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전기(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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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집현전
한글을 창제한 분은 조선의 4대 임금인 세종대왕입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고 초중고 교과서에서도 잘못 알려지고 있는 사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한글을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공동 창제했다고 하거나 세종대왕이 글자를 만들라고 지시를 하고 집현전학자들이 만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지난 2018년 한글문화연대에서 밝힌 자료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글은 세종대왕이 눈병이 시달려가며 몸소 만들었고 집현전 학자들이 세종의 가르침과 지시에 따라 한글 안내서인 『훈민정음』 해례본 집필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건 훈민정음이 아니라 제목이 『훈민정음』이라는 책입니다. 이러한 오류를 범하게 된 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초증등교과서인 잘못된 내용기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23.02.04 -
양녕대군은 왜 폐위되었을까.
2차례의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왕위에 오른 조선의 3대 임금 태종은 왕권강화에 힘을 쏟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정치적 행보는 후에 뒤를 잇게 하는 제 4대 임금 세종의 치세를 있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왕위에 오르는 과정까지 태종에게는 비판이 따랐으나 개국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후대 임금에게 안정적인 정권유지를 할 수 있게끔 토대를 마련한 점은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럼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은 적장자였을까. 사실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태종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세종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찌 보면 세종은 태어났을 때 왕위 계승 서열에 1순위는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태종에게는 첫째 아들이 있으니 그가 바로 양녕대군입니다. 양녕대군은 태종과 원경왕후의 장남이었습니..
2023.02.03 -
무인정사 혹은 조선 왕자의 난
어느 나라나 건국 초기에는 혼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조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왕위 계승과 관련하여 왕족들 간의 다툼이 치열했는데 조선 초기에 이것이 표면화된 사건이 바로 왕자의 난입니다. ‘봉화백 정도전·의성군 남은과 부성군 심효생 등이 여러 왕자들을 해치려 꾀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형벌에 복종하여 참형을 당하였다.‘ 『태조실록』 1398년 무인년에 일어나 사직을 안정시켰다고 하여 무인정사라고도 하는 이 사건은 이방원의 주도로 일어나서 이방원의 난이라고도 합니다. 이 사건은 태조의 왕비인 신의왕후의 왕자들이 중심이 되어 이방석과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으로 이로 인해 이방석, 정도전, 남은, 심효생, 이방번 등이 숙청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태조는 왕위를 차남 이방과..
2023.02.02 -
조선의 건국과 한양의 설계
조선의 1대 임금은 태조 이성계입니다. 그는 본래 고려말의 장수였으므로 본래 왕이 자격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옛날에는 왕위를 이어받는 과정에서 옥새를 물려받습니다. 이성계도 고려의 옥새를 넘겨받은 셈입니다. 이성계는 전쟁터에서 상당한 전과를 쌓을 만큼 상당히 기개가 있는 사람이었을 테고 엄격했을 텐데 옥새를 넘겨받을 때에는 그 모양새가 사뭇 달랐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이성계의 조성 창건에 대해 쿠데타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을 텐데요. 후대의 이러한 평가를 의식해서인지 이성계는 왕위를 이어받을 생각이 없는데 상황 자체가 그렇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왕이 되었다는 식으로 실록에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날 (7월 16일) 태조는 문을 닫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는데 해질 무렵에 이르러 배극렴 등이 문을..
2023.02.01 -
한산대첩의 승리와 그 과정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은 육군과 수군으로 조선을 압박하였고 육지에서의 일본군의 행보는 그야말로 파죽지세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차질이 생겼습니다. 일본군은 자신들의 수군이 바다에서 조선에게 패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일본군은 옥포, 당포, 당항포, 율포 등지에서 연거푸 패배를 거듭하였습니다. 사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수군에게 조선의 수군을 격파하고 고니시 유키나가의 육군과 합류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명나라까지 북상하라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습니다. 당시 일본의 수군은 3개의 부대로 조직되었습니다. 그리고 와키사카 야스하루의 1부대를 중심으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을 격파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일본의 제 1부대는 대선 36척, 중..
2023.01.29 -
조상들이 만든 거북선
임진왜란 때 이순신은 많은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당시 패전을 거듭하던 조선군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순신의 활약과 더불어 기억되는 것이 바로 거북선입니다. 거북선 이전에도 삼면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항해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조선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신석기 시대부터 배를 만들어 일본 열도와 통하였고 백제는 발달된 조선술로 해상제국을 건설했을 것이며 장보고의 해상 장악에는 바로 발달된 항해술과 조선술이 자리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도 이러한 기술은 이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따라서 몽골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고려를 통하여 배를 만들게 한 것은 단지 우리나라가 부마국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시 고려에는 발달된 조선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이전만큼..
2023.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