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전기(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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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귀한 과일 감귤
요즘은 흔한 것이지만 예전에는 귀하게 대접받는 품목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감귤입니다. 귤은 요즘 흔하디흔한 과일이지만 조선시대에 귤은 아주 귀했고, 따라서 왕실 제사에 오르는 과일이었습니다. 1448년 봄 창덕궁 희우정에 임금 세종과 집현전 문인들이 모였는데요. 신하들에게 하사한 과일이 없어지자 왕세자 이향이 남긴 시입니다. ‘향나무는 코에만 향긋하고 기름진 고기는 입에만 맛있네. 동정귤은 가장 사랑하나니 코에도 향긋하고 입에도 달기 때문이지’ 이렇듯 조선의 왕세자의 시 소재가 되기도 했던 과일, 감귤류의 원생지는 동부 아라비아로부터 동쪽으로 필리핀까지, 히말라야산맥으로부터 남쪽으로 인도네시아 또는 호주까지를 포함하는 아시아 동남부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넓은 지역 중에서도 인도 동북부와 미얀..
2023.06.08 -
금남 최부의 표해록
중국의 대한 기행문으로 많이들 떠오르는 작품이 바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그에 못지않은 중국기행문, 어쩌면 그 누구의 기행문보다 더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최부의 『표해록』입니다. 최부는 표류하여 중국 절강성 영파부 연해에 도착했고 내륙지방을 거쳐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35세에 성종의 명에 의해 이 표류기를 완성하여 바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작된 지 80여년 뒤인 1569년에야 외손자 유희춘에 의하여 간행되었고 1578년에 다시 재간행되었습니다. 『표해록』을 지은 금남 최부는 본래 나주시 동강면 인동리 성지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다가 해남 정씨 정귀감의 사위가 되어 해남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사헌부 ..
2023.05.19 -
조선시대의 최고국립교육기관 성균관
조선시대의 최고국립교육기관은 성균관이었습니다. 그런 성균관이라는 이름은 어떤 뜻일까요. 성균관'이라는 이름에서 '성균(成均)'은 성인재지미취(成人材之未就), 균풍속지부제(均風俗之不齊) 각각의 앞 글자들을 따온 것으로, '인재로서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을 이루고, 풍속으로써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교는 교화의 근본이다. 여기에서 인륜을 밝히고 여기에서 인재를 양성한다(明人倫 成人才·명인륜 성인재).’ 정도전, 『조선경국전』 上 예전 조선시대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이지만 이곳이 생겨난 것은 고려시대의 일입니다. 때는 고려 충선왕 때 따라서 성균관은 처음에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이 아닌 개경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따라서 지금도 고려 성균관이 남아 있으며 옛 모습 그대로 되살..
2023.05.14 -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 대한 제사, 사직단
임진왜란 중이었습니다. 선조는 피난 길에 올랐습니다. 당시 한 신하가 다급히 고했습니다. 바로 개성에 놓고 온 것이 있다는 것인데요. 대신들이 ‘그것’을 고하자 임금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사람들이 주저앉아 울부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병자호란 때에는 청나라 군사들이 수도 한양을 압박해오자 당시 조선조정에서는 ‘그것’을 안전한 곳으로 모시라고 명합니다. 당시 중요하게 여기던 것, 그리고 단 두 번 옮겨진 것은 종묘와 사직의 신주였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이러한 말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종묘사직을 생각하소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나 임금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려 할 때 늘 외치던 소리였습니다. 선왕의 신주를 모시던 곳이 바로 종묘,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던 것이 사직이었습니다...
2023.05.13 -
임진왜란의 조선 비밀무기 비격진천뢰
“그 체형은 박과 같이 둥글고 부리는 네모가 졌으며, 그 부리에는 손잡이가 달린 뚜껑이 있다. 내부에는 도화선인 약선을 감는 목곡(木谷)이 있고, 또한 목곡이 들어가는 죽통(竹筒)이 있으며 내부에는 빙철(馮鐵)이 채워진다. 특히 목곡은 폭파시간을 조절하는 장치로서 그 재료는 단목(檀木)을 사용하며, 그 골을 나사모양으로 파서 폭파를 빠르게 하고자 할 때에는 열 고비로, 더디게 하고자 할 때에는 열다섯 고비로 하되, 중약선(中藥線)을 감아 죽통에 넣어 한 끝은 죽통 아래 중심에 꿰고, 또 한 끝은 죽통 위 개철 밖으로 내되 두 치를 넘지 못하게 하며, 이때에 죽통과 개철 주위에는 홈이 생기지 않도록 종이로 밀봉한 뒤 화약은 허리구멍으로 채워 넣고 격목으로 구멍을 막은 뒤 완구에 실어 발사하되 불꽃을 막으려..
2023.05.03 -
조선시대 장애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장애인이란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현대에도 이러한 사람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비장애인과 같이 생활하고 싶어도 사회적인 시선과 제반시설이 그들의 의지를 따라가지 못해 장애인들이 살아가기에는 팍팍하기만 합니다. 그러면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요. 우리가 장애인이라 부르는 단어는 1980년대 초반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되면서 쓰이기 시작한 것이고 근대 이후에 불구자란 용어로 쓰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공식적인 기록에는 ‘독질(篤疾)’, ‘폐질(廢疾)’, ‘잔질(殘疾)’ 이라 칭했으며 민간에서는 ‘병신’이라 했으니 오늘날처럼 조롱이나 비하, 욕설의 의미가 아니라 장애를 고치기 어려운 고질병으로 인식하였습니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장애인을 ..
2023.04.29