구류와 각종 공구류 등이 같은 시기의 일본 고분에서 발견된 것보다 선진적이고 시기가 앞서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것은 4세기경에 이미 이 지역에 강력한 힘을 가진 왕권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무리 늦어도 4세기 중엽에는 기마용 갑옷과 마구 등 장비를 가진 기마군단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옷칠을 한 가죽화살통은 일본고분에서 출토된 4~5세기 때의 같은 형태의 화살통보다 시기가 1세기 이상 앞서 있으며 이는 금관가야에서 일본으로 무기문화가 건너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발굴된 유물 중에는 직경이 12cm에 달하는 파형동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일본 것은 대개 7cm였는데 가야에서는 더 큰 게 발견된 것입니다.

가야 무사 복원상


그러면서 91년도에는 한 일본학자가 자신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12cm가 되는 파형동기를 비롯, 금관가야의 유물들이 일본에서 출토된 것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것으로 특히 기마와 관련된 출토품은 이 지역에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국가가 실재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한반도와 일본의 군사력 차이를 볼 때 임나일본부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없으며 당시에는 일본에는 중앙집권국가가 성립하지도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일본에서 출토된 철제 유물들이 가야에서 출토된 철제 유물과 같은 것임을 나타내는 기술진의 성분분석결과를 공개하였습니다. 이것은 가야가 일본 등지에 철을 수출했던 기술선진국이었음을 실증하는 것으로 일제가 한반도 지배의 역사적 근거로 삼았던 임나일본부설이 허구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변진의) 나라에서는 철(鐵)이 생산되는데, 한 ․ 예 ․ 왜인들이 모두 와서 사간다. 시장에서의 모든 매매는 철로 이루어져서 마치 중국에서 돈을 쓰는 것과 같으며, 또 (낙랑과 대방의) 두 군(郡)에도 공급하였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가야와 관련된 철기 문화가 많지만 그 중에서 덩이쇠가 있습니다. 이것은 제철소에서 만드는 큰 철판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덩이쇠는 3세기후반에서 6세기에 걸쳐 부산과 김해지방 등 대형고분군에서 발견되는 유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덩이쇠는 교역품으로 가치를 지녔으며 화폐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덩이쇠를 비롯 가야는 옷, 투구, 무기, 마구, 농기구, 그리고 제례용품 등 여러 철제품을 발견되어 현대인들에게 가야는 철의 왕국으로 불릴 수 있었습니다. 다만 가야에 대해 일각에서 활발한 철의 유통국이자 소비국이지 철의 생산국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가야가 철을 애용하며 무덤에 철을 부장품으로 넣어 애용했지만 철의 소비와 생산은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야가 위치한 지역에서 철을 뽑아낸 흔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가야는 연맹왕국으로 농경문화, 해상중계 무역과 함께 철의 생산을 통해 경제력을 구축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가야가 철을 자체 생산해서 철제품을 만들었다는 일반적인 시각과 더불어 신라로부터 철을 수입해서 철기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일부 의견도 있지만 적어도 가야가 당시 수준높은 철제품을 만들었고 이것은 일본이 한 세기동안 굳게 믿고 싶었던 임나일본부설을 제대로 반박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옛 가야 지역에서 다량으로 출토되는 철기문화만으로도 가야를 철기를 자체 생산한 고대왕국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당시 일본보다 앞선 철기문화를 가진 가야를 임나일본부라는 소설의 희생양으로 삼는 건 더큰 역사적 오류라는 것입니다.
‘흥이 죽자 아우 무가 임금이 됐다. 자칭 사지절도독왜백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칠국제군사안동대장군왜국왕이라고 하였다. (중략) 조서를 내려 무에게 사지절도독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육국제군사안동대장군왜와벼슬을 주었다.’ [송서]「왜국전」
이 기록을 보몀 무가 왜의 왕이라 칭하며 자신이 왜, 백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의 7국을 지배하는 왜국왕이라 하였는데 송나라에서는 이 중에 백제를 뺀 나머지 5국의 지배권을 인정했다는 내용입니다. 아마 백제를 제외한 것은 백제의 반발을 우려한 것으로 보이며 진한과 모한은 이미 없어진 나라이고 신라와 가야는 송나라의 관심 밖인 상황에 왜가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니까 어쩔 수 없이 부분인정해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럼 임나일본부는 무엇일까요. 아마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거류지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에 정말 일본이 한반도남부를 경영했다면 임나일본부가 아닌 임나부가 되어야 맞습니다. 당나라가 웅진당부, 안동당부, 계림당부가 아니라 웅진도독부, 안동도호부, 계림도독부를 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따라서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면 그건 일본과 교류가 활발했던 가야 안에 존재한 저팬타운이지 현대적 의미의 식민지 경영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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