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전기(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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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발발과 초기 진행
‘왜구가 상륙한 후에 상이 침전(寢殿)에 앉아 계셨는데 침전 서쪽 작은 못에서 푸른색 무지개가 나타나 그 기운이 동쪽을 향하다가 북쪽으로 향하여 중문(中門)을 뚫고 전상(殿上)에 올라 어좌(御座)에까지 접근했다. 상이 피하여 서쪽으로 앉으면 서쪽을 향하고 동쪽으로 피하면 동쪽으로 향했다고 한다.’ 「선조실록」 궁궐 우물가에서 일어난 푸른 무지개가 선조의 몸을 뒤덮던 날, 일본군이 부산으로 쳐들어온 날입니다. 바로 임진왜란이 발발한 것입니다. 당시 일본군은 전국통일 과정에서 다져온 군사들로 조선침략을 감행하였습니다. "왜구가 침범해 왔다. (중략) 적선이 바다를 덮어오니 부산첨사 정발은 마침 절영도(오늘날 영도)에서 사냥하다가 조공하러 오는 왜라 여기고 대비하지 않았는데 미처 진(鎭)에 돌아오기도 전에 적..
2023.02.17 -
임진왜란은 막을 수 없었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납니다. 7년간에 걸친 이 전쟁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 걸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전쟁을 거친 조선은 가장 큰 피해를 입고도 왕조가 교체되지 않았지만 이미 침체기를 겪고 있던 명은 더욱 약해져 청나라로 교체되었고 일본도 이후에 도쿠가야 이에야스에 의해 새로운 막부가 성립되었습니다. 이렇듯 동아시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준 이 전쟁, 임진왜란은 과연 조선은 막을 수 없었을까. 사실 전쟁을 일으키려는 일본의 움직임을 파악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1591년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보고서가 올라옵니다. ‘왜적인 반드시 침범할 것이오니 대비책을 마련하심이 옳을 듯 하옵니다.’ -정사 황윤길- ‘일본에서 그런 정황을 보지..
2023.02.16 -
조선시대 과거제도
뱃 속에 든 시와 책이 몇 백 짐이던가/올해에야 가까스로 난삼을 걸쳤네. 구경꾼들아. 몇 살인지 묻지를 마소/ 60년 전에 스물셋이었네. 이 시에 표현된 난삼이라는 의복은 과거합격자들이 걸치는 예복으로 이 시는 조선 영조 대에 과거에 합격한 조수삼이라는 시입니다. 과거에 합격한 감격을 표현한 것인데 여기서 눈에 띄는 구절은 바로 60년 전에 자신의 나이가 스물 셋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합격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83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나이 83임에도 과거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볼 적에 나이제한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경국대전』에서는 과거응시자에 대한 나이와 신분에 대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죄를 범해 관직 임명이 영구히 차단된 자, 탐관오리의 아들, 재..
2023.02.15 -
정철과 기축옥사
조선의 3대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정철은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관동별곡 등 조선을 대표하는 가사를 짓어 현재에도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문학작품을 남겼습니다. 정철은 1536년에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정철의 집안은 왕실과 관련있으며 큰 누나가 12대 임금인 인종의 숙의였고 작은 누나는 계림군 이유의 부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는 명종이 임금이 되기 전에 같이 놀기도 한 사이였습니다. 나름 집안이 빵빵했지만 그의 가문에도 고난이 닥쳤습니다. 그것은 인종이 즉위 9개월 만에 요절하고 계림군이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능지처참당하면서 집안이 기운 것입니다. 당시 정철의 아버지 정유침은 사온령 즉, 궁중에서 사용하는 술을 빚는 사온서의 책임자였으며 맏형인 정자는 이조전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정..
2023.02.13 -
연산군과 중종반정 그리고 장녹수
김처선은 조선 세종 대에 들어온 내시였습니다. 그는 세종 때부터 연산군까지 일곱 임금을 섬겼으며 그러면서 임금은 그를 곁에 두고 아꼈습니다. 세조 임금은 그를 원종공신 3등에, 성종은 자헌대부에 승진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조 때에는 처벌당해 관노로 궁궐에서 추방당했으나 곧 복직되었으니 그것은 그가 보여준 왕에 대한 충성심과 청렴이 한몫한 것이었습니다. 김처선은 여러 임금을 섬겼으니 그 충언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하루는 연산군이 처용무를 추었는데 그 춤이 음란했다고 합니다. 본래는 그렇게 음란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자신의 구미에 맞게 퇴폐스럽게 만드니 신하로서 김처선은 한 마디하였습니다. 당시는 두 번의 사화를 겪으면서 삼사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임금의 폭정 때문에 감히 말을..
2023.02.12 -
연산군은 왜 폭군이 되었나.
연산군은 성종의 적장자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후궁이었다가 성종의 총애를 받아 왕비의 자리에 오른 윤씨였습니다. 연산군은 7세 때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세자 수업을 받으며 부족함 없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494년 성종의 뒤를 이어 조선의 10대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결함이 있었으니 그의 친모가 폐비 윤씨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성종의 첫 후궁이었고 그리하여 왕비의 자리에 오르기 힘들었으나 검소함과 겸손함 등으로 왕비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비가 된 후에 폐비 윤씨가 이전의 성품과 다른 면모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는데 예를 들면 다른 후궁들을 질투하였고 특히 그 정도가 지나쳐 임금의 얼굴에 상처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중죄로 말미암아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관여..
2023.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