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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구한 역관 홍순언
홍순언(洪純彦, 1530년~1598년)은 조선 중기의 한어 통역관, 외교관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입니다. 그는 남양 홍씨 첨사(詹事) 홍호(洪灝)의 동생인 예사 홍복(洪澓, 일명 홍복(洪復))의 12대손으로 가선대부에 추증된 홍겸(洪謙)의 서자였습니다. 서출이었던 홍순언은 일찍이 한어(漢語)를 익혀 한어역관이 되었습니다. 처음 이름은 덕룡(德龍)이고 자는 순언이었는데 뒤에 순언을 본명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선조 때에 역관을 지낸 홍순언은 중국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북경에 갔다가 명나라의 예부 관원이 사신들을 대접한다하여 홍등가로 이끌려갔습니다. 이때 홍순언은 그중 가장 값이 비싼 금 3천냥을 해어화채(解語花債)로 제시한 기생의 방에 들게 되었습니다. 홍순언은 돈이 너무 비싸서 기생의 얼굴이 궁금했..
2024.04.03 -
파리로 간 조선여인 리진
1905년 이폴리트 프랑댕과 클레르보티에가 공동으로 쓴 책 『한국에서』가 있습니다. 이 책에는 한국의 문화와 풍습, 그리고 일상생활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댕이 직접 보았다는 궁중 여인이 있으니 그는 바로 리진이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가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1886년이고 그 이듬해에 콜랑 드 플랭시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콜랭 드 플랑시에 주목하는 이유는 대리공사로 두 번 주재했다는 이폴리트 프랑댕의 책 내용처럼 그도 한국에 두 번 주재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콜랭 드 프랑시가 리진과 인연을 맺었을 것입니다. 프랑스 초대공사였던 콜랭 드 플랑시는 조선에서 리진을 만났지만, 얼마 후 발령을 받아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차마 리진과 헤어질 수 ..
2024.03.29 -
조선 영조
영조(재위 1724~1776)는 조선의 제21대 왕입니다. 조선의 역대 왕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53년) 왕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복 형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과정에서 신하들은 편을 나눠 심하게 싸웠습니다. 영조는 당쟁에 민감했습니다. 경종과 영조는 숙종의 아들입니다. 희빈 장씨가 낳은 아들이 훗날의 경종이고, 영조는 숙빈 최씨가 낳은 아들입니다. 숙종 때는 서인과 남인 간의 다툼이 치열했고, 서인은 인현왕후를, 남인은 희빈 장씨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7년이 지나도록 인현왕후는 아들을 낳지 못했고 희빈 장씨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에 남인의 세력이 커졌는데 숙종은 이에 부담감을 느껴 갑술환국을 일으켜 남인들을 몰아내고 서인들을 중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사가로 보냈던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 희..
2024.03.26 -
1801년 공노비 해방
순조 원년(1801) 정월에 단행된 내시노비 해방은 16세기 이래 진행되어 온 공노비제도의 동요 현상을 일정하게 반영한 것이지만, 이는 1894년 노비제 폐지로 마무리되는 19세기 노비제 해체의 역사의 단초를 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때 내노비 36,974명과 시노비(각사노비) 29,093명 등 도합 66,067명의 내시노비가 해방되었습니다. 내시노비가 공노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조선 후기의 실정을 감안하면, 내시노비 혁파는 사실상 공노비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조치에서 제외된 각관노비도 지방 관아의 공역을 담당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노비조차 확보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수가 크게 줄어 들고 있었습니다. 내시노비 해방의 결과 19세기 노비제는 내부..
2024.03.26 -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는 누구일까
김옥균은 갑신정변의 주역이면서 개화파 인물입니다. 다만 일본 세력을 끌어들여 개혁을 주도하려고 했기 때문에 일본에 의해 이용당했다는 측면이 강하며 항간에서는 친일파가 아니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용일파’ 즉 일본을 이용해서 조선을 개화하려고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김옥균은 “일본이 동방의 영국 노릇을 하려고 하니 우리 조선은 적어도 동방의 불란서가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옥균은 임오군란 이후 3차 수신사 일행으로 일본을 다녀와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급진개화파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로부터 300만원 차관을 받아 주일 프랑스 공사관을 통해 용병을 교섭하려고 했지만 차관 교섭 자체가 실패했고 더불어 민씨 정권의 탄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
2024.03.23 -
제주도를 구한 여인 김만덕
김만덕은 1739년, 제주 성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문은 본디 양인이었으나 부모를 잃고 12세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김만덕은 외삼촌 집으로 가서 일하며 겨우 목숨을 이었는데, 외삼촌이 죽자 외숙모에게 매일 중노동에 학대를 당하다가 부자 제주 기생 월중선에게 돈 몇 푼에 팔려갔습니다. 월중선은 한눈에 어린 김만덕의 훤칠한 미모와 단정한 성품이 마음에 들어 기녀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기생은 국가에서 소속된 공노비로서 관아의 재산으로 취급받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김만덕은 퇴기의 수양딸이 되면서 생계는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김만덕은 예능적 재능을 발휘하여 제주에서 부와 명성을 떨쳤습니다. 『감은편』에 따르면 "자색이 있어서 부에 속한 기생으로 뽑혔고 기예를 배울 때 무엇이나 다 잘했다"고 김만덕의 미..
2024.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